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노무현 진영의 좌장 격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미국 케네디 스쿨같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교육하는 대학원대학인 노무현 스쿨을 비롯한 구체적인 추모사업 계획들을 설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이해찬 전 국무총리
거대권력·보수언론·독점재벌에 맞설 축 필요
선거출마 않고 민주개혁진영 역량 강화 전념
공공정책 연구 위한 ‘노무현 스쿨’ 설립 계획
범노무현 세력 신당 추진엔 직접 관여 안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무현 가치’의 재평가 문제와 범노무현 세력의 진로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범노무현 세력의 실질적 좌장 구실을 하고 있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지난 3일 만났다. 이 전 총리는 11일 각계 인사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재단 구성 첫 준비모임을 주관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 민주개혁진영 전체의 역량을 강화하는…시민정치운동”을 자신의 과제로 제시했다. 방법론 중 하나로 그는 “공공정책 교육과 연구의 중심 근거지로 노무현 스쿨을 대학원대학 형태로 만들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정당정치에 참여하거나 선거 출마 등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치적 포석으로 비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뜻이었다.
-20~30대 직장인·대학생 여성들이 이 전 총리를 ‘대장부엉이’로 뽑아 지지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노무현 이후’의 또다른 현상으로 보인다. “회원이 1800여명으로 시작해 금세 9000여명이 되더라. 이들을 만나 보고 386 이후 새로운 촛불문화 세대라는 느낌을 받았다. 386 세대는 생각해놓고 움직이니까 발이 느린데, 자기들은 움직이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더라. (노 전 대통령 추모 광고 게재를 위해) 바자회를 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위급하다고 하니까 격려글을 써모아 방문도 한다. 20대가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의식 있는 사람들은 훨씬 발랄하고 자유롭게 발전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언론관련법 강행처리에 대한 비판여론이 많다. 민심 향배를 어떻게 보나? “언론을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것을 국민들이 5공 때부터 봤다. 국민들의 큰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궁극적으로는 보궐선거나 지방선거 때 표로 심판하겠다는 마음을 다져가는 것 같다.” -요즘 민주당의 시국 대처 방식에 대해선? “민주당은 원내·외 투쟁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민주당이 할 만큼 하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얼마만큼 끈기 있게 하는가, 그래서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보여 감동을 주는가 하는 데 있다.” -이 전 총리는 1997년, 2002년 대선과 여러 차례 총선을 기획한 전략통이다. 범야권이 다음 대선까지 내다보고 현시점에서 주력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국민의 정부가 정권 교체할 때나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로 계승할 때나 단독이 아니고 연대해서 한 것이었다. 새로운 정권 교체를 위해서도 현재의 개별 역량은 약하다. 연대를 통해서만이 정권을 다시 교체할 수 있다. 연대하려면 첫째,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때도 나중에 자민련이 연대를 해체했다. 노 대통령도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했다가 갈라졌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신뢰 기반을 가지려면 우선 지난 10년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평가가 있어야 한다. 공과 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상호 공동의 인식이 형성된다. 앞으로 발전 경로에 대한 인식도 같이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차분하게 이슈에 대응하고 선거 때 연합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좀 추상적으로 들린다. 어떤 세력을 고려하나?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이 있고, 지난 10년 동안 성장한 많은 시민단체가 있다. 지식인 그룹도 있고, 친노세력도 정치적 단위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정치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정치 활동하는 데 마음을 주고자 하는 새로운 시민(그룹)들도 큰 틀의 연대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막연하다. 어떤 테이블에서 어떤 방식으로 할지 복안이 있나? “노 대통령 49재 뒤에 소장 학자들이 추모 심포지엄을 했다. 노 서거 이전에 감정적 주장만 있었던 것과 달리, 그 자리에서부터 약간 분석적 접근이 나왔다. 더 나아가 구체적 정책 하나하나를 놓고, 성공한 측면과 부족한 측면을 짚자는 것이다. 독일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은 그런 평가를 엄정하게 한다. 그래야 다음에 일을 같이 할 전제와 기반이 만들어진다. 학자와 당사자들이 함께 해나갈 필요가 있다.” -평가작업을 민주당 중심으로 해야 하나? “국민의 정부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민주당보다는 친노세력이 좀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시민단체나 학계, 언론이 함께 참여해 평가의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범노무현 세력의 정치적 진로는? 