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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밖에서도 일렉트로닉은 흐른다

등록 2014-09-03 21:25수정 2014-09-04 10:49

사진 김준수 제공
사진 김준수 제공
[매거진 esc] 좋아서 하는 인터뷰
김준수(30)는 ‘허니배저레코즈’의 대표다. 대표니까 부자일 것 같지만 아니다. 회사 이름에 ‘레코즈’가 들어가니까 음반사를 하는 사람일까? “제가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레이블을 만들고 앨범을 발매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보면 뜻이 맞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예요.” 김준수는 뮤지션이다.

올해 5월의 어느날,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데, 음원사이트에서 음악을 찾다가 <오벌리 비비드>(Overly Vivid)라는 앨범을 발견했다. 다섯 곡이 들어 있고, 뮤지션은 제이엔에스(JNS), 장르는 일렉트로니카였다. 예를 들어 클럽에 가면 들을 수 있는, 심장을 툭툭 건드리는 덤덤 둥둥 소리, 이런 게 일렉트로니카다. 한국에서는 이율배반적인 장르로 인식된다. 왜냐고? 한국처럼 밤 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없다. 당연히 클럽도 많다. 예를 들어 미국 친구와 함께 서울 강남에 있는 한 클럽에 간 적이 있는데 걔가 물어왔다. “헤이, 미남. 이 클럽이 한국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거지?”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아니. 강남에만 이런 클럽이 열 개는 될걸.” 친구는 놀라워했다.

그런데 클럽 밖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히 일렉트로닉 뮤지션도 찾기 힘들다. 디제이들은 유럽의 유명 뮤지션이 만든 일렉트로닉 음악을 튼다. “굉장한 의구심이 들었어요. 한국 디제이들은 왜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지 않는지. 외국 일렉트로닉 뮤지션들도 디제이나 프로듀싱 중 어느 한쪽에 무게를 더 두는 경우는 있지만, 디제이만 한다거나 프로듀싱만 한다거나, 이렇게 나누지는 않아요.”

2010년 김준수는 군 전역을 하고 그 다음주에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영국에 갔다가 2013년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렉트로닉 음악 프로듀서로서 영국이나 유럽에서 활동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벽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어쩜 그렇게 무모했나 싶어요.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곡 작업을 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렇게 오디오 프로덕션 과정을 마쳤고, 음악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고 한다.

‘프로젝트 잠상’이라는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팀에 들어가 사운드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그는 결국 일렉트로닉 앨범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일렉트로닉 음악을 앨범 발매한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익숙지 않다. 소비층이 존재하지 않고 기획사 위주로 돌아가는 가요 신에서 앨범을 발매하거나 홍보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준수는 ‘비장한 각오’로 레이블을 만들고, 제대하자마자 런던으로 가야 했던 거다.

하지만 아무도 여전히 제이엔에스(JNS)를 모른다. 앨범이 나왔는데 대한민국 언론 매체 어디에도 서너 줄짜리 단신 기사 하나 실리지 않았다. 사실 나도 클럽 가서 춤추고 예쁜 여자들을 쳐다보긴 했지만 클럽 밖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찾아 들은 적이 없다. 아니, 없었다. 그러나 에스엔에스를 보면 듣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일렉트로닉 뮤직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있고, 그가 앨범을 냈다는 사실을 반기는 이들이 있다. 이건 꽤 감동적이지 않나? 일렉트로닉 음악을 대한민국 사람들이 꼭 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시대가 확보한 문화의 테두리 안에 비슷한 개체들만 모여 있으면 안 예쁘잖아. 누군가 낯선 대지에 발을 내딛고, 그렇게 문화가 확장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수요는 없지만, 아니 굉장히 적지만,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창작자의 일이고, 그 세계를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일이어서 굳이 여기 적는다. “작년과 올해 한국 일렉트로닉 음악 신에 긍정적인 움직임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인디 레이블을 통해 좋은 뮤지션이 소개되었고요. 오래전부터 묵묵히 작업해오던 뮤지션이 재조명되기도 했어요. 한국 리스너들이 더이상 외국 일렉트로닉 음악만을 찾아 듣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노력할 거예요.” 김준수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한국 리스너’만 있으면 되는 것 같다. 따지자면 유럽에서도 일렉트로닉 음악은 마니아들의 전유물이다. 그런데 오늘은 한번 일렉트로닉 음악을 10초, 아니 5초만이라도 들어보는 게 어떨까? 적극적이고 용감했으며, 도전 의지가 불타올랐던 인생의 어느 한때를 기억해내며.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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