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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서 춤추다 우아하게

등록 2012-07-11 18:38수정 2014-08-28 17:35

제주 중문색달해변에 모인 서퍼. 왼쪽부터 박승희, 황혜진, 김나은씨.  KIMWOLF 제공
제주 중문색달해변에 모인 서퍼. 왼쪽부터 박승희, 황혜진, 김나은씨. KIMWOLF 제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서핑에 빠진 여성 서퍼 김나은·박승희·황혜진·황보라씨가 말하는 파도의 매력
<오늘은 나를 바다로 데려가줘>
<오늘은 나를 바다로 데려가줘>
파도 위에서 춤을 춘다. 표정도 무대 위 댄서의 그것만큼이나 다채롭다. 힘을 주는 듯 찡그렸다가 이내 활짝 웃는다. 따가운 햇빛과 소금물로 상한 피부와 머릿결보다 까맣게 탄 얼굴에 돋보이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여성 서퍼라고 치켜세울 이유는 없다. 그 실력은 냉정하게 판단하면 될 일이다. 10년 넘는 경력을 쌓아온 수많은 서퍼들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수준인가보다는(사실 실력을 가늠할 안목도 없다) 도대체 어떤 매력에 중독된 것인지 궁금했다. 프로 서퍼(서핑 관련 브랜드에서 물품 후원 등을 받는 서퍼)로 최근 서핑 정보와 여행기를 담은 <오늘은 나를 바다로 데려가줘>(사진)를 쓴 공동저자 김나은, 박승희, 황혜진씨와 최근 서핑대회 롱보드 분야에서 두번 1위에 오른 황보라씨를 부산과 제주에서 만났다.

파도에 들어서다 “쫄리는 게 좋아요!” 만나자마자, 사투리의 벽. 김나은(28)씨는 거리낌없이 말했다. “스릴있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단다. 부산에서 15년째 살고 있는 김씨는 “바다가 곁에 있어도 별로 가깝지 않았다. 피서철이 되면 인파에 북적이는 바다가 오히려 싫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서핑을 2008년 봄 처음 접하게 됐다. <블루 크러쉬>라는 영화를 보고서, 해운대로 달려갔다. 그 뒤 저녁 6시에 퇴근해 8시까지 파도가 있는 날이면 바다로 향했다.

파도는 그에게 애타게 바라는 기다림의 대상. “서핑은 파도가 온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항상 나에게 맞는 파도가 오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바닷물 속으로 패대기를 치는 파도를 원망하지 않는다.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런 간절함, 그게 좋아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잖아요. 뭐 그런 거?” 서핑을 접한 뒤, 김나은씨의 열정에 불을 지핀 것은 또 한가지 있다. 바로 ‘승부욕’. 서핑을 배우자마자 초보급 대회에 출전한 그는 “내심 기대하고, 좀 재면서 해볼까 했는데 그때 4위인가를 했어요. 대회 끝난 뒤 표정관리도 안 되고.(웃음)”라며 그때를 떠올린다. 옛일을 떠올리면서도 이를 간다. 그렇게 그는 서핑에 빠져들었다.

보드에 왁스를 칠하고 있는 서퍼 황보라씨.
보드에 왁스를 칠하고 있는 서퍼 황보라씨.
“타고 싶다고 바로 할 수 없는
그런 간절함, 그게 좋아요”

파도에 몸을 얹다 박승희(26)씨는 원래 간호조무사였다. 지금 겉모습으로 봐선, 전혀 상상할 수 없다. 2006년 시작한 서핑에 피부는 검게 그을려 갔다. “병원이라는 데가 좀 깨끗한 이미지를 원하잖아요. 눈치 보기도, 피해 주기도 싫어서 그만뒀어요.” 원래 스케이트보드를 탔던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서핑이 좀더 수월했을 듯싶었다. 2007년에 제주서핑대회 처녀 출전 때 쇼트보드 1위에 올랐다. “경기 종료 1분 전인가? 내게 딱 맞는 파도가 왔죠. 그것을 잡았고!”

