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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신명나게 추다보면 두엔데!

등록 2011-01-13 11:52수정 2011-03-31 14:31

지난해 12월28일 홍대 인근 포스트극장 무대에 올라 춤을 선보이는 박금영씨.(사라플라멩코 제공)
지난해 12월28일 홍대 인근 포스트극장 무대에 올라 춤을 선보이는 박금영씨.(사라플라멩코 제공)
[매거진 esc] 판타스틱 덕후백서
* 두엔데 : 무아지경
스페인에서 4년간 춤 배운 헤어디자이너 박금영씨

‘올레~올레!’

지난 12월28일 한파가 몰아치던 늦은 밤, 홍대 인근 포스트극장 관객들은 익숙한(?) 탄성을 내질렀다. 애절한 기타 선율과 노랫가락이 흐르는 무대 위엔 긴 원색의 스커트를 살짝 들어올린 채 발을 힘차게 구르고 손뼉을 치는 여성들이 보인다. 그들의 손목 돌림은 현란하고 몸짓은 역동적이다. 표정은 심오하고 호흡은 거칠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의 플라멩코! 플라멩코는 단순히 춤만 의미하진 않는다. 춤·노래·기타연주 3가지가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스페인에서 4년간 춤 배운 헤어디자이너 박금영씨 “내게 플라멩코는 강호동의 고기와 같죠!”
스페인에서 4년간 춤 배운 헤어디자이너 박금영씨 “내게 플라멩코는 강호동의 고기와 같죠!”
무대 위 여성들의 정체는 스페인 세비야 대학에서 플라멩코 공부를 하고 있는 사라 김과 그가 가르치는 제자 4명. 나이대도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숨가쁘게 공연을 준비했다. 이들 중 헤어디자이너 박금영(41)씨에겐 이 공연이 더욱 특별했다. 연습을 위해 생업도 잠시 놓았다. 일과 공연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 벅찼다.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스페인 현지에서 2004년부터 4년 동안 플라멩코를 배웠단다. 1년 전 한국으로 돌아온 뒤 줄곧 일에 치여 플라멩코 춤을 출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다 스페인에서부터 알고 지낸 사라 김을 다시 만나 이번 공연에 합류했다. 돈은 잠깐 못 벌어도 좋지만 재밌는 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그에게 플라멩코는 무엇이기에. “음, 강호동씨의 고기와 비슷한 거?”

스페인, 너는 내 운명?

박씨가 플라멩코에 ‘코’가 꿰인 건 바야흐로 8년 전이다. 2002년 떠난 첫 외국여행지가 바로 스페인이었다. 7남매 중 넷째 언니와 형부가 마드리드에서 민박집을 운영한 덕에 스페인행은 자연스러웠다. 상상했던 유럽과 전혀 다른 모습의 스페인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일주일 동안 마드리드 시내의 같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갈 때마다 그 길이 새로워 보였다고. 여유 있고 느긋한 성격과 음주가무에 열광하는 면은 스페인과의 궁합지수를 높였다.


플라멩코 신명나게 추다보면 두엔데!
플라멩코 신명나게 추다보면 두엔데!
플라멩코 공연을 난생처음 본 시기도 그즈음이다. 형부네 민박집과 인연이 있었던 ‘타블라오’(tablao·플라멩코 공연이 열리는 술집)에 식구들이 초대된 것. 플라멩코 음악이 시작되자 가슴도 따라 뛰었다. “춤을 워낙 좋아해서 구경하러 갔죠. 그런데 상식을 깨는 춤이랄까. 충격이었어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죠. 머리부터 발끝, 내면까지 어디 한군데 울리지 않는 곳이 없더라구요. 자꾸 한국무용이 생각났어요. 우리는 한이나 열정을 억누르는데 이건 발산하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플라멩코에는 집시들의 ‘한’이 서려 있다. 17~18세기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한 집시들이 바로 플라멩코의 싹을 틔웠다. 여기에 라틴·아랍·아프리카 문화가 버무려져 19세기께 지금의 플라멩코 형태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남도민요에 전라도 사투리가 쓰인 것처럼 플라멩코 노랫말엔 안달루시아 지방 사투리가 쓰인다. 또 플라멩코에는 다른 춤에서 찾아보기 힘든 ‘두엔데’라는 개념이 있다. 한국말로 옮기자면 춤에 몰입하고 몰입해 다다르는 무아지경의 경지다.


플라멩코, 눈치로 배웠어요

아무리 플라멩코 공연이 인상적이었더라도 직접 춤을 추겠단 결심은 쉽지 않았을 터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배울 곳을 수소문했지만 스페인에서 봤던 그 플라멩코를 보여주는 강사가 없더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2004년 머리염색·케어 기술을 배우고자 스페인을 다시 찾았다. 이왕 스페인에서 오래 살게 됐으니 이번 기회에 플라멩코를 배워보자 싶었다. 특히 짝 없이도 혼자 출 수 있는 춤이라 마음에 더 들었다. 춤을 추고 싶을 때마다 이국땅에서 파트너를 찾아 헤맬 순 없지 않은가.

