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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김남길을 이렇게 만들었나

등록 2010-03-17 19:35수정 2010-03-20 10:13

사진집 <인투 더 와일드>에 등장한 배우 김남길.
사진집 <인투 더 와일드>에 등장한 배우 김남길.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놀랍도록 자연스런 셀레브리티 사진으로 사랑받는 토종 패션사진가 조남룡
‘비담’이다. 버림받아도 연애 한번 해보고 싶은 ‘비담’이다. 그가 장난스럽게 웃고 있다. 화장실에서 ‘쉬’까지 하면서도 카메라를 본다. 팬티 바람으로 부스스한 얼굴도 있다. 어디에서도 <선덕여왕>에서 카리스마 작렬했던 ‘비담’, 김남길은 볼 수가 없다. 다른 남자 배우들의 그 흔한 초콜릿복근도 없다. 그저 연기로 세상과 승부를 보고 싶은 배우의 열망이 사진 속에 켜켜이 뿜어 나온다. 자연스럽다.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그래서 사진은 우아하고 품위가 있다. 배우 김남길의 화보집, <인투 더 와일드>를 펼쳐 든 느낌이다.

배우 김남길이 장난스런 행동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집 <인투 더 와일드>.
배우 김남길이 장난스런 행동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집 <인투 더 와일드>.

티브이엔 월드스페셜 <러브> 사진전의 배우 이요원.
티브이엔 월드스페셜 <러브> 사진전의 배우 이요원.

매향리 사진 기증 등 사회적 기여도 활발

이 사진집의 주인공은 김남길일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그를 스타 이전에 배우로 자연스럽게 그려낸 사진가 조남룡(52)이다. “사적인 사진을 찍고 싶었다. 연출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그를 찍었다.” 사진가의 생각에 배우는 동의를 했다. 까다로운 배우 같으면 화낼 만한 사진도 김남길씨는 오히려 즐거워했단다. 사진작업을 함께 하면서 신뢰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진가로서 그의 큰 장점 중 하나는 피사체와 진심으로 친해지는 것이다. “관계에서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점이 다른 사진가의 ‘셀레브리티 포트레이트’와 다른 미묘한 울림이다.

지난 2월 케이블 채널 티브이엔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월드 스페셜 러브(LOVE)’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아이티 난민들을 위한 기금 마련 전시였다. 전시에 참여한 그의 사진이 돋보인다. 베트남의 열대몬순기후로 땀범벅이 된 배우 이요원은 스타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느 날 찾아온 아주 평범한 누이처럼 보였다.

2000년대 <바자>, <보그>, <엘르>에 게재된 조남룡의 패션사진.
2000년대 <바자>, <보그>, <엘르>에 게재된 조남룡의 패션사진.

2000년대 <바자>, <보그>, <엘르>에 게재된 조남룡의 패션사진.
2000년대 <바자>, <보그>, <엘르>에 게재된 조남룡의 패션사진.


“돈도 주지 않는 일”을 그가 선뜻 수락한 이유는 “이제는 사진을 통해 사회를 위한 일들을 하고 싶다”는 그의 의지 때문이었다. 쉰을 넘어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찾는다. 배우 최강희와 2009년 자살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모델 김다울을 과거 환경운동연합 홍보대사로 추천한 일 같은 것이다. 최근에는 곧 건립 예정인 ‘매향리평화박물관’에 그가 찍은 매향리 사진을 기증하는 등 더 다양한 활동을 모색중이다.

그는 세상사에 관심이 많던 사진가는 아니다. ‘기여가 필요한 세상’보다는 화려한 패션의 세계의 중심에서 셔터를 눌렀던 사진가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바자>, <보그>, <엘르> 등 국내 유명 패션지 화보에는 늘 그의 이름이 있었다. 끼로 똘똘 뭉친 감성으로 치밀한 사진들을 찍었다. 철저히 계산된 조명으로 눈이 부신 사진들을 만들었다. 명성은 쌓이고 후배들은 어시스턴트를 하겠다고 그의 스튜디오로 몰려왔다. ‘조남룡스튜디오’를 거쳐 90년대에 문을 연 ‘데이라이트’ 스튜디오는 패션의 1번지 청담동에 자리잡고 화려한 날개를 펼쳤다. 한때 이 스튜디오는 20명이 넘는 사진가가 일하는 기업이었다.

