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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치는 날의 파스타

등록 2010-09-01 20:21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아주 오래전에 스파게티와 파스타를 구별하지 못한 적이 있다. 이것은 마치 송편과 떡의 관계를 이해 못하는 것과 같다. 스파게티는 수천 가지가 넘는 이탈리아 면 요리, 파스타의 한 종류다. 파스타는 정말 종류가 많다. 납작한 면, 바퀴모양, 나사모양, 만두처럼 생긴 것 등. 심지어 남성의 거시기 모양을 한 면도 있다고 한다. 너비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고 생면이냐 건면이냐에 따라 맛이 또 다르다. 면 종류도 이렇게 많은데 소스와 결합하면 그 종류는 더 늘어난다. 소스는 지방마다 다르고, 만드는 이마다 다른 맛을 낸다.

한 종류의 다른 색깔 음식을 먹다 보면 ‘사람’이 떠오르기도 한다. 파스타가 그렇다. 우리네 소면처럼 얇은 카펠리니로 만든 찬 파스타는 B형 남자가 떠오른다. 어딘가 만만치 않은 맛인데 손이 자꾸 간다. 스파게티는 늘 주변에 얼쩡거리는 오래된 남자친구들(주민번호가 ‘1’자로 시작하지만 연애감정이라고는 싹틀 수 없는)이 떠오르고, 만년필 펜촉처럼 생긴 펜네는 창의력이 통통 튀는 예술가가 생각난다. 만두 모양의 라비올리는 힘겨운 일이 생겼을 때 마구 기댈 수 있는 선배들을 닮았고, 뇨키는 거절을 명징하게 했는데도 눈치 없이 질척거리는 애들을 닮았다. 이렇게 파스타마다 연상되는 남정네들을 다 갖다 붙이면 밤을 새우고도 남는다.

폭풍우 치는 날의 파스타
폭풍우 치는 날의 파스타

나에게는 언니뻘인 A는 파스타를 고를 때 특히 까다롭다. 떡처럼 끈적이거나 지나치게 쫄깃한 면을 싫어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알덴테 상태의 면도 안 먹는다. 그는 펜네처럼 뾰족한 것이 좋단다.(뇨키는 정말 싫어할 것 같다) 식탁에서 꼼꼼하고 자신의 일에는 완벽한 똘똘이 언니가 배우자를 고를 때는 엄청난 내공을 발휘할 줄 알았다. 하지만 언니는 그러지 못했다. 24살 꽃 같은 나이에 결혼해서 고등학생 아들이 있지만 지금 그는 혼자다. 오래전 그는 이혼의 상처를 겪었다. 아들과 떨어져서 살지만 그는 좋은 엄마였다. 아들의 일생을 좌우할 것을 훌륭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입맛이다. “세상에서 접한 첫맛이 평생을 좌우한다지. 건강한 것들로 즐기게 해주고 싶었어.” 그는 기묘한 이유식을 만들었다. 당근, 토마토, 단호박, 고구마 등 몸에 좋다는 채소와 과일들을 곱게 갈아서 작고 동글게 말아서 얼렸다. 얼린 것들을 매일 1~2개를 녹여서 같은 시간 반복해서 주었다. 매우 단 과일은 뺐다. 처음에는 고개를 돌렸던 아들은 점차 엄마의 희한한 이유식에 길이 들여졌다. “지금 내 아들 너무 건강해, 당근을 가장 좋아해.” 그의 아들은 “엄마와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내게 정말 중요한 것들을 해줘서 고마워, 맘” 외친다.

그 언니와 폭풍우 치는 여름날 오후 ‘브로콜리와 새우 크림소스로 맛낸 두가지색 파스타-페투치네’를 먹었다.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를 세상은 가만두고 있다니! 온갖 종류의 최고의 파스타들 다 어디 간 거야!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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