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슬기와 민의 리스트 마니아
흔한 오해와 달리, 상투적 표현이나 생각은 창조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효과적인 선전과 수준 낮은 농담에서 핵심 요소로 쓰인다. ‘창조적’인 문화 예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잘 이해하고 적절히 구사할 줄만 안다면 상투성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소통 | 거의 보편적인 구호가 된 말이다. 소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잊었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이를 소통 문제로 돌리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다가 얼마간 소통만 이루어내면, 문제 자체가 해결되었다는 착각을 줄 수 있다.
삶 | 언제부터인가 ‘인생’이나 ‘생활’이 아니라 ‘삶’이 더욱 직접적으로 ‘삶’을 가리키게 된 듯하다. 대체로 순우리말보다 한자어나 외래어가 거창하고 가식적으로 들리는 법이지만, ‘삶’은 예외다. 특히 ‘대안적 삶’, ‘삶의 의미’ 등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진정성 | 국어사전에 실린 말이 아니라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진정성’은 사리 분별 능력을 잃어버리고 뜨거운 가슴만 남은 사람이 좋아하는 말”이라는 누군가의 진단이 진실에 가까운 듯하다.
사람 냄새 나는~ | 신문, 노트북 전문 웹진, 경기도, 드라마, 게임, 펜션, 쇼핑몰, 심지어 진료에서까지 ‘사람 냄새’를 기대하거나 부추기는 건 그 자체로 병리적 현상이다. 극단적 형태로는 ‘사람 냄새 나는 사람’도 있다. 한편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사람 냄새 나는’을 영어로 옮겨 보니 ‘Smelly people’이라는 답이 나온다.
독자에게 열어둔다 | ‘독자’를 ‘관객’, ‘청중’ 등으로 바꿔 써도 좋다. “독자의 해석에 맡긴다” 같은 응용도 있다. 자신에 대한 불안감을 타인에게 전가하기에 좋은 수단이다. 독자에게 닫아버리거나 독자의 해석을 막는 글을 쓰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따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경계를 넘나든다 | 특히 ‘넘나든다’라는 표현이 무척 얄밉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경계를 넘나드는 게 좋은 일인지, 가능한 일인지 따져 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더욱이 경계를 ‘넘나드는’ 일로는 경계 자체가 지워지지 않으므로, 보수적인 사람을 자극할 일도 없다.
전복적 | ‘동화의 전복적 마술’, ‘전복적 글쓰기’, ‘전복적 반복과 경계를 넘어서는(!) 재각인’ 등등. ‘전복’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완전한 행복’에서부터 ‘전복과의 조개’, ‘한약을 달여 먹는 일’, ‘차나 배 따위가 뒤집힘’ 등 다양한 풀이가 나온다. ‘전복적’이라는 말의 전복적 매력은 그처럼 뜻이 다양하기에 아무도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자신만의 색깔 | 때에 따라 ‘색깔’을 ‘이미지’, ‘목소리’, ‘길’ 등으로 바꿔 써도 좋다. 어차피 사람이 분별할 수 있는 색깔 수가 많지 않으므로, ‘자신만의 색깔 찾기’는 성공하기 무척 어려운 프로젝트다. 따라서 ‘자신만의 색깔’을 계속 강조하면 여러 사람을 ‘실패자’ 범주에 묶어놓을 수 있다. 다양성 | 논쟁에서 김을 빼고 싶을 때 효과적으로 쓸 만하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라거나 “차이를 인정하자!”라는 데 반발하기는 어렵다. 예컨대-이 칼럼에 적은 생각은 주관적 견해일 뿐이니 다양성의 적이 되고 싶지 않으시다면 열린 마음으로 수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슬기·최성민/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자신만의 색깔 | 때에 따라 ‘색깔’을 ‘이미지’, ‘목소리’, ‘길’ 등으로 바꿔 써도 좋다. 어차피 사람이 분별할 수 있는 색깔 수가 많지 않으므로, ‘자신만의 색깔 찾기’는 성공하기 무척 어려운 프로젝트다. 따라서 ‘자신만의 색깔’을 계속 강조하면 여러 사람을 ‘실패자’ 범주에 묶어놓을 수 있다. 다양성 | 논쟁에서 김을 빼고 싶을 때 효과적으로 쓸 만하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라거나 “차이를 인정하자!”라는 데 반발하기는 어렵다. 예컨대-이 칼럼에 적은 생각은 주관적 견해일 뿐이니 다양성의 적이 되고 싶지 않으시다면 열린 마음으로 수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슬기·최성민/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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