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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서 남자 냄새를 맡다

등록 2010-10-28 14:56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저녁 7시30분, 해가 진 영등포 뒷골목은 술꾼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간 ‘경성양꼬치’는 아직 빈자리가 많다. 안쪽에 ㅇ이 앉아 있었다. 곧이어 친구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ㅇ은 나보다 어리지만 10년지기 친구다. 10년 전, 그의 반짝이는 명석함과 유쾌함, 지나치게 예의바름에 놀랐었다. 동료들은 그를 ‘이 지구에서 가장 예의바른 기자’라고 불렀다.

그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을 부러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는 담백한 이었다. 기자생활은 오래 하지 못했다. “기자가 안 맞아요.” 그는 미련없이 떠났고 한의대를 입학해서 올해 의사가 되었다.

양꼬치집 연기 사이로 그의 얼굴이 해맑게 빛났다. 만나자마자 진맥을 한다. 그는 음주귀신인 나의 간부터 걱정한다. 가방에서 작은 알약 한 통을 꺼내 준다. “녹색 부분은 술 먹기 전에, 파란 부분은 술 먹은 후에 드세요.” 아끼는 후배지만 선뜻 받기가 꺼려진다. 왜냐,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이다. 그는 학생일 때 내게 찾아와 “선배, 요즘도 음주 많이 하시죠”라고 묻고는 선물로 탕약을 건네주었다. 나는 겁도 없이 먹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몸의 반응에 대해 질문을 해왔다. 문제는 약을 먹고 난 뒤였다. 오히려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탕약은 ‘인진오령산’이고 한동안 그렇게 아픈 뒤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실험용 쥐의 기분은 당해본 사람만 안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약은 그가 해독제로 개발한 것이란다. 알약을 먹네, 마네 하는 동안 지글지글 양갈비가 익어갔다.

양고기는 원래 조금 질기다고 알려져 있다. 털을 깎고 남은 늙은 몸이 식용이 되기 때문이다. 암양과 거세한 숫양, 어린양은 그나마 연한 편이다. 특히 램(lamb·1년 이하 어린양)은 연하고 특유의 노린내도 없다. 1980년대 식품사를 저술한 이성우 전 한양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특유의 노린내는 교미기의 발정 난 숫양”에서 나는 것이고 “카프랄산, 펠라르곤산” 때문이라고 기록했다. 그야말로 ‘남자 냄새’다. 오빠의 냄새, 옆집 노총각 냄새란 소리다. 1978년 1월18일치 <경향신문>을 보면 재미있는 기사도 있다. 그 당시에도 양고기를 요리할 때는 냄새가 문제라는 기사였다. 주로 호주와 뉴질랜드산이 많다.

‘경성양꼬치’도 호주산 양고기를 쓴다. 양꼬치구이집은 가리봉동이나 연남동, 신설동 등지에 많다. 한국에 일하러 온 중국인들이나 조선족들의 단골집들이다. 값도 싸고 독특한 느낌이 매력이다. ‘경성양꼬치’는 그 집들보다는 정돈된 분위기고 생고기가 나오는 점이 다르다. 대부분의 양꼬치집들은 양념에 재운 고기가 나온다. 주인 이웅호씨는 “재우는 식은 연변식이고 베이징식은 생고기가 나와요”라고 말한다.

그날 나는 결국 알약을 삼켰다. ㅇ, 본인도 먹는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해독제란다. 내 간은 행복하다. (‘경성양꼬치’ 070-7747-9488)

글·사진 박미향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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