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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는 사람을 할 수 있다

등록 2011-12-29 17:03수정 2011-12-29 17:15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신혼시절 좌충우돌 요리 무용담 펼친 후배에게 건넨 ‘고르곤졸라상’
“네 남편은 아직 살아있니?” 후배 ㅇ은 신혼시절 남편을 ‘저세상’으로 보낼 뻔했다. 그것도 부추로 말이다. 비소도 아니고, 납도 아니고, 비타민 에이(A)와 시(C)가 풍부한 채소, 부추라니! 맛나고 몸에 좋은 식재료가 사람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니!

중세 유럽에서는 달콤한 먹을거리가 ‘나쁜 일’에 이용되기도 했다. 정적을 독살하는 데 초콜릿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악한 정략가들은 신비한 초콜릿의 맛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활용했다. 결정적으로 초콜릿의 쓴 첫맛과 까만색은 독약을 섞고도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후배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중세시대의 사악한 인간이 될 뻔했다. 이야기는 이렇다. 신혼에 티브이 건강프로그램을 열심히 보던 후배는 부추에 홀딱 빠졌다. ‘마늘과 같은 강장효과가 있고’, ‘부추 익혀 먹으면 소화 촉진에 좋고 위장 튼튼하게 하고’, ‘<동의보감>에는 간 기능 강화에 좋다고 나오고’ 등, 부추예찬론이 한 시간 내내 이어졌다. 후배는 특히 ‘강력한 강장제’, ‘활성산소 해독’, ‘노화방지’ 등의 단어에 꽂혔다. 그길로 나가 부추를 한 단 샀다. 다음날 아침 모두 믹서기에 넣고 갈았다. 진한 녹색의 즙이 식탁에 나타났다. 남편에게 3분의 2를, 자신에게는 3분의 1을 컵에 담아 건배를 제의했다. 후배는 하트를 뽕뽕 날리며 마셨다고 한다. 몇 시간 뒤 왠지 속이 쓰린 듯 거북했지만 몸에 좋은 것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했단다. 병원에서 전화가 온 것이 그때쯤이었다. 남편이 위세척을 하고 있다고! 눈이 퉁퉁 부어 달려간 후배는 간호사의 타박을 들었다. “부추는 독성이 있어요. 한 단을 다 갈아 마시면 사람에 따라 죽을 수도 있어요. 적당한 양이 몸에 좋은 거죠.” 남편은 살아났고 후배는 크게 반성했다. 후배의 신혼시절 부엌 무용담은 부추로 끝나지 않는다. 샌드위치에 들어갈 흑설탕 대신 조미료를 넣지 않나, 커피 끓인다고 물 대신 무색무취 건강음료를 넣어 주전자를 태워먹지를 않나, 그의 신혼 부엌은 시트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그를 만나 건넨 첫마디가 “네 남편은 아직 살아있니?”였다. “‘브레드 랩’(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빵도 건넸다. “언니, 남편은 아주 건강하게 잘 살아있어요. 그동안 궁중요리부터 이탈리아 요리까지 다 배웠어요. 요즘은 아주 잘한다니깐!” 후배의 얼굴은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답게 환했다. 이제는 요리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갈한 음식을 만든다.

그에게 연말 선물로 건넨 ‘브레드 랩’의 빵은 ‘고르곤졸라상’, 고구마치아바타, 녹차대니시, 우유크림빵 등이었다. 고르곤졸라 치즈의 쫄깃한 맛과 크루아상의 장점을 합친 ‘고르곤졸라상’은 주인 유기헌씨가 빵집 이름처럼 ‘빵 연구’ 결과로 탄생했다. 유씨는 40대 초반 늦은 나이에 도쿄제과학교를 졸업하고 ‘브레드 피트’(bread fit)라는 독특한 이름의 빵집을 열어 솜씨를 발휘했다. 공동운영자였던 그는 최근 ‘브레드 피트’와는 결별하고 빵집 ‘브레드 랩’(bread lab)을 열었다.

후배는 빵을 받아들고 돌아간 뒤 한 통의 문자를 보내왔다. “언니, 남편이랑 애기랑 빵을 너무 좋아해요. 고마워요.”

브레드 랩 02-782-0501.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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