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무안군 한옥민박에서 주인 닮은 정갈한 밥상과 마주하다
무안군 한옥민박에서 주인 닮은 정갈한 밥상과 마주하다
빵 사이에 낀 푸아그라 덩어리가 줄줄 흐르는 버터처럼 느끼하게 웃는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그놈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데 어디선가 저팔계의 삼지창이 날아와 꽂힌다. 거대한 삼지창은 모공이 넓은 내 팔뚝을 잔혹하게 찢고 나왔다. 레어로 익은 스테이크 한 점을 꼭꼭 눌렀을 때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붉은 육즙처럼 얇은 팔은 천천히 핏빛으로 변한다.
악! 잠에서 깬다. 모공을 비집고 나온 땀방울은 짜다. 도시의 아파트였다면 꿈을 깨고도 뒷간을 제대로 다녀오지 않은 것처럼 언짢았을 것을, 진돗개가 짖고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소나무가 우거진 고즈넉한 시골마을에서는 ‘개콘’을 보는 것처럼 유쾌하기까지 하다. 전남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예술인촌. 이곳은 20여채의 한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어진 마을이다. 한옥 민박이 가능한 곳이다. 갯벌낙지가 유명한 무안 여행의 하룻밤을 이곳으로 정했다.
이른 아침 발목을 잡아채는 넝쿨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자 한옥 ‘달하서실’의 주인 박관서(49)씨와 그의 아내 김애경(46)씨가 정성스러운 밥상을 내왔다. 된장국, 표고버섯구이, 가리비젓갈, 갈치창젓, 고등어구이, 호박무침 등. “우리 집은 조미료를 안 씅께, 맛이 없지라.” 김씨의 겸손이다. 식탁은 주인을 닮기 마련. 박씨는 바삭한 층이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 처럼 성실하고 담백하게 산 시인이자 27년째 호남선의 목포역 등을 지키는 역무원이다. “희망버스 타러 가야 허는디, 일이 안 끝나 버리네.” 그는 광주전남작가회의와 민예총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시는 자신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농부가 밭을 갈기 위해 쟁기가 필요하듯 인생을 살기 위한 도구다.
지난해부터 그는 마을 노인들의 생애사를 정리하고 있다. 칠순 넘은 노인들의 인생을 마을 초등학생들이 받아 적는다. 그가 하는 일은 짝을 지어 주는 것. “학교나 티브이에서나 잘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만 듣다 보니 왜곡된 생각을 가지기 쉽죠이. 예전 우리는 부모님, 할아버지 생을 자연스럽게 듣고 컸죠이.” 그는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섬을 찾아다니면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글쓰기, 미술 등도 가르친다. “문화예술활동 하러 가면 애들 맛있어요.” 그는 착착 달라붙어 배우는 아이들을 ‘맛있다’고 표현한다.
아침 식탁에는 주거니 받거니 사는 이야기가 담백하게 날아다녔다. 된장국은 표고버섯을 우린 물에 청국장가루와 굴을 넣어 끓였다. 남은 표고버섯은 간장양념을 온몸에 두르고 오븐에 구워 적당한 탱탱함을 유지했다. 갈치창젓은 숟가락으로 뜨자 주르륵 흘렀다. 갈치의 창자로 담근 젓갈이다. 가리비젓갈도 탱탱하기는 마찬가지. 악착같은 도시 생존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인공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밥상은 그저 시골 향 가득하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먹을수록 몸에 켜켜이 스며든 도시의 옅은 불안은 사라졌다. 박씨가 9월 가거도 문화예술활동을 같이 가잔다. 따라 나서 보리라.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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