친노 신당은? “현재로선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지지하는 모임을 하나 결성해 그것을 허브로 해서, 민주당에서 활동할 사람은 민주당에서 활동하고 신당 할 사람은 신당을 추진하고 시민단체를 할 사람은 시민단체로 가자는 쪽으로 논의하는 단계이다. 나는 좀 하고 흩어질 게 아니라 전천후 연대를 해야 하는 관점에서 서로 존중해가면서 논의를 충분히 하자는 입장이다. 그런 차원에서 논의를 함께 하고 있다.” -친노 신당 준비에도 직접 관여하나? “그건 아니다.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도 노무현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집단 전체의 한 부분이란 뜻이다.” -앞으로 범야권의 세력 재편 논의가 분분할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재야활동 10년, 정당정치를 20년 했다. 지금 보니까 민주개혁진영을 강화시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정당, 시민단체, 언론, 유권자 조직 등 민주개혁 전체 진영을 지금보다 성숙시켜야 거대 언론, 독점 재벌, 거대 권력에 맞서는 민주사회의 한 축을 만들 수 있다. 이제 (개인적으로는) 정당정치도 한계가 있는 일이고, 대신에 전체 진영의 역량을 만들어가는 일을 해보려 한다.” -정당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선거에 출마하고 국회의원 하는 정치는 안 하겠다.” -선거 출마나 정당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진영 강화에 기여한다는 이야기가 낯설다.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오바마가 당선되는 데 무브온의 힘이 컸다. 그건 언론기관도 정당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닌 포털사이트다. 거기서 평상시에 굉장히 전문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실천활동을 많이 한다. 그리고 선거 때는 집중적으로 오바마를 지원했다. 이런 새로운 인터넷 시대의 활동 영역이 있는 것처럼, 앞으로 우리 민주개혁진영 차원에서 정당을 현대화하거나 시민·사회단체를 강화하거나 정책 연구를 강화하는 등의 일이 많다.” -정당정치가 아니면 정치적 성격을 갖는 시민운동인가? “시민정치운동이나 시민정치 활동이라고 보면 되겠다.”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 준비 상황은? “추모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추모행사, 저작물 발간과 장기적 기념사업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그 책임을 제가 맡기로 합의했다. 기념사업회는 9월 하순쯤에 발족하려고 생각중이다. 봉하마을에서 묘역과 생가, 사저를 관리하고 안내하는 일은 현지에 별도의 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기념사업 방향은? “대통령이 남긴 자료를 정리하는 게 시급하다. 다음에는 진보의 미래라는 연구 성과물 발간이 필요하다. 노 대통령의 진면목을 전달할 평전, 전기도 내야 한다. 길게는 케네디 스쿨처럼 노무현 스쿨을 만들자는 논의도 있었다.” -노무현 스쿨의 구체적인 내용은? “케네디 스쿨은 대학원대학으로 정치, 시민운동, 지방자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케네디 가문에서 오랫동안 운영해왔고 세계적인 공공정책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았다. 노무현 스쿨은 노 대통령이 추구하던 민주주의와 인권, 휴머니즘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대학원대학을 만들자는 것이다.” -정규 학위과정을 두나? 교수와 캠퍼스를 마련하느라 돈이 많이 들 텐데? “정규적인 석·박사 과정을 하려 한다. 대학원대학은 캠퍼스가 없어도 강의실만 있으면 된다. 교육부 지정 기준이 그리 크지 않다.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또한 전직 대통령 예우·지원 선례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에서 기념사업회에 200억원을 지원했고, 김대중 대통령한테는 60억원을 지원했다. 김대중 도서관을 만든 게 그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거제시에서 기념관을 준비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기념사업 재단을 만들어 거기에 재산 출연과 모금이 이뤄지면, 상응하는 금액을 정부가 지원하게 된다. 그 정도 비용이면 대학원대학은 만들 수 있다.” -노무현 스쿨이 또하나의 근거지가 될 수도 있겠다. “기념사업을 세미나, 심포지엄이나 그 밖의 행사 위주로만 해선 안 된다. 그런 건 그냥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신에 대학원대학은 교육과 (정책노선) 연구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 인터뷰/박창식 선임기자 cspcsp@hani.co.kr
재야서부터 국회·정부까지 노 전 대통령과 ‘22년 동지’
이해찬 전 총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오래 일을 함께 한 동료이자 동지적 관계였다.
두 사람은 1987년 6월 항쟁 무렵 재야단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알게 됐다. 이 전 총리는 서울의 민통련 본부 정책실장, 노 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서 부산 민통련 간부로 활동했다. 88년 13대 국회에 두 사람은 나란히 진출한다. 이 전 총리는 평화민주당, 노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으로 당이 달랐지만 이상수 전 의원과 함께 ‘노동위원회 3총사’로 주목받았다. 이들은 상임위 질의자료를 공유하다시피 팀플레이를 벌여, 노동부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 쪽의 보좌진 안희정·이광재·이호철씨, 이 전 총리 쪽의 유시민·정태호씨 사이에는 한 식구 같은 팀워크가 생겼다. 두 사람은 그 뒤로도 주고받는 인연을 이어나갔다.
