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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서 클래식 리그까지, 찬영이 장하다!

등록 2014-10-01 20:20수정 2014-10-02 10:22

김찬영. 사진 부산아이파크 제공
김찬영. 사진 부산아이파크 제공
[매거진 esc] 좋아서 하는 인터뷰
찬영이를 처음 본 날 우리 팀 감독이 말했다. “프로 선수랑 같이 뛰겠네요.” 김찬영(사진)이라는 프로 축구선수가 팀에 있단 얘긴 들었지만 실제 만난 건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찬영이가 인사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래도 나보다 컸다. 나도 35살밖에 안 됐지만 찬영이는 26살이었다. 몸이 검고 딴딴해 보였다. 나도 너 같은 때가 있었어, 라고 혼잣말하고 나니, 아니었다. 지금보다 젊었던 적은 있었지만 저렇게 훌륭한 몸을 가진 적은 없었다. 찬영이는 초강도 물질로 빚은 인형 같았다. 그 인형은 잘 달리고 민첩하며 강했다. 그런데 얘가 왜 우리 팀에서 뛰는 거지? 나는 작년에 기자, 디제이, 모델들이 모여 창단한 일반인 축구팀 에프시비엑스란 곳에서 뛰고 있다.

다른 팀과 붙던 날 우리 둘은 포지션이 같았다. 나란히 센터백, 즉 골키퍼 바로 앞에 서 있는 최종수비수였다. 일반인 축구 경기에 프로 선수가 뛰니까 결과는 뻔하지 않나? 물론 내가 굉장히 ‘구멍’이지만. 그런데 우리 팀이 졌다. 실점을 너무 많이 했다. 찬영이 때문이었다. 얘는 자꾸 공격하러 나갔다. 상대팀 공격수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골키퍼와 나뿐이었다. 아, 그 고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프로 축구 수비 선수가 같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혼자 수비를 하고 있는 마음을.

경기가 끝나고 찬영이에게 말했다. “넌 야생마야. 길들여지지 마. 이제 대한민국 축구가, 아니, 우리 사회가 너처럼 거칠고 예측할 수 없는 자아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니?” 멋진 말이었다. 난 정말 그릇이 큰 남자였다. 그런데 찬영이는 이 작고 비리비리한 아저씨가 뭔 말을 하는 거야, 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민망해서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찬영아, 앞으론 책도 많이 읽고 똑똑해지자, 그래야 축구도 더 잘하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더 친해지면 해줘야지, 라고 생각했다.

찬영이는 올 시즌 케이리그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했다. 26살인데 왜 이제 입단했냐고? 지난여름 서울의 한 장어집에서 찬영이와 저녁을 먹었다. “찬영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찬영이는 웃으며 “형, 장어값은 내가 낼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찬영이는 장어를 많이 먹었다. 다행이었다. 그가 계산한다고 해서. “몸이 무너질까봐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찬영이는 술도 안 마신 채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19살까지는 연령별 대표로 뽑혔어요. 저는 바로 프로 구단에 입단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대학에 가기를 바랐어요. 결국 대학에 갔죠. 그때부터 줄곧 방황했어요. 운동하기 싫어서 뛰쳐나가기도 하고. 몇번 그만뒀다가 다시 했어요. 그러다가 마음잡고 일본 프로 팀에 테스트를 봤어요. 입단하기로 얘기 다 해놓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 결정이 취소됐대요. 한국 이적 시장은 끝난 때였어요. 뛸 곳이 없어진 거죠.” 겨우 20대 초반인 그를 상상하니, 슬펐다. “그즈음 깨달았어요. 형, 나는 잘할 줄 알았던 거예요. 다른 선수들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난 그게 싫었던 거예요. 멍청한 생각으로 5년을 날려버렸어요.”

그래서 찬영이는 3부 리그 격인 챌린저스 리그 청주직지FC에 입단했다. 다음해엔 2부 리그 격인 내셔널리그 목포시청에 들어간다. 그러나 시즌 후반에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이쯤 되면 찬영이의 축구인생이 끝나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올 시즌 찬영이는 케이리그 클래식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했다. 드디어 프로 축구선수가 된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여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어요.” 나는 찬영이가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몸 안에서 솟고 있는 그 상승 의지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때 그 의지는 찬영이를 엇나가게 했지만 이제는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도록 지킬 것이다.

챌린지리그에서 케이리그 클래식으로 올라온 예외적인 선수인 찬영이는 올 시즌 부산 아이파크에서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꾸준히 경기에 나가고 있다. 찬영이의 목표는 국가대표에 선발돼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다. 나는 먼 길을 걸어온 자가 내면에 지닌 우주를 믿는다. 찬영이는 장신 수비수다. 키가 190㎝다. 몸도 딴딴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 선수가 될 것이다. 찬영이는 내 자부심이다. 시즌이 아닐 땐 찬영이는 내 옆에서 뛰기 때문이다. “찬영아, 그런데 넌 왜 우리 팀에서 뛰어?” 장어집에서 나오며 내가 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더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으니까.” 그의 답이다.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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