마드리드에서 플라멩코 노래·기타·춤을 가르쳐주는 전문학원을 찾았다. 이런 학원은 스페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렴하게 배우면 시간당 10유로(약 1만5000원) 정도 든다. 당시 스페인어 구사능력은 생존만 가능한 수준. 학원엔 한국인은커녕 동양인도 드물었다. 간혹 볼 수 있는 동양인은 대개 일본인이었다. “처음에 플라멩코 12박자를 세는 것부터 기본적인 발동작 같은 걸 배웠어요. 말을 알아듣질 못하니 배우고 있는 게 어떤 장르인지는 모르고 그냥 선생님 시범에 따라 ‘눈치와 감’으로 익혔죠. 하하.”

실력이 쑥쑥 늘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 박자 맞추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플라멩코가 무조건! 너무! 좋단다. 기분이 안 좋다가도 연습장에만 가면 아무런 잡념 없이 몰두할 수 있었다. 연습이 끝나면 땀이 뚝뚝 떨어지니 따로 운동도 필요 없었다. 특히 신기한 건, 감정을 춤사위에 얼마나 싣느냐에 따라 흘리는 땀의 양도 달라진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사람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이 들어서 플라멩코를 시작했지만, 이제라도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은 건 행운이죠.”


플라멩코 가수 카마론 데라 이슬라(왼쪽)와 미겔 포베다의 음반.
플라멩코 가수 카마론 데라 이슬라(왼쪽)와 미겔 포베다의 음반.
흥에 겨우면 ‘올레’를 외쳐라

스페인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이 늘면서 플라멩코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오는 10월엔 엘지아트센터에서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 공연이 예정돼 있다. 아직은 낯선 예술 플라멩코, 어떻게 즐겨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무대 코앞에서 보는 걸 좋아해요. 춤과 기타소리에서 나오는 진동과 댄서들의 표정을 가까이 볼 수 있어서요.” 플라멩코를 보는 관객들은 침묵할 필요가 없다. 감흥이 오면 연주나 노래가 끊어질 때마다 ‘얼씨구’ 같은 추임새인 ‘올레’를 외치면 된다. 추임새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신이 나도 박수를 치는 건 자제해야 한다. 플라멩코 박자를 맞추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에 기타 연주자나 댄서에겐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소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달 또다시 마드리드로 향한다. 스스로에게 주는 3개월간의 휴가다. 플라멩코도 좀더 배울 셈이다. 파워풀한 동작이 약해 그 점을 보완할 계획이다. 유럽의 플라멩코 마니아들은 부활절이나 여름휴가를 활용해 저가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와 단기간 배우고 가기도 한다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일에 충실할 생각이다. 그러나 미래 계획에선 플라멩코를 빼놓을 수 없다. “플라멩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와서 이야기하면서 춤도 추고 놀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그런 곳이 없어서 아쉽거든요. 복권에 당첨되면 ‘타블라오’를 하나 세우고 싶다니까요.”

국내에서 플라멩코 춤을 배우는 이들은 대부분 여자들. 남자들도 도전할 수 있다. “플라멩코를 배우러 오시면 지금까지 보아온 ‘춤을 추는 여자들’이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여자들을 볼 수 있을걸요. 아, 이러면 더 안 오실라나?!”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플라멩코, 백문이 불여일견

플라멩코가 뭔지 궁금하다면? 유튜브를 뒤지면 된다. 유명 댄서·기타 연주자 이름으로 검색해보면 플라멩코의 맛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찾을 수 있다.

에바 예르바부에나(Eva Yerbabuena) | 1970년생. 전통적인 미인형 댄서로 플라멩코에서 표현할 수 있는 여성미를 극대화한다는 평.

사라 바라스(Sara Baras) | 1971년생. 10대 후반부터 주목받는 댄서로 현재까지 활동중. 40대에 들어 춤에 원숙미와 에너지가 더해졌다는 평.

호아킨 코르테스(Joaquin Cortes) | 1969년생. 팝스타에 가장 가까운 남성 댄서. 전통 플라멩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타이츠 형태의 바지와 윗옷을 입지 않는 파격적인 공연으로 유명.

파코 데루시아(Paco de Lucia) | 1947년생. 플라멩코 기타 연주자 중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짐. 동생 페페 데루시아(Pepe de Lucia)도 최고의 플라멩코 가수로 꼽힘.

글 박현정 기자·참고서적 <플라멩코-원초적 에너지를 품은 집시의 예술>(살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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