참여정부 들어 이 전 총리는 한달에 최소 한두 차례 노 전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사이였다. 2004년 총리로 기용한 것도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료한테 믿고 맡기고자…”라는 의미가 컸다.
이 전 총리는 서거 소식을 중국 시안 여행중에 접했다. 급히 귀국하는 비행기 창문 밖으로 노 전 대통령과의 22년 인연의 장면들이 흩어져 날아가더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안동교도소에 수감 중 어머니와 아내가 면회 왔다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눈물 흘렸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진영의 실질적 좌장으로 꼽힌다. 기념사업 재단 책임을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밖에 한명숙 전 총리는 서울시장 선거 출마 쪽으로 거론되며 이병완 전 비서실장은 친노 신당 준비에 관여하고 있다. 문재인 전 실장은 공적 활동에 거리를 두려 한다.
박창식 선임기자
영상: www.hanitv.com
선거출마 않고 민주개혁진영 역량 강화 전념
공공정책 연구 위한 ‘노무현 스쿨’ 설립 계획
범노무현 세력 신당 추진엔 직접 관여 안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무현 가치’의 재평가 문제와 범노무현 세력의 진로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범노무현 세력의 실질적 좌장 구실을 하고 있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지난 3일 만났다. 이 전 총리는 11일 각계 인사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재단 구성 첫 준비모임을 주관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 민주개혁진영 전체의 역량을 강화하는…시민정치운동”을 자신의 과제로 제시했다. 방법론 중 하나로 그는 “공공정책 교육과 연구의 중심 근거지로 노무현 스쿨을 대학원대학 형태로 만들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정당정치에 참여하거나 선거 출마 등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치적 포석으로 비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뜻이었다.
-20~30대 직장인·대학생 여성들이 이 전 총리를 ‘대장부엉이’로 뽑아 지지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노무현 이후’의 또다른 현상으로 보인다. “회원이 1800여명으로 시작해 금세 9000여명이 되더라. 이들을 만나 보고 386 이후 새로운 촛불문화 세대라는 느낌을 받았다. 386 세대는 생각해놓고 움직이니까 발이 느린데, 자기들은 움직이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더라. (노 전 대통령 추모 광고 게재를 위해) 바자회를 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위급하다고 하니까 격려글을 써모아 방문도 한다. 20대가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의식 있는 사람들은 훨씬 발랄하고 자유롭게 발전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언론관련법 강행처리에 대한 비판여론이 많다. 민심 향배를 어떻게 보나? “언론을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것을 국민들이 5공 때부터 봤다. 국민들의 큰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궁극적으로는 보궐선거나 지방선거 때 표로 심판하겠다는 마음을 다져가는 것 같다.” -요즘 민주당의 시국 대처 방식에 대해선? “민주당은 원내·외 투쟁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민주당이 할 만큼 하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얼마만큼 끈기 있게 하는가, 그래서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보여 감동을 주는가 하는 데 있다.” -이 전 총리는 1997년, 2002년 대선과 여러 차례 총선을 기획한 전략통이다. 범야권이 다음 대선까지 내다보고 현시점에서 주력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국민의 정부가 정권 교체할 때나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로 계승할 때나 단독이 아니고 연대해서 한 것이었다. 새로운 정권 교체를 위해서도 현재의 개별 역량은 약하다. 연대를 통해서만이 정권을 다시 교체할 수 있다. 연대하려면 첫째,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때도 나중에 자민련이 연대를 해체했다. 노 대통령도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했다가 갈라졌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신뢰 기반을 가지려면 우선 지난 10년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평가가 있어야 한다. 공과 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상호 공동의 인식이 형성된다. 앞으로 발전 경로에 대한 인식도 같이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차분하게 이슈에 대응하고 선거 때 연합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좀 추상적으로 들린다. 어떤 세력을 고려하나?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이 있고, 지난 10년 동안 성장한 많은 시민단체가 있다. 지식인 그룹도 있고, 친노세력도 정치적 단위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정치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정치 활동하는 데 마음을 주고자 하는 새로운 시민(그룹)들도 큰 틀의 연대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막연하다. 