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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이 갑에게 바치는 ‘만두’

등록 2010-09-16 10:47

을이 갑에게 바치는 ‘만두’
을이 갑에게 바치는 ‘만두’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한 중소기업 사장이 지인들과 산을 올랐다. 힘겹게 올라가던 그를 향해 지인들이 질문을 던졌다. “왜 등산복을 안 입고 갭(GAP·미국 의류 브랜드)을 입었어?” 그는 웃으면서 한마디한다. “평생 을이었지. 옷이라도 갑(GAP)이었으면 해서.” 모두가 웃었다.

갑과 을의 관계는 곳곳에 얽혀 있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내가 을인가 싶더니 갑이 되기도 한다. 국면의 전환이다. 후배 케이(K)도 그런 경우다. “이전 연애에서는 늘 진상을 받아주던 을이었지, 지금 너무 좋아.” 배시시 웃는다. 갑의 생활을 하고 있다.

케이는 지금의 남친을 ‘막장’ 생활을 하다가 만났다. 케이가 가입한 사진 동호회의 소모임 이름이 ‘막장’이다. 대부분 20~30대 직장인인 이들은 ‘막장’으로 논다. 일을 끝내고 저녁 8시쯤 모이면 다음날 출근시간까지 밤새 논다. 술보다는 희한한 게임을 한다. ‘타인 웃기기’, ‘몸 개그’ 등이다. 케이는 그들 중에서 우수한 처자다. 좌중을 압도하면서 웃겼다. 인기가 치솟았다.

1년 전 ‘막장’원들은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제주도 바람을 맞으며 남친은 자전거 위에서 을이 되겠다고 고백을 했다. 죽도록 모시고 살겠다고 맹세했다.

을인 남자친구의 노예생활은 케이가 야근일 때 더 빛을 발한다. 남친은 커다란 도시락을 들고 늦은 밤 여친의 회사에 나타난다. 그의 손에는 얇은 피로 고기를 감싸 안은 만두가 들려 있다. 만두라! 맛계에서 만두도 을이다. 중국집의 만두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서비스다. 하지만 빠지면 어딘가 심하게 허전하다. 군만두가 없는 팔보채는 생각하기도 싫다. 을이 있어야 세상은 비로소 완성이 된다.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우리 선조들은 중국의 만두와 달리 창의적이고 독특한 만두를 많이 만들어 먹었다. 생선살을 피로 활용한 ‘어만두’, 동아의 껍질을 얇게 잘라 만든 ‘동아만두’, 네모진 모양의 ‘편수’, 골무처럼 작게 빚은 ‘골무만두’ 등.

남친의 만두는 선조들의 지혜를 닮아 창의적이다. 그가 여친을 위해 모시고 온 만두는 서울 합정동의 분식집 ‘마포만두’에 있는 ‘갈비만두’다. 갈비만두는 갈비의 향이 난다. 돼지갈비양념을 국내산 돼지에 버무려 떡갈비처럼 만든 후에 숯불에 굽는다. 그것을 으깨서 속을 만든다. 맛의 비결 중에 하나는 만두피다. 모눈종이처럼 얇다. ‘마포만두’의 주인 조영희(42)씨는 “옛날에는 만두피를 손으로 만들었어요. 얇게 하자니 더 힘들었어요. 팔이 다 나갈 정도였으니”라고 말한다. 지금은 피의 원형을 그대로 살리는 기계를 사용한다. 피가 얇아도 터지지 않는 이유는 아주 센 불에 2분 정도 쪄내기 때문이다. 고기만두도 인기 만점이다. 그곳에서 후배 커플과 어색한 ‘밥 한끼’를 먹었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만두를 먹는 동안 흐뭇한 마음이 치솟았다. 행복에 겨워 입이 귀에 걸린 을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마포만두 (02)333-9842.

글·사진 박미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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