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문색달해변에서 파도를 가르는 여성 서퍼 황혜진씨. KIMWOLF 제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완전 초짜 이정연 기자의 서핑 도전기…물속에 처박히고 보드에 두들겨맞아도 물위에서 미끄러지는 쾌감 짜릿
완전 초짜 이정연 기자의 서핑 도전기…물속에 처박히고 보드에 두들겨맞아도 물위에서 미끄러지는 쾌감 짜릿
바다, 바라보기엔 좋지만 짠내와 모래가 온몸을 뒤덮는 그 기분은 좀 찝찝했다. 7년 동안 바닷물에 풍덩 빠져본 적조차 없다. 이번 여름엔 바다를 향해 신나게 뛰어갈 것이다. 바람과 바다를 가르는 그 치명적인 재미에 중독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서핑(파도타기)을 통해서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색달해변에서 경험해본 서핑은 깔끔떠는 도시인에게 새로운 해방구를 보여줬다.
4일 오후 3시 중문 해변에는 파도가 거의 없었다. 해수욕을 하기에는 좋지만, 파도를 타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날씨. “내일부터 주말까지는 파도가 좀 있을 거예요.” 여성 프로 서퍼 박승희씨는 걱정하지 말란 투로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걱정이 앞선다. 여기까지 왔는데, 서핑 보드조차 만질 수 없는 상황을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이날 밤에는 짙은 해무가 꼈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질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다음날 다행히 바다에는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파도 높이는 무릎에서 허리 정도 되는, 서퍼들에게는 잔잔한 파도였지만, 초보자가 서핑을 배우기에는 적당한 크기라고 했다. 썰물이 되는 때(강사가 보드를 밀어줘야 하기 때문에 강습은 이때 이뤄진다) 오후 4시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뭐든 눈에 담고 배워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드는데, 바다는 기다리라 한다. ‘그럴 수는 없지. 파도라도 경험해보자’며 해수욕장 구역으로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만만해 보이던 파도였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자 공포가 엄습했다.
“자~ 옵니다. 패들링, 패들링!”
강사의 외침과 동시에 풍덩
눈·코·귀를 강타한 바닷물 바닷물이 일렁이면 붕 뜨는 몸, 그리고 바닥에 닿지 않는 발. 기껏 수영장에서 수영 조금 배웠다고 만만하게 본 게 잘못이었다.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괜히 체험해본다고 했나? 체험 안 해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초보자 인터뷰로 때울까?’ 빨라지는 심장 박동이 더욱 크게 들려오자 ‘살아야 기사를 쓰지, 여기서 바닷물에 처박혀 못 나오면 기사를 못 쓰잖아’라는 따위의 ‘취재 포기 사유’를 구상하느라 강습 시간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6명의 서핑 입문자들은 2m가 넘는 롱보드를 낑낑대며 모래사장으로 끌고 나갔다. 200m 정도 이동했을 뿐인데, 이미 팔에서는 힘이 다 빠져버렸다. 30분 지상 강의에, 30분 해상 강의. 지상 강의는 기본 안전수칙 교육부터 팔로 저어 이동하는 ‘패들링’(노젓기), ‘테이크오프’(일어서기) 배우기로 이뤄졌다. “패들링 할 때는 시선을 보드에 두지 말고 멀리 봐야 합니다. 일어설 때는 앞에 놓는 발을 45도 각도로 놓아야 하죠”라고 강사인 문정락씨는 이야기했지만, 바로 앞에 바다를 두고 모래사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자니 귀에 잘 안 들린다. 모래 위에서 테이크오프는 ‘착!’ 순조로웠다. 그러나 나중에 문씨의 “무조건 동작이 크고 힘이 좋다고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라는 말의 뜻을 깨닫게 되었으니…. 함께 강습을 듣던 서울에서 온 김현지씨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오기가 발동했다. 허리 정도 깊이의 해변이니, 빠져도 뭔 걱정이 있을까 싶었다. 보드의 앞 3분의 1 지점 정도, 무게중심이 되는 곳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널빤지 위에 올랐다. “자, 옵니다. 패들링, 패들링!” 강사의 외침과 함께 바닷속으로 처박혔다. 눈, 귀, 코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에 정신이 없다. 얕다고 얕봤다 호되게 당했다.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앞에 있고, 상체를 충분히 들지 않아서 앞으로 고꾸라지는 거예요.” 이론은 알겠는데, 몸은 말을 안 듣는다.