어떤 테이블에서 어떤 방식으로 할지 복안이 있나? “노 대통령 49재 뒤에 소장 학자들이 추모 심포지엄을 했다. 노 서거 이전에 감정적 주장만 있었던 것과 달리, 그 자리에서부터 약간 분석적 접근이 나왔다. 더 나아가 구체적 정책 하나하나를 놓고, 성공한 측면과 부족한 측면을 짚자는 것이다. 독일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은 그런 평가를 엄정하게 한다. 그래야 다음에 일을 같이 할 전제와 기반이 만들어진다. 학자와 당사자들이 함께 해나갈 필요가 있다.” -평가작업을 민주당 중심으로 해야 하나? “국민의 정부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민주당보다는 친노세력이 좀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시민단체나 학계, 언론이 함께 참여해 평가의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범노무현 세력의 정치적 진로는? 친노 신당은? “현재로선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지지하는 모임을 하나 결성해 그것을 허브로 해서, 민주당에서 활동할 사람은 민주당에서 활동하고 신당 할 사람은 신당을 추진하고 시민단체를 할 사람은 시민단체로 가자는 쪽으로 논의하는 단계이다. 나는 좀 하고 흩어질 게 아니라 전천후 연대를 해야 하는 관점에서 서로 존중해가면서 논의를 충분히 하자는 입장이다. 그런 차원에서 논의를 함께 하고 있다.” -친노 신당 준비에도 직접 관여하나? “그건 아니다.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도 노무현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집단 전체의 한 부분이란 뜻이다.” -앞으로 범야권의 세력 재편 논의가 분분할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재야활동 10년, 정당정치를 20년 했다. 지금 보니까 민주개혁진영을 강화시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정당, 시민단체, 언론, 유권자 조직 등 민주개혁 전체 진영을 지금보다 성숙시켜야 거대 언론, 독점 재벌, 거대 권력에 맞서는 민주사회의 한 축을 만들 수 있다. 이제 (개인적으로는) 정당정치도 한계가 있는 일이고, 대신에 전체 진영의 역량을 만들어가는 일을 해보려 한다.” -정당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선거에 출마하고 국회의원 하는 정치는 안 하겠다.” -선거 출마나 정당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진영 강화에 기여한다는 이야기가 낯설다.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오바마가 당선되는 데 무브온의 힘이 컸다. 그건 언론기관도 정당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닌 포털사이트다. 거기서 평상시에 굉장히 전문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실천활동을 많이 한다. 그리고 선거 때는 집중적으로 오바마를 지원했다. 이런 새로운 인터넷 시대의 활동 영역이 있는 것처럼, 앞으로 우리 민주개혁진영 차원에서 정당을 현대화하거나 시민·사회단체를 강화하거나 정책 연구를 강화하는 등의 일이 많다.” -정당정치가 아니면 정치적 성격을 갖는 시민운동인가? “시민정치운동이나 시민정치 활동이라고 보면 되겠다.”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 준비 상황은? “추모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추모행사, 저작물 발간과 장기적 기념사업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그 책임을 제가 맡기로 합의했다. 기념사업회는 9월 하순쯤에 발족하려고 생각중이다. 봉하마을에서 묘역과 생가, 사저를 관리하고 안내하는 일은 현지에 별도의 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기념사업 방향은? “대통령이 남긴 자료를 정리하는 게 시급하다. 다음에는 진보의 미래라는 연구 성과물 발간이 필요하다. 노 대통령의 진면목을 전달할 평전, 전기도 내야 한다. 길게는 케네디 스쿨처럼 노무현 스쿨을 만들자는 논의도 있었다.” -노무현 스쿨의 구체적인 내용은? “케네디 스쿨은 대학원대학으로 정치, 시민운동, 지방자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케네디 가문에서 오랫동안 운영해왔고 세계적인 공공정책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았다. 노무현 스쿨은 노 대통령이 추구하던 민주주의와 인권, 휴머니즘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대학원대학을 만들자는 것이다.” -정규 학위과정을 두나? 교수와 캠퍼스를 마련하느라 돈이 많이 들 텐데? “정규적인 석·박사 과정을 하려 한다. 대학원대학은 캠퍼스가 없어도 강의실만 있으면 된다. 교육부 지정 기준이 그리 크지 않다.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또한 전직 대통령 예우·지원 선례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에서 기념사업회에 200억원을 지원했고, 김대중 대통령한테는 60억원을 지원했다. 김대중 도서관을 만든 게 그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거제시에서 기념관을 준비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기념사업 재단을 만들어 거기에 재산 출연과 모금이 이뤄지면, 상응하는 금액을 정부가 지원하게 된다. 그 정도 비용이면 대학원대학은 만들 수 있다.” -노무현 스쿨이 또하나의 근거지가 될 수도 있겠다. “기념사업을 세미나, 심포지엄이나 그 밖의 행사 위주로만 해선 안 된다. 그런 건 그냥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신에 대학원대학은 교육과 (정책노선) 연구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 인터뷰/박창식 선임기자 cspcsp@hani.co.kr
이해찬 전 국무총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