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처럼 한가하고 따사로운 제주의 아트마켓은 제주 이주민들의 모임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 조천읍 신흥리 카페 프롬제이가 여는 장터의 모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제주에서 한달 살기
한달생활자나 장기여행자들이 누릴 수 있는 제주의 작고 아름다운 즐거움들
한달생활자나 장기여행자들이 누릴 수 있는 제주의 작고 아름다운 즐거움들
요즘 슬로푸드처럼 천천히 한 여행지를 맛보는 상주형 여행이 많아지면서 여행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런데 특별한 일정도 없이 오래 머무르는 여행이라면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제주 상주형 여행 경험자들이 추천하는 한달살이만의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들이 있다.
오일장 대 아트마켓
제주에서 혼자서 한달살이를 해본 이진영씨는 좋았던 것 중 하나로 ‘장보기’를 꼽는다. “제주의 참맛은 흑돼지나 해산물이 아니라 당근이라는 사실을 오일장에서 처음 알았다. 여행자들은 보통 대형마트를 들르는데 제주산 농작물은 오일장이 훨씬 싸고 신선하다. 당근이나 양배추 같은 신선한 채소들을 그날그날 사다가 아무것도 넣지 않고 갈고 볶기만 해도 맛있다”는 경험이다. 제주시민속오일장은 끝자리 2일, 7일인 날에, 한림오일장은 4일, 9일에 열리는 등 장터마다 열리는 날이 다르다.
현지인들의 장터가 오일장이라면 제주 이주민들의 장터인 벼룩시장도 새롭게 뜨고 있다. 가장 오래된 벼룩시장인 이중섭 거리 아트마켓(매주 토·일요일)을 비롯해 이효리·장필순도 물건을 팔러 나타난다는 애월읍 장전리의 반짝반짝 착한 가게(매달 주말 중 1일), ‘육지 것들의 아지트’로 떠오른 세화리 벨롱장(매달 5일·20일), 서귀포시 보목동 포구에서 열리는 섶섬 구두미 플리마켓(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대평리 소소장(매달 첫째 주 토요일) 등 주말이면 제주 어디선가는 아트마켓이 열리고 있다고 봐도 틀림없다. 올해 6월부터 가게 앞에서 아트마켓을 열어온 엉터리공방카페 마농 이선경 대표는 “지난해부터 갑자기 아트마켓이 늘어나더니 지금은 몇개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며 “육지에서 제주로 건너온 작가, 공방 주인, 예술가들이 많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풀이한다. 손으로 만든 공예품, 작품, 소장품이 대부분이며 도깨비시장처럼 2~3시간만 잠깐 여는 곳이 많기 때문에 미리 시간을 확인하고 찾아가야 한다.
손바닥만한 해변들
12곳 지정 해수욕장만이 바다가 아니다. 제주시 쪽만 해도 월정, 하도, 종달, 모진이 등 해수욕장으로 지정되지 않은 바닷가들이 조용하고 깨끗한 제주의 바다를 제대로 느끼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관광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제주다운 바다는 더 깊이 숨었다. 구좌읍 평대리에는 손바닥만한 모래사장이 있다. 한두 가족 정도가 물놀이하기 딱 좋은 이 해변 바로 옆에는 대여섯척 배를 댈 만한 작은 포구가 있다. 포구라지만 작은 물고기들이 들락날락할 정도로 물이 맑아 동네 청년들이 다이빙하거나 스노클링하는 곳이다.
서귀포 사계리 형제섬이 보이는 바다도 지역 주민들이 즐겨 수영하는 곳이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지나치기 쉬운 작은 모래사장은 오고 가는 길이 모두 아름답다. 파도가 거세서 서퍼들이 좋아하는 이곳은 조금만 나가도 수심 10m가 넘어 헤엄을 잘 치는 사람도 주의해야 한다.
책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달 살기>를 쓴 전은주 작가는 애월 한담공원 근처 작은 모래밭을 추천한다. 멀리서 볼 땐 검은 바위밖에 안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한나절 보내기에 충분한 작은 해변이다. 또 “제주가 너무 빨리 변한다 싶을 땐 법환리 바닷가로 가야 한다”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리조트가 들어서는 제주에서 아직도 옛날 마을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동네 도서관
전은주 작가는 상주형 여행자답게 제주의 일상을 즐기는 방법으로 제주의 작은 도서관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을 권한다. 전씨는 “책을 냈을 때는 한라도서관 등 조망이 좋은 큰 도서관을 추천했는데, 그 뒤 다시 가보니 제주시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처럼 작은 도서관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제주시 연동 삼무공원 안에 자리잡은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은 1998년에 생겨났지만 최근 갑자기 외지인으로 붐빈다고 한다. 제주도민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도서를 대출해주기 때문에 한달살이 하는 사람들이 이용하기 좋다. 여름방학엔 예술캠프인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와 제주의 자연을 탐험하는 ‘악당 개미 탐험대’ 같은 프로그램이 열린다.
제주에는 130곳이 넘는 크고 작은 도서관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금릉꿈차롱 작은 도서관과 보목꿈터 작은 도서관은 작지만 제주다운 향기를 풍기는 도서관이다.
나만 아는 오름 풍경
한라산을 중심으로 360개의 오름을 간직하고 있는 제주를 길게 여행한 사람들은 꼭 제주엔 자신만의 오름이 있다고 주장한다. 게스트하우스 계란후라이를 운영하는 강희(33)씨는 오름에 빠져서 제주에 터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추천하는 오름은 올레길 1코스에 있는 알오름. 10분만 오르면 갑자기 눈앞이 탁 트이면서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번에 보인다. 새벽 일찍 길을 나서면 섬과 봉우리 사이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끈’은 제주말로 작다는 뜻이다. 입장료를 내는 유명한 오름보단 작은 오름이 각별할 때가 많다. 강희씨는 아끈다랑쉬오름은 가을에 오를 것을 추천한다. 9월부터 10월까지 한달 동안 사람 키를 넘겨 자라는 억새들이 바람에 흔들릴 무렵엔 가슴이 울렁거리는 풍경을 빚어낸단다.
책 <제주 버킷 리스트 67>을 쓴 이담 작가는 보름달이 뜨는 맑은 날이면 송당 동쪽에 있는 다랑쉬오름에 올라 꼭 달맞이를 해볼 것을 권한다. “저 둥그런 굼부리에서 솟는 쟁반 같은 달은 송당리가 아니면 볼 수 없다”고 했다.
제주/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이연희 제공
제주 농작물과 특산품을 살 수 있는 함덕 오일장.
구좌읍 평대리 포구 옆에 3~4명 정도가 모여 놀기 좋은 작은 해변이 있다.
제주시 연동에 있는 설문대어린이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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