열번 빠진 뒤에
보드 위 일어서기 성공
온몸 쑤셔도 자꾸 타고 싶네 겨우 패들링 한 번 성공했는데, 테이크오프를 한단다. 앞팔에 힘을 주고 보드를 지탱한 다음, 왼발은 가슴께까지 오른발은 뒤에 두고 일어서면 된다. 그렇게 하면 되는데, 할 수가 없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처박히고 난 뒤 보드를 먼저 챙겨야 하는데, 그것도 잊어버려서 엄청난 힘의 보드에 머리도 두들겨맞았다. 열 번 정도 물을 먹고 난 뒤 첫 성공. 강한 파도는 아니었지만, 그 위에서 살살 미끄러지는 느낌이 짜릿했다. 겨우 세 번 정도를 성공했을까? 물론 배운 대로 몸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순서고, 시선이고, 정신없다. 희한한 것은 그렇게 물을 먹고 고꾸라지고도 점점 파도가 주는 공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뭍으로 올라온 뒤 6명의 수강생은 헉헉댔다. 강습이 끝나고 주어진 1시간, 마음이 급해 파도를 향해 돌진했다. 몸을 구기고, 처박고, 때리고. 그래도 파도가 반가웠다. 보드에 몸을 얹기 전, 파도를 향해 걸어갈 때조차 새로운 세계를 향해 걷는 듯했다. 그렇게 40분 정도 지나자 그분이 왔다. 오른쪽 종아리에 ‘쥐’가 난 것이다. 허벅지 깊이 정도였기에 망정이지 큰일날 뻔했다. 안전요원인 이형섭씨의 부축을 받으며 기어나왔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나니 왼쪽 어깨를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이다. 시간이 좀 지나니 다리 군데군데에 멍이 비쳤다. 마지막날인 6일, 다시 해변으로 갔다. 아프다고 엄살을 부렸더니, “그럴 때는 계속 파도를 타버리면 돼요. 그러면 안 아프지”라고 손영익씨는 말했다. 포항에 살다 서핑이 좋아 5년 전 제주 중문으로 이주해 온 그다. 함께 강습을 받았던 김현지씨는 말짱하다. 과연 나만 요령 없이 대들다 혼쭐이 난 것이었다. 김씨는 앞으로 닷새 동안 종일 서핑을 할 것이라고 했다. 썰물이 되자 함께 파도를 향해 나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팠던 어깨가 바닷속에서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고꾸라지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하루 전보다 더 높아진 파도는 오히려 편안해졌다. 폭풍 속으로 걸어갈 순 없겠지만, 파도 속으로는 계속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제주=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사진 제공 KIMWOLF, 김혜지
패들링(노젓기) 지상 강의.