점점 육지보다는 파도에 몸을 얹는 게 더욱 자유롭게 느껴지던 그는 급기야 서퍼들의 천국 오스트레일리아 골드코스트로 2009년 떠났다. 오직 서핑을 하기 위한 생활이 이어졌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간 그는 새벽 4시에 시작해 아침 8시에 끝나는 대형마트 청소일을 구했다. 그리고 보드를 집어들었다. “그곳에 가니 동양인인 제가 파도 타는 것을 신기해하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한국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잘 하지 않는 게 서핑이거든요.” 일과 서핑 공부만 했다. 그런데 영어 실력은 오히려 다른 친구들보다 빠르게 늘었단다. 같은 한국인들보다는 서핑을 하는 현지인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도에 이끌리다 제주로 이주까지 했다. 부모님까지 설득해 내려오시게 했다. 황혜진(25)씨의 인생사는 가장 짧은데 가장 역동적이다. “땀냄새나는 운동 하는 거 싫어했어요.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것은 무슨 똥개 훈련 같고.(웃음)” 이랬던 그는 제주에 먼저 반했다. 친척 할머니댁에 머무르며 깨달아 간 제주의 매력에, 서핑의 매력이 더해졌다. “제가 고등학교 때는 오래달리기하다 두바퀴 뛰면 주저앉았어요. 당연히 체력은 보통 이하였죠.” 운동도 싫어해 선천적인 체력도 약하다니, 그런 그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보드 위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았어요. 바다를 바라보면 항상 마음이 차분해지고, 나를 돌아보게 되고요.” 황씨의 이야기에 여유가 묻어나지만, 그도 ‘무법의 초보자’ 시절을 보냈다. “그냥 막 바다로 돌진했죠. 잘 타시는 분들 하는 데 따라 들어갔는데, 3m 가까운 롱보드를 제대로 간수조차 못해 남들에겐 무기가 됐더라고요. ‘이야, 혜진이 진짜 무섭다’는 게 제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제 보드가 무섭다는 거였어요.” 국내에서 여름엔 서핑을 하기 가장 좋다는 제주에 사는 그가 바다에 만족하는지 궁금했다. “서핑 즐기기엔 충분해요. 일단 보드를 밀어줄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실력을 점점 갖춰가면 아무리 나쁜 환경이라도 바다 위에서 길을 만들며 서핑을 할 수 있어요.”

패들링을 하며 나아가는 서퍼들
패들링을 하며 나아가는 서퍼들
“보드 위에 앉아있기만 해도
좋아요
바다를 바라보면 차분해지고
나를 돌아보게 돼요”

파도와 춤을 추다 “정말 춤을 추는 것 같아요. 손끝과 팔, 다리 모양까지 신경쓰게 되죠.” 무용을 말하는 것인가? 황보라(27)씨는 서핑 가운데서도 ‘클래식 스타일’을 지향한다. 쇼트보드로 빠른 기술을 선보이기(어그레시브 스타일)보다는 롱보드 위에서 마치 춤을 추는 동작을 표현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가 현란한 쇼트보드보다 롱보드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서핑이라는 게, 삶의 방식과 문화가 함께 녹아 있는 거예요. 지난해 필리핀과 멕시코로 서핑 여행을 떠났어요. 필리핀에서 만난 서퍼 친구들은 항상 여유롭죠. 돈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자연 앞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깨달은 친구들인 거죠. 그들과 어울리다 보면 물적인 욕심도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득도를 한 종교인 같다. 발랄하기만 할 줄 알았던 젊은 여성 서퍼의 또다른 면모이다. 그가 지금 바라는 것은 한가지이다. 좀더 다양한 스타일의 서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안타깝게도 당장 쟁취해야 할 것은 대회 타이틀이다. 그럼에도 그의 신념은 굳건하다. “서핑을 하게 되면 자만하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인생을 배운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조류가 바쁘게 흐르는 바닷속 세상도 신세계 같고요.” 탈색된 머리카락을 계속 신경쓰면서도, 잠언 같은 말을 이어간다. 파도와 서핑은 이렇게 사람을 바꿔놓았다.

cover story tip

서퍼 용어 소사전

파도를 잡는다 파도에 올라타는 것을 일컫는다. 잠시 파도 위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파도의 어깨(굴곡진 부분)를 타며 옆으로 미끄러져야 한다. 다른 사람이 먼저 잡은 파도에 끼어드는 것은 ‘드랍’이라고 하는데, 안전을 위해 금지되고 있다.

파도에 말린다 서핑을 타다가 둥그렇게 덮치는 파도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을 일컫는다. 서퍼들은 계속 파도에 말리면 ‘인간 세탁기가 된다’고 한다. 초보자들이 배우는 얕은 바다에서는 오랫동안 파도에 말릴 일은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작은 파도에 말려 봤는데, 먹는 물의 양은 많지 않다.

파도가 깨진다 파도가 둥그렇게 말렸다가, 거품을 일으키며 퍼지는 것을 일컫는다. 서퍼들이 선호하는 파도는 일찍 깨지는 파도가 아니라, 서서히 깨지는 파도이다. 그만큼 오랫동안 파도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파도가 서핑하기 좋게 깨지려면 바다 아래 암초가 있어야 한다. 이런 지역을 리프라고 하는데, 초보자들에게는 위험하지만 프로 서퍼들은 멋진 파도를 잡기 위해서 리프 지역을 골라 서핑을 한다.

부산, 제주=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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