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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경계’에 카메라를 들이대다

등록 2010-06-09 21:54수정 2010-06-13 15:29

벨기에 마그리트미술관. 〈파사드 프로젝트〉(2009) 한성필
벨기에 마그리트미술관. 〈파사드 프로젝트〉(2009) 한성필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공사장 가림막 사진을 찍어온 한성필 작가, 남녀 성차에 앵글을 맞춰온 윤정미 작가
사진가는 화려한 이미지의 시대에 카메라를 무기로 자신들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하는 이들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독특한 사진 작업으로 이름을 얻기 시작한 사진가 한성필(38)과 윤정미(41)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전업 사진가로 산 지 10년도 안 된다는 점, 활동 무대가 주로 영국, 유럽, 미국 등 지구촌 곳곳이라는 점, 사진계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주목도가 높은 작가라는 점. 소재는 다르지만 ‘세상의 경계’에 대한 관심과 집요함도 비슷하다.

한성필.
한성필.

한성필(사진)씨가 주목한 것은 허상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은 다시 허상이 되어버리는 경계지점이다. 그는 공사장 가림막을 찍어서 그 지점을 드러냈다.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둘러쳐지는 가림막은 곧 사라질 물체이기 때문에 허상이다. 그 가림막에 그려진 그림조차 허상의 한 자락일 뿐이다. 하지만 현재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은 또다른 현실이다. 진짜이면서 가짜다. 한씨는 이 경계를 사진으로 재현했다. 재현한 사진은 풍부한 조형언어와 다양한 색감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가림막을 찍은 <파사드(FACADE) 프로젝트>는 2004년 영국 유학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 보수공사 현장을 갔다가 성당의 이미지가 프린트된 거대한 가림막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들었다.

파리. 〈파사드 프로젝트〉(2008) 한성필
파리. 〈파사드 프로젝트〉(2008) 한성필

파리부터 반둥까지 지구촌 전체가 무대

그는 그때부터 세상에 흩어져 있는 가림막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무작정 걸었다. ‘옳다구나’ 발견하면 꼼꼼한 작업을 시작했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24시간 그곳을 찍습니다. 앞과 뒤, 옆 골고루 찍어서 자료를 만듭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촬영시간과 앵글, 렌즈 종류를 정한다. 이런 디지털 스케치가 끝나면 대형 카메라(4×5인치 필름을 쓰는 카메라)를 든다. “대부분 자연광과 가로등 빛이 혼재하는 시간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의 사진이 회화와 사진의 절묘한 경계에 서는 이유다. <파사드 프로젝트> 이전 작업인 <그라운드 클라우드>(Ground Cloud, 2005), <마이 시>(My Sea, 1998~2005) 등에서부터 시작된 시각적 경향이다.

에단과 에단의 파란색 물건들. 〈핑크&블루 프로젝트〉(2006) 윤정미
에단과 에단의 파란색 물건들. 〈핑크&블루 프로젝트〉(2006) 윤정미


그는 삶을 치밀하게 설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후지필름사에 입사해서 평범한 샐러리맨의 생활을 한 것도 계획의 일부였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접은 적이 없어요. 유학을 가기 위한 자금이 필요했지요.” 그는 4년간 후지필름사에서 번 돈으로 영국 킹스턴대학으로 유학길을 떠났다. 그곳에서 예술행정을 공부했다. “작가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작품을 평가하고 생각해 볼 기회”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명성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물이다. 유학 생활 내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각종 국제적인 사진 행사에 참여했다. 그런 적극성은 국제적인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의 눈에 들었고 다양한 전시 기회를 얻었다.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사진 비엔날레 ‘포토 페스트’(FOTO FEST 2004) 초청, 중국 핑야오 사진 페스티벌 참가, 일본 ‘포일 갤러리’ 전시, 샌타바버라 뮤지엄 오브 아트(SBMA) 그룹전 등 국제적인 무대들이 줄을 이었다.

〈마이 시〉(2000). 한성필
〈마이 시〉(2000). 한성필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작품 활동의 원동력은 국제적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작가가 특정 장소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가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2004년 유네스코에서 진행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선발된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프랑스 파리, 인도네시아 반둥, 독일 베를린 등에서 거주하면서 경험한 다른 문화가 자산이 되었다.

윤정미. 김은주 제공
윤정미. 김은주 제공

사진가 한성필이 공간의 흔적에 집착한다면 윤정미(사진)는 인간의 성별에 앵글을 맞춘 사진가이다. 남녀의 미묘한 경계지점이 그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의 작품 <핑크 & 블루 프로젝트>는 2~4살 아이들의 장난감과 그것에 포위되어 있는 아이를 찍은 사진 시리즈이다. 묘하게도 여자아이들의 장난감은 모두 분홍색이고 남자아이들의 장난감은 예외 없이 파란색이었다. “우연한 발견”이었다. 윤씨는 그의 딸 서우가 4살 되던 해에 딸의 방을 찍었다. 사진은 분홍색 장난감으로 도배되었다. “딸의 친구들도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놀랐다. 2004년 미국 학교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 입학하면서 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미국과 중국 아이들, 다른 나라 아이들도 비슷했어요. 다른 색의 장난감을 사려고 해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어요.”

서민지와 민지의 핑크색 물건들. 〈핑크&블루 프로젝트〉(2009) 윤정미
서민지와 민지의 핑크색 물건들. 〈핑크&블루 프로젝트〉(2009) 윤정미

60명 넘는 미국·한국 아이들의 장난감이 피사체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의 종류와 양은 그 사람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해주는 매개체이다. 그는 고착화된 색이 “우리의 본능”에서 출발한 것인지 “자본이 만든 상업적인 이유” 때문인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 현상에는 “문화인류학적인 이유”도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방에 펼쳐놓은 물건들의 양은 엄청나다. 한 아이가 이렇게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다른 놀라움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엄청난 소비, 그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사회의 한 단면이 한 장의 사진에 잘 드러났다. 그 단면 위에는 성의 구별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어 있었다.

그는 이 사진을 2005년부터 2년간 찍었다. 60명이 넘는 미국과 한국의 아이들, 수십개의 장난감이 피사체가 되었다. 자신을 소개하는 전단지를 만들어서 온종일 뉴욕을 헤매기도 했고, 4~5시간 쪼그리고 앉아 물건을 배치하기도 했다. 정확한 초점을 위해 광량이 센 두 개 조명을 밝혀 찍었다. 미대를 졸업한 이답게 율동미와 균형감을 살려 “작은 물건은 앞으로, 큰 물건이나 옷은 뒤에” 배치했다.

2006년 그의 이 사진들은 미국 온라인미술 매체 ‘아트 인포’에 소개되었다. 반향은 컸다. 국적과 관계없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었다. 당시 뉴욕시립미술관 큐레이터였던 보니 요컬슨은 그의 작품을 개인적으로 소장하기도 했다. 젱킨스 존스 갤러리(뉴욕, 2008), 보리나스 미술관(샌프란시스코, 2009) 전시 등이 이어졌다. 현재 그는 미국 젱킨스 존스 갤러리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오발탄. 윤정미
오발탄. 윤정미

2010년, 조금씩 진화한 그의 사진은 또다른 색다름을 선사한다. “4년 전 찍었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 같은 형태의 사진을 찍었어요. 아이들의 자아가 강해지면서 색도 변했어요.” 20년대 한국 근대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사진 작업도 시작했다. 어떤 경계가 녹아 있을지 궁금해진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제공 한성필, 윤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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