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영혼을 위로하는 청국장

등록 2010-08-11 20:47수정 2010-08-11 21:00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그는 팔랑팔랑 계단을 내려와 청국장 집으로 들어왔다. 까만색 슈트를 입은 모습은 눈이 부시다. 겉옷을 벗자 민소매에 하얀 팔이 드러났다. 역시 눈이 부시다. 30대 초반의 A는 욕심 많은 커리어우먼이다. 누가 봐도 프로의 냄새가 난다. 그가 요즘 고민에 빠졌다. 새로 부임한 직장상사와 맞지 않아 충동적으로 사표를 던졌다.

인생에서 넘어야 할 첫번째 언덕을 만난 그를 청국장 집으로 초대했다. 몸에 좋은 청국장으로 그를 위로할 생각이었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는 몸이 튼튼해야 한다. 그에게 청국장을 권했다.

그는 몇 숟가락 뜨지 않고 한숨을 쉰다. “면접 보는 일은 쉽지 않아요.” 우아한 복장은 면접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최근 두 곳에서 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복도 많지!)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한 곳은 신생 회사다. 들어가면 월급은 적고 할 일은 태산 같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한 곳은 대기업이다. 이전의 회사에서 했던 일이 이어진다. 일은 익숙하지만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다. 그 일로 입었던 상처가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요?” 나에게 묻는다. 나의 충고는 “두 곳 중에 어떤 곳이 더 심장을 뛰게 해?” 후배는 말이 없다. “그럼 이 청국장을 맛보고 닮은 회사를 골라봐.”

영혼을 위로하는 청국장
영혼을 위로하는 청국장

우리 전통음식인 청국장 같은 일터를 찾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청국장은 먹으면 먹을수록 애정이 솟는 음식이다.

청국장은 가을부터 다음해 봄까지 만들어 먹는 발효식품이었다. 콩으로 만드는 발효식품 중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만든다. 청국장은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다. 삶은 콩을 시루 같은 곳에 담아 40도가 넘는 곳에 2~3일 동안 두면 발효가 된다. 끈끈한 실 같은 것이 생기면 소금, 파, 마늘, 고춧가루 등을 섞어 만든다. 예부터 된장과 마찬가지로 청국장은 쌀이 주식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청국장은 주로 찌개로 만들어 먹었다. 이때 5분 이상 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청국장 안에 있는 좋은 균을 살리는 방법이란다.

우리가 만난 여의도의 청국장 집은 ‘여의도참칼국수’다. 이름에 칼국수가 있는데 무슨 청국장이냐고! 칼국수가 차림표에 있지만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대부분 청국장을 찾는다. 구수한 보리밥과 함께 나오는 청국장찌개가 더 매력적이다. 콩 알갱이들이 도톰하게 살아 있어 씹을수록 고소하다. 이곳의 청국장은 희한하게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주인장 구은희(50)씨는 발효과정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한다고 말한다. 후배가 청국장을 먹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아직도 모른다. 청국장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건강한 밥 한 끼 먹이는 것이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 오전 9시~오후 9시 / 매주 토요일은 쉰다 / 청국장 정식 8천원 / 02-782-5343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