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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에서 희망을 찾다

등록 2010-11-11 10:44수정 2010-11-11 10:46

초밥
초밥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한 후배는 서른이 되자 자신에게 선물을 했다. ‘기특하다. 폭풍 같은 험한 20대를 잘도 버티고 왔구나’ 하고 말이다. 그 후배처럼 자신을 대상화시키자면 나와 밥을 가장 자주 많이 먹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다. (벌써 밥 먹을 사람 떨어졌구나, 비웃지 마시라, 그저 좀 바빴다!) 몸은 시궁창 물이 배어나오는 빨래통에 던져진 이불처럼 축축 처지고, 우울한 감정은 지하실 바닥을 뚫고도 한참을 더 내려갈 정도로 회색일 때 혼자만의 밥상을 찾아 나선다. ㄷ동에 있는 ㄱ초밥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래서 언제나 스산하다. 이곳은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가 구석에 혼자 처박혀 돼지처럼 먹고 있어도 위축되지 않아 좋다.

늘 앉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초밥바의 맨 왼쪽 끝이다. 간간이 오는 나 같은 손님은 요리사 3명 중 막내에게 배정된다. <미스터 초밥왕>의 쇼타처럼 생긴 청년이다. 그는 치료사이다. 그의 맛을 느끼고 있노라면 서서히 회색이 분홍빛으로 변해간다. 맛이 휘감아 돌아 내 정신을 빼놓는다. ‘이 지상 최고의 맛’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것이 아니다. 이곳의 최고의 맛은 총주방장이 낼 것이 뻔하다.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나아진 그의 솜씨 때문이다. 자주 가지 않는 통에 혀가 그 변화를 금방 알아챈다. 그의 초밥을 한 알, 두 알 먹다 보면 우울함이 서서히 1층으로 올라와 공기와 섞이는 순간을 맞는다. 맛에서 희망을 찾는다.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초밥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일본음식이다. 일본인들은 스시로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글로벌한 음식인데도 원시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초밥집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자 요리사를 만나기가 어렵다. ‘여자에게 초밥은 안 돼!’ 일본 사무라이 시대의 보수적인 전통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들이 이유로 꼽는 것은 체력과 여성의 배란이다. 요리사에게 체력은 중요하다. 그것은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성의 배란은 온도 때문이란다. 초밥은 온도가 미묘한 맛의 차이를 만든다고 한다. 사람의 체온과 같을 때 초밥은 가장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성은 배란이 시작되면 황체호르몬(LH)이 분비되고 체온이 1도 올라간다고 한다. 그 1도를 두고 ‘초밥은 여자가 만져서는 안 되는 요리’라고 규정짓는 것이다. 좀 웃기다. 체온은 요리할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관리하면 그만이다. 데스(물과 식초를 7 대 3으로 섞은 물, 초밥 빚기 전에 손을 담그는 물)에 얼음을 넣는 이도 있고 냉동 행주를 사용하는 이도 있다. 이런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초밥왕으로 명성이 자자한 안효주 선생을 예전에 만나 여쭤본 적이 있다. 그는 단호하게 “편견이다. 훌륭한 요리사의 조건은 본인의 의지, 열정, 품성이다. 누가 만들어도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은 맛있다”고 말했다. 그의 초밥집에는 여자 요리사들이 있다. 그들의 반짝이는, 열정 가득한 눈매들을 잊을 수가 없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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