그는 세계 패션 1번지나 현대사진을 이끈 뉴욕이나 런던으로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토종 패션사진가이다. 그저 이 땅에서 기회가 오면 ‘죽도록 사진’을 찍었다.

배우 수애.
배우 수애.

몸사진. 삶의 흔적이 보인다.
몸사진. 삶의 흔적이 보인다.

조남룡이 작업한 영화 <똥파리> 포스터.
조남룡이 작업한 영화 <똥파리> 포스터.

처음 사진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때다. 인천이 고향인 그는 기술자였던 아버지가 베트남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카메라를 사오면서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고이 모셨다. 학교 앞 디피점(필름의 현상, 인화, 확대를 하는 가게)에서 사진이 인화지로 뚝딱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보고” 그 매력에 폭 빠졌다. 2학년 때부터 사진을 찍고 현상하는 일에 매달렸다. 사진대회에서 상도 탔다. 자연스럽게 사진학과(중앙대학교 77학번)로 진학했다. “<라이프>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을 보면서 그런 사진가가 되고 싶었다. 패션사진은 오히려 나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고 그는 학창 시절을 회상한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는 잡지사 ‘주부생활’에 입사했다. 사진가 조세현이 그의 동료였다. <세계일보>가 창간되면서 신문사로 자리를 옮겼다. 10년간의 세월이었다. “잡지사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잡지사 기자는 패션, 인테리어, 인물 인터뷰 등 다양한 사진들을 찍는다. 그때 집창촌이나 고래잡이 장생포 현장 등을 잠입해서 르포 사진도 많이 찍었다”고 말한다. 데스크는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패션사진과 인물사진을 맡겼다. 잘 찍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패션사진가는 영화감독과 같다. 모든 스태프를 조율하면서 최고의 사진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한다. 재능은 결국 그를 패션사진가로 만들었다.

그는 모델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지 않는다. 상황 설명만 할 뿐 그에게서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끌어낸다. 한 장면을 100장 이상 찍기도 한다. 그중에서 90%는 버리는 사진들이다. 포토샵 작업도 최소화한다. 최대한 아날로그적으로 보이려고 작업한다.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과 죽이 맞다
사진가 조남룡
사진가 조남룡

그는 국내파든 해외파든 사진에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를 알리고 계속해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실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려면 “누가 얼마나 기회를 가졌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겸손의 말을 잇는다. 그는 운 좋게도 기회가 많았고 그 기회 때마다 최선을 다해 찍었다. 아이러니하게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한 방법은 오직 사진을 잘 찍는 것”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찾아온 기회에 그는 최선의 땀방울을 흘렸다.

지금 ‘데이라이트’는 이름은 있으나 회사는 없다. 그는 ‘가볍게’ 홀로 사진 찍는 삶을 선택했다. 마음에 드는 영화에 자신의 카메라를 드는 삶이다. 영화 <똥파리>의 포스터는 그렇게 해서 찍었다.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 포스터를 찍고 난 다음 영화사가 건네준 데모테이프를 봤는데 너무 좋았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위해서 욕설 연기를 제대로 재현하는 양익준 감독과 죽이 맞았다.

앞으로 <러브>전 같은 기회가 오면 또 열심히 매달린 것이란다. 기회를 실력으로 만드는 재주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 그의 사진 지평은 더 넓어질 것이다.

요즘도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될 수 있느냐’고 묻는 학생들이 찾아온다. 그의 대답은 한가지다. ‘너만의 스타일이 있는 포트폴리오를 아주 잘 만들어서 기회를 잡아라.’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작품사진 조남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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