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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회만 먹으면 아쉬울걸

등록 2011-07-21 10:11수정 2011-07-21 10:26

은하갈비
은하갈비
돼지갈비·통닭·오리불고기…바닷가 육고기는 뭔가 달랐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조용필의 노래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부산은 바다와 맞닿은 도시다. 출렁이는 파도는 부산의 얼굴이다.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는 데이트 코스고, 차로 달리면 10분도 채 안 돼 만나는 항구들은 비릿한 어부의 굵은 팔뚝과 마도로스의 낭만을 떠올리게 한다. 부산 음식은 바다가 지척이라서 온통 생선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오산이다. 맛골목마다 지글지글거리는 육고기는 바닷바람을 맞아 독특한 맛으로 여행객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부산진구 맛집 지도
부산진구 맛집 지도

옛 노동자의 허기 달래던 맛 → 초량동 돼지갈비골목

자동차 두세대는 넉넉히 다닐 만한 넓은 도로에 ‘전통과 맛이 있는 초량돼지갈비골목’이라는 간판이 장군의 칼처럼 길게 꽂혀 있다. 간판을 찾았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간판 옆 골목을 힘겹게 뒤지면 실핏줄처럼 이어지는, 시간이 멈춘 듯한 좁은 길을 발견한다. 동구 초량2동 돼지갈비골목이다. 음식점 20여개가 첩첩 붙어 있다. <영자의 전성시대>에나 등장할 만한 스산한 여관을 지나면 허름한 치맛자락을 걷어올린 할머니가 담배를 물고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이 골목의 주인은 부두 하역 노동자들이었다. “54년부턴가, 처음에는 돼지국밥이나 빈대떡이 있었지. 앞에 철길이 있었는데 부두일꾼들이 넘어오면 돼지갈비를 구워 먹었어.” 4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하갈비’(051-467-4303<30FB>사진 위)의 주인 정재구(75)씨가 전했다. 밤새 불을 밝히는 부두 하역 작업은 고된 노동이었다. “밤 근무자는 홀쭉한 얼굴로 와서 먹고 낮 근무자는 술 한잔하면서 먹었어.” 노동자들은 인심 좋은 주인이 내온 푸짐한 돼지갈비를 연탄불에 구워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을 달랬다.

이 골목의 전성기는 85년부터 90년대 초까지였다. “그때는 외상을 많이 했어. 월급날 되면 반장이 한달치 결제하러 아침부터 돈 봉투를 들고 왔지.” 돼지갈비집은 30여곳으로 늘고 매큼한 땀이 골목을 메웠다. 돼지 2마리 반이 하루 만에 소비되었다. 하역작업이 기계화되고 부두도 이사를 가자 갈비집들은 줄어들었다. 일부는 서울 마포까지 옮겨와 부산 돼지갈비의 맛을 이었다.

초량동 돼지갈비는 도톰하게 뜯어낸 수제비처럼 살코기가 얇고 간장베이스 양념을 쓴다. 짜지도 맵지도 시지도 쓰지도 달지도 않지만 2인분을 혼자서도 뚝딱 해치울 만큼 질리지 않는다. 정씨는 맛의 비결이 좋은 재료라고 했다. 은하갈비는 과거 구포 돼지를 가져오다가 지금은 김해 돼지를 쓴다. 머리와 뒷다리를 뺀 살집을 날카로운 칼로 지겨운 애인 밀어내듯이 얇게 자르는 모습은 한마디로 달인이다. 삼겹살의 지방처럼 맛난 부위와 쓸모없는 지방을 귀신처럼 구별해낸다. 1960년대 30원 하던 돼지갈비 1인분은 지금 7000원(160g)이다. 이제는 30~40대 부두노동자들 대신 가족들이 이곳을 찾는다.

해파리냉채에 비벼 먹으면 최고 → 부평동 족발골목


초량동을 빠져나와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부평동·남포동·광복동에 들어서면 먹을거리투성이다. 부평동 2가에는 족발골목이 있다. 2차선 도로 양옆에 족발집 7~8곳이 장사를 한다. 전성기였던 1992~94년에는 10곳이 넘었다. 이 골목이 유명해진 것은 족발과 해파리냉채를 비벼 먹는 냉채족발 때문이다. ‘원조 한성족발’(051-245-8730)과 ‘한양족발’이 20년 넘게 영업하는 곳이다.

