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제임스 전을 위한 굴무침 삼겹살 보쌈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무용가 제임스 전을 위한 굴무침 삼겹살 보쌈
“폭탄주 세 잔 마셔야 되는 거 알죠?” 앉자마자 약속 시간에 늦은 벌이 날아온다. 제임스 전은 맥주잔에 정확한 양의 맥주와 소주를 붓는다. 그의 폭탄주는 특별하다. 3잔의 두려움은 한잔을 마시는 순간 사라지고 <호두까기인형>의 클라라가 된다. 율동감이 있다. 내장들이 춤을 춘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를 관통하고 빨간 매니큐어 바른 엄지발가락까지 내려가는 순간 눈 녹듯 공포는 없어진다. 비법은 숟가락에 있다. 그는 소주와 맥주를 섞는 도구로 숟가락을 사용한다. 숟가락은 새것일 수도 있지만 침이 발라져 있을 확률이 크다. 그는 굳이 새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침은 우리 몸의 보약이라고도 한다. 소화를 돕고 감칠맛을 만든다. 올해 초 퇴사한 한 코카콜라 직원은 코카콜라의 맛의 비밀은 페루 사람들의 침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제임스 전은 무용계의 유명인사다. 쉰이 넘었지만 그처럼 열정적인 이를 보질 못했다. 20대 청년의 눈빛이다. 그는 연말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12월29~31일에 그가 상임안무가로 있는 서울발레시어터는 고양 어울림누리극장에서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한다. 이 공연에는 노숙인들이 출연한다. 노숙인들은 노숙인 자활 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파는 이들이다. 지난 4월부터 그와 인연이 닿은 노숙인들은 발레를 배우고 있다. “발레를 그들은 왜 할까요?” 질문은 대충 ‘발레를 하면서 상처가 치유되고, 독립심이나 인생의 자신감이 생기고’ 등의 대답을 기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달랐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굳어진 표정으로 제임스 전은 다시 내게 물었다. “당신은 왜 글을 쓰시냐?” 난감했다. 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까? 고민 끝에 뱉은 내 대답은 “좋아서요”였다. 그는 노숙인들도 마찬가지란다. 춤추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와의 밤은 깊어갔다. 옆에는 그의 발레공연을 녹화할 방송국 피디와 작가가 추임새를 더했다. 삼겹살집 주인장까지 나섰다. “제임스 전을 위한 특별한 굴무침 보쌈입니다.” 고흥에서 올라온 자연산 굴을 빨간 무채에 굴렸다. 무침은 노란 쌈배추 잎 위에 올라갔다. 쌈배추는 알배기배추, 미니배추라고도 한다. 쌈이나 겉절이에 쓰기 때문에 일반 배추보다 작다. 그 위에 잘 구워진 삼겹살이 한껏 폼을 잡고 오른다. 쌈장용 맛된장과 몇 가락의 파무침이 맛을 완성한다. 물컹한 굴의 식감과 아삭아삭한 배추 결과 고기의 묵직한 풍모는 한데 어우러져 5가지가 넘는 맛을 장날처럼 펼쳐놓았다. 혀를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입안을 빵빵하게 채운 굴무침삼겹살보쌈은 제임스 전의 발레처럼 열정적이고 따스했다.
노숙인들은 <호두까기인형> 공연 초반에 약 15분간 등장한다. 노숙인들 중에는 매일 연습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제임스 전은 “수원댁은 존경스럽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특별한 일도 대단한 일도 아닌 것이다. 나비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제임스 전에게는 그저 즐거운 일 중의 하나다. 공연을 꼭 보러 가겠다, 굳은 약속을 하고 제임스 전이 이끄는 그의 두번째 단골집으로 향했다. 그 집도 삼겹살집만큼이나 평범했지만 벽에는 제임스 전이 공연했던 <빙>의 포스터가 걸려 있고 통닭의 바삭함이 혀를 사로잡았다. 송파구 삼전우체국 근처에 제임스 전의 허름한 단골집들이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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