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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요리는 사라졌지만…

등록 2010-09-09 10:46

분자요리는 사라졌지만…
분자요리는 사라졌지만…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최근 금융감독원에 직원들을 위한 카페테리아가 생겼다. 이곳의 이름이 재미있다. ‘원빈’이다. 배우 원빈의 팬들이 금감원에 많아서일까? 그것은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금감원’의 ‘원’과 커피콩을 뜻하는 ‘빈’이 합쳐진 것이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위트다.

사진가 에이치(H)의 선물도 그런 것이었다. 불쑥 찾아온 그는 독특한 문양의 가방을 내밀었다. “누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야.” 에이치는 모범생 중의 모범생이었다. 다들 교수님께 5장짜리 과제물을 내밀 때 그는 책 한권을 제출했다. 사는 모습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해 보이는 그에게 예술가란 가당치도 않아 보였다. 무릇 예술가란 좀 어딘가 풀어지고 일상의 허점이 본성인 사람들이 아니던가! 술과 놀이와는 거리가 먼 착한 모범생 에이치는 지금 한국에서 손에 꼽는 예술가가 되어 있다. 무릎 탁 치게 하는 창조적인 생각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가방은 그의 예술의 잔해물이다. 그는 세계를 돌면서 공사판 가림막을 찍었다. 그의 작품은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세상의 인기를 얻었다. 요즘은 가림막 자체를 만들고 찍는다. 그 가림막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가방 판매수익은 기부”한다. 그의 가방에 무릎을 탁 쳤다.

분자요리는 몇 년 전 한국 미식가들의 무릎 탁 치게 하는 화두였다. “뭐 이런 것이 있나! 신기하네.” 분자요리를 맛본 첫 느낌이었다. 사과모양의 디저트가 식탁에 등장했는데 사과는 아니었다. 액화질소로 급속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이었다. 맛을 느끼고 즐길 틈이 없었다. 형식에 압도당했다. 분자요리는 음식의 질감과 조직, 요리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변형시키거나 매우 다른 스타일의 음식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분자요리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분자요리전문점을 표방하고 청담동에 등장했던 ‘슈밍화’는 지금 없다. 요리업계 관계자는 “가라앉았죠. 제대로 하는 곳이 없어서인 듯해요. 홍보수단으로 활용한 측면이 많죠. 음식은 맛이 있어야 하는데 신기하기만 해서는. 비싸고….”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분자요리 하면 세계적인 레스토랑 ‘엘 불리’(El Bulli·스페인)나 ‘더 팻덕’(The Fat Duck·영국)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압구정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 케이(K)씨는 “그 레스토랑들은 분자요리전문 레스토랑이 아니죠. 그 기술을 잘 활용해서 최고의 맛을 세상에 창조한 것이죠”라고 말한다.

분자요리에 대한 열광은 식었지만 ‘엘 불리’의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처럼 그 기술을 자신의 맛에 응용하는 요리사들은 늘고 있다. ‘봄동산 메뚜기’ ‘미역 파에야’ 등을 차림표에 선보이는 한식당도 있고, 엘 불리에서 인턴생활을 했던 셰프가 솜씨를 발휘하는 레스토랑도 있다. 예술가 에이치를 그곳에서 밥 한끼 대접할 생각이다. 가방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모던 한식을 표방하는 ‘콩두’에서는 엘 불리에서 인턴생활을 한 요리사 장명순씨가 메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02-722-7002.)

글·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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