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화 기자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맛보는 재미 중에는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내 취향, 나의 철학, 나만의 에지(edge)를 마구 펼칠 수 있다. 골라 먹는 재미 하면 뷔페가 으뜸이다.
뷔페(Buffet)는 여러 그릇에 음식을 담아두고 마음대로 덜어 먹는 식사 방식을 말한다. 15세기 그림 <베리 공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에는 화려한 중세유럽의 뷔페 식탁이 등장한다. 그림이 말해주듯이 뷔페는 유럽 식도락가들의 ‘재미’였다. 코스요리에 싫증이 날 대로 난 부호들의 식사 방식이었다.
정작 뷔페의 유래는 해적이다. 스칸디나비아 해적인 바이킹들은 해적생활을 하는 동안 배 안에서 절인 음식만 먹었다. 대신, 고향에 돌아오면 온갖 신선한 음식을 한곳에 차려놓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즐겼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뷔페식을 ‘바이킹 레스토랑’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뷔페가 전세계적으로 퍼진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재미있는 것은 초창기 라스베이거스 호텔업계의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한번 들어오면 ‘죽도록 오래 앉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호텔에 손님을 뺏길 염려가 적었다.
우리나라의 뷔페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음식컬럼니스트 김학민씨는 한국전쟁 이후 을지로 6가에 있던 ‘국립의료원’(현재 국립중앙의료원) 안에 있던 식당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당시 식당 이름은 ‘스칸디나비아 홀’이었다. 이 병원에 근무하고 있던 스웨덴, 노르웨이 의료진들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식당의 출입이 자유로워서 일반인들도 애용했다고 한다. 이후 뷔페식당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대연각호텔 뷔페가 문을 연 이후부터다.
후배 엠(M)과 서울시내 한 유명 뷔페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골라 먹는 재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혼 적령기를 앞둔 후배는 자연스럽게 뷔페 음식과 연애를 결부시켰다. 뷔페 음식처럼 남자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른 이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죽도록 그 사람만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0대 초반인 엠은 170㎝가 넘는 키에 동그란 눈, 늘씬한 몸매, 한눈에 미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다. 그런 그가 탄식을 한다. “없어요, 괜찮은 남자가 없어요, 전혀.” 맞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럴싸한 처자들은 많은데 그들과 짝짓기를 할 만한 남자들은 없다.
그는 멋진 남자들이 사라진 이유를 ‘게이’에서 찾았다. 요즘 “괜찮다 싶으면” 게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에게는 잘생기고 스마트한 게이 남자친구가 있다. 그와 함께 게이들이 많이 온다는 이태원의 한 바를 찾았다. 그곳에서 자신의 회사에서 킹카로 소문난 멋진 남자 둘을 보았단다. 충격이 컸다. 사내에서는 그 두 사람을 향해 목을 빼고 있는 처자들이 많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타인의 다른 삶을 이해해주는 사회가 되면 아마도 그 남자들은 커밍아웃을 할 것이다.
엠은 이런 현실에서 지난날 지나치게 쿨했던 자신의 애정사를 후회했다. 2년 가까이 사귀었던 남자를 우연히 커피숍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했더랬다. 헤어지고 나서는 뒷목이 땅겼지만 그 이유를 한 통의 문자를 받고 알았다고 한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아니?” 맞다. 엠이 심하게 상처 주고 차버린 착한 남자였다. 그저 일로 오다가다 만난 이라고 생각했단다. 엠은 이제 지난날 ‘갖다 버린’ 남자들을 다시 뒤지고 있다. 엠, 건투를 빈다. “별 남자 없어~~, 그저 너를 잘 이해해주는 남자가 최고야.”
글·사진 mh@hani.co.kr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