주름진 아버지 손이 떠오르네 → 부평시장 통닭골목

한성족발을 끼고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부평시장의 통닭골목이 바삭거리는 맛을 풍긴다. 잘난 형 때문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동생처럼 부평시장은 인근에 있는 국제시장(광복동) 때문에 찬밥 신세였다. 국제시장은 1945년 철수하던 일본인들이 전시 물자를 팔면서 형성되었고 부평시장은 그보다 이른 1910년 조선인과 일본인이 같이 연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부산에서 일본인들의 생필품을 파는 유일한 시장이었다. 이 시장들은 한국전쟁 뒤 미국 군수물자와 피난민들의 차지가 되었다. 국제시장 맛골목의 비빔당면과 유부전골은 연예인 이승기가 맛보고 가서 더 유명해졌다.

옷깃을 스쳐가는 냄새, 달팽이관을 때리는 음악은 지난날 한때를 불러온다. 맛도 마찬가지다. 누런 봉투를 뒤집어쓴 통닭은 취기에 비틀거리면서 현관문을 들어서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골목마다 들어선 프랜차이즈 때문에 옛날식 통닭구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쪼글쪼글 비 오는 소리를 내며 기름 사이를 주유하는 통닭을 만나는 순간 혀는 기쁨에 겨워 ‘이제 죽어도 좋아’라고 외친다. 세 집이 붙어 있고 두 집은 30~40초 거리에 있다.

오복통닭
오복통닭

‘통닭의 전성시대’는 여전하다. ‘오복통닭’(051-244-4090·사진)은 전화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20년째 누런 종이와 비닐봉투를 고집하는 주인 박경심씨는 “옛날(60~70년대)에는 직접 닭털 뽑고 돼지기름이나 동물성 기름으로 튀겼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영양분을 보충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루 신나게 100~200마리를 튀겨냈다. 옥수수전분과 강황가루, 5~6가지 양념을 입혀 식물성 기름으로 튀겨낸 맛은 안쓰러움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손가락에 전해지는 촉감은 주름진 아버지의 손마디다. 바삭거리는 껍질은 금색으로 빛나 온몸에 두르고 싶어진다.

청춘 쓰린 대학생들의 옛쉼터 → 범천동 오리불고기골목

부산의 생경한 풍경 가운데 하나는 산토리니섬을 옮겨놓은 듯한 산중턱의 집들이다. 물감을 한꺼번에 뿌려 예쁜 옷을 입힌 것처럼 산중턱은 온갖 파스텔톤이다. 부산진구 범천2동 안창마을도 그런 곳이다. 안창마을은 동구 범일동 일부까지 포함해 부르는 이름이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터를 잡았다. 좁은 골목을 길 잃은 개처럼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안창집’(051-632-8238), ‘양지집’(051-632-8829) 등 스무곳 넘는 오리불고기집을 발견한다. 사흘은 굶은 짐승처럼 달려 들어가 맛을 본다. 이미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툭툭 잘린 살들은 지글거리는 과정을 통과하고 어금니의 운동구조 속으로 들어간다.

오리불고기골목은 강제로 뜯어낸 상처처럼 청춘이 쓰라린 대학생들 때문에 시작됐다. 1980년대 동의대학교 학생들은 산 너머 이 동네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학생들은 늦은 밤까지 라면과 파전에 곁들여 막걸리를 마셨다. 천막들이 생겨났다. 90년대 중반부터 학생들은 줄고 일반인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천막집들은 오리불고기를 팔기 시작했다. “장사가 잘되니깐 마을 주민이나 외지인도 와서 문을 열었지.” 양지집 주인이 말했다.

상인들 국밥 한 그릇 뚝딱했지 → 범일동 돼지국밥골목

합천식당
합천식당

부산 하면 돼지국밥이다. 그 시작은 나주곰탕과 비슷하다. 가장 오래된 곳은 범일동 자유시장 앞 골목이다. 행정구역상 이 골목은 부산진구 범천동이다. 1970년대 이곳에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다. 5일장도 열렸다. 경남 일대의 상인들이 자주 찾았다. 싼값에 배를 두둑하게 채우는 국밥이 생겼다. 돼지 뼈로 우린 육수에 돼지고기와 밥이 넉넉하게 들어갔다. 2대에 걸쳐 40년간 ‘합천식당’(051-635-2513·사진)을 운영하는 김민수(46)씨는 당시만 해도 한 그릇에 1000원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상인들의 대형버스가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과거 10곳이 넘었지만 현재는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부산=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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