강사의 외침과 동시에 풍덩
눈·코·귀를 강타한 바닷물 바닷물이 일렁이면 붕 뜨는 몸, 그리고 바닥에 닿지 않는 발. 기껏 수영장에서 수영 조금 배웠다고 만만하게 본 게 잘못이었다.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괜히 체험해본다고 했나? 체험 안 해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초보자 인터뷰로 때울까?’ 빨라지는 심장 박동이 더욱 크게 들려오자 ‘살아야 기사를 쓰지, 여기서 바닷물에 처박혀 못 나오면 기사를 못 쓰잖아’라는 따위의 ‘취재 포기 사유’를 구상하느라 강습 시간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6명의 서핑 입문자들은 2m가 넘는 롱보드를 낑낑대며 모래사장으로 끌고 나갔다. 200m 정도 이동했을 뿐인데, 이미 팔에서는 힘이 다 빠져버렸다. 30분 지상 강의에, 30분 해상 강의. 지상 강의는 기본 안전수칙 교육부터 팔로 저어 이동하는 ‘패들링’(노젓기), ‘테이크오프’(일어서기) 배우기로 이뤄졌다. “패들링 할 때는 시선을 보드에 두지 말고 멀리 봐야 합니다. 일어설 때는 앞에 놓는 발을 45도 각도로 놓아야 하죠”라고 강사인 문정락씨는 이야기했지만, 바로 앞에 바다를 두고 모래사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자니 귀에 잘 안 들린다. 모래 위에서 테이크오프는 ‘착!’ 순조로웠다. 그러나 나중에 문씨의 “무조건 동작이 크고 힘이 좋다고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라는 말의 뜻을 깨닫게 되었으니…. 함께 강습을 듣던 서울에서 온 김현지씨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오기가 발동했다. 허리 정도 깊이의 해변이니, 빠져도 뭔 걱정이 있을까 싶었다. 보드의 앞 3분의 1 지점 정도, 무게중심이 되는 곳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널빤지 위에 올랐다. “자, 옵니다. 패들링, 패들링!” 강사의 외침과 함께 바닷속으로 처박혔다. 눈, 귀, 코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에 정신이 없다. 얕다고 얕봤다 호되게 당했다.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앞에 있고, 상체를 충분히 들지 않아서 앞으로 고꾸라지는 거예요.” 이론은 알겠는데, 몸은 말을 안 듣는다.
초보자에겐 보드를 들고 가는 것도 힘들다.
보드 위 일어서기 성공
온몸 쑤셔도 자꾸 타고 싶네 겨우 패들링 한 번 성공했는데, 테이크오프를 한단다. 앞팔에 힘을 주고 보드를 지탱한 다음, 왼발은 가슴께까지 오른발은 뒤에 두고 일어서면 된다. 그렇게 하면 되는데, 할 수가 없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처박히고 난 뒤 보드를 먼저 챙겨야 하는데, 그것도 잊어버려서 엄청난 힘의 보드에 머리도 두들겨맞았다. 열 번 정도 물을 먹고 난 뒤 첫 성공. 강한 파도는 아니었지만, 그 위에서 살살 미끄러지는 느낌이 짜릿했다. 겨우 세 번 정도를 성공했을까? 물론 배운 대로 몸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순서고, 시선이고, 정신없다. 희한한 것은 그렇게 물을 먹고 고꾸라지고도 점점 파도가 주는 공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뭍으로 올라온 뒤 6명의 수강생은 헉헉댔다. 강습이 끝나고 주어진 1시간, 마음이 급해 파도를 향해 돌진했다. 몸을 구기고, 처박고, 때리고. 그래도 파도가 반가웠다. 보드에 몸을 얹기 전, 파도를 향해 걸어갈 때조차 새로운 세계를 향해 걷는 듯했다. 그렇게 40분 정도 지나자 그분이 왔다. 오른쪽 종아리에 ‘쥐’가 난 것이다. 허벅지 깊이 정도였기에 망정이지 큰일날 뻔했다. 안전요원인 이형섭씨의 부축을 받으며 기어나왔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나니 왼쪽 어깨를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이다. 시간이 좀 지나니 다리 군데군데에 멍이 비쳤다. 마지막날인 6일, 다시 해변으로 갔다. 아프다고 엄살을 부렸더니, “그럴 때는 계속 파도를 타버리면 돼요. 그러면 안 아프지”라고 손영익씨는 말했다. 포항에 살다 서핑이 좋아 5년 전 제주 중문으로 이주해 온 그다. 함께 강습을 받았던 김현지씨는 말짱하다. 과연 나만 요령 없이 대들다 혼쭐이 난 것이었다. 김씨는 앞으로 닷새 동안 종일 서핑을 할 것이라고 했다. 썰물이 되자 함께 파도를 향해 나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팠던 어깨가 바닷속에서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고꾸라지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하루 전보다 더 높아진 파도는 오히려 편안해졌다. 폭풍 속으로 걸어갈 순 없겠지만, 파도 속으로는 계속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제주=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사진 제공 KIMWOLF, 김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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