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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집권 이후 언론장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당장 방송법 등 언론관계법 개정을 밀어붙이려는 게 그 단적인 예이고 지난해는 무리수를 둬가며 <한국방송>과 <와이티엔> 사장을 교체했다. ‘피디수첩’ 제작진을 기소하는 등 파상공세를 계속하고 있는 <문화방송>의 경우는 올 8월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교체를 계기로 경영진 교체를 추진하는 등 본격적 장악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이옥경 방문진 이사장을 만나 현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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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 독립 없인 MBC 독립 없어…정권 입맛대로 경영진 교체 불보듯
미디어법 개정은 ‘언론의 지각변동’…충분한 숙성 없이 손쉽게 처리말라
인터뷰/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우선 방문진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면.
“1988년 이전에는 문화방송 주식 70%를 케이비에스(KBS)가 위탁관리하고 있었다. 88년 민주화에 따라 국회에서 케이비에스가 관리하던 주식을 이전해 방문진을 설립했다. 방문진은 문화방송에 대한 관리감독기구이며, 상법상 대주주로서 경영진 임면권을 갖고 있다.”
-이사장의 재임기간 중 어려운 일도 많았던 것 같다. ‘피디수첩’ 문제로 정권의 엠비시에 대한 공세가 가중됐고, 신경민 앵커 교체 문제로 기자들이 제작거부를 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우선 피디수첩 문제부터 보자. 검찰이 피디수첩 제작진을 기어이 기소했는데….
“정부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재협상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피디수첩은 성과가 있었다. 다만 프로그램에 일부 오류가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피디수첩은 사과와 해명, 정정보도를 했다. 무엇보다 정부 비판 보도에 대해서 내용에 오류가 있다 해도 명예훼손으로 기소하는 건 납득이 안 간다. 비판 기능은 언론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것이다. 피디수첩 쪽도 정부의 공격이 프로그램 전체를 부정한다는 생각 때문에 방어적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다. 피디수첩 문제는 어떻게 보면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자유의 문제에 대한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진 것인데 우리 사회가 그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 조사위원회 꾸려서 자체 점검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전체사회가 이를 바탕으로 함께 고민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지나치게 정치화되는 바람에 그렇게 되지 못한 상황이 무척 아쉽다.”
-말씀대로 피디수첩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를 놓쳤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정치권의 지나친 압박 탓이 크다. 피디수첩 제작진 기소 뒤 경영진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할 상황이라고 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발언이 그 대표적인 예다.
“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이 나온 것도 아닌데 그런 발언이 나온 것은 잘못됐다. 대변인 발언 뒤, 엄 사장이 물러날 것이라고 짐작해 벌써부터 누구누구가 다음 사장을 향해 뛴다는 소문도 돈다. 경영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사태로 부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변인 발언은 경영진 임면권을 가진 방문진 권한 침해라고 볼 수 있는데, 방문진은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 같다.
“발언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저하고 이사 한 분이 입장 표명을 안건으로 제안하려 했는데, 일부 이사가 반대했다. 방문진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식 표명하는 것은 합의제 기구의 정신에서 보면 표대결을 해서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일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해 접었다.”
-방문진을 민주적으로 운영한다고도 할 수 있지만 도대체 뭐하냐는 소리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수결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라는 게 개인적 소신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8월 방문진 이사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엠비시 추천이사 둘을 포함시켜온 관례를 인정하지 않을 뜻을 밝혔다.
“방문진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입법 취지에 따른 관행을 바꾸려고 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일부에선 7차례의 방문진 이사회 구성에서 4번만 엠비시가 2명을 추천하고 3번은 1명만 추천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7번 모두 2명을 추천했다. 현재처럼 일방적으로 바꾼다면 문제다.”
-엄기영 사장 교체 수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해임 때 의결정족수가 부족해서 신태섭 이사를 해임한 뒤 새 이사를 집어넣어야 했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신 이사 해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고 이에 따라 정 사장 해임 역시 문제가 될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조처가 아니냐는 것이다.
“9 대 0으로 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방문진에서는 재적 과반수인 5명만 넘으면 해임안을 포함해 모든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나 숫자의 힘으로 임기중인 사장을 해임할 수 있다고 해서, 실제로 강행한다면 방문진에 전례가 없는 일로 굉장한 충돌을 가져오고 상당히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이옥경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문화방송의 독립을 위해서는 방문진의 독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어렵게 방문진의 독자성을 키워왔는데 그게 훼손되면 안 된다”며 정부가 방문진 이사 선출에 개입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방통위, 방송통신심의위, 방문진 등이 정파적 배분 방식에 따라 구성되는 게 문제 아닌가?
“이 문제는 제도와 사람이 얽혀 있는, 생각보다 복잡한 사안이다. 방통위는 국회 의석수에 따라 분배하는 게 지금까지의 관행이다. 이렇게 정파성이 강한 방통위에서 케이비에스나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니 이것 역시 간접적 정파성을 띠게 된다. 또 방통위는 독립기관적 성격을 갖고 있던 방송위와 달리 정부기관이다. 문제는 있지만 바꾸려면 상당히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야만 한다. 사람의 문제도 있다. 이사가 되면 최대한 정파성을 떠나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일할 사람으로 구성해야 한다. 유럽 같은 경우 정부가 임명해도 말썽이 없는 건 민주적 풍토가 있어서다. 당장의 대안은 방통위원 5명이 합의하는 인물들로 방문진 이사를 구성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이사 선임 절차나, 기준 같은 것이 투명하지 않은 점이다.”
-투명하지 않다는 건?
“절차보다는 기준인데, 지금 방문진법을 보면 각계를 대표하는 인물 정도로 돼 있다. 어떤 분야의 어떤 사람이라고 명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6기 때는 여성계, 지역, 학계 등으로 나눠 뽑았다. 앞으로 그런 게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파성 얘기를 하셨는데, 이 이사장도 이미경 민주당 의원의 언니라는 배경으로 된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도 있었다.
“의혹이란 표현은 센 것 같고, 6기 이사를 거쳐 7기 이사로 연임되면서 다수 이사의 지지를 얻어 됐다. 동생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기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작년 국감에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을 듣고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이사장으로서 정파적으로 운영했다든가 하는 건 없었다고 자부한다.”
-엠비시가 공정한 방송으로 자리잡도록 지원하는 것 역시 방문진의 임무다. 그를 위해선 경영진 선출이 중요한데 정파적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를 뽑고, 그 이사들이 정치권의 뜻에 따라 경영진을 선출한다면 공정방송의 위협이 되지 않겠나?
“그런 위험이 없잖아 있다. 엠비시의 독립을 위해서는 방문진의 독립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업무인 경영진 선임 과정에서 정권의 의지가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방문진의 독자성은 꾸준히 높아져왔다. 청와대 희망과 다르게 사장을 뽑기도 하고. 엄기영 사장도 어떤 외부적 고려 없이 방문진 이사회가 독자적으로 뽑았다. 지금까지 어렵게 어렵게 방문진의 독자성을 키워왔는데, 그게 훼손되면 안 된다. 정권에 따라 사장이 바뀐다면 엠비시의 정체성이나 독립성, 자율성이 영향을 받는다.”
-8기 이사 후보로 자천타천 여러 이름이 나오는 걸 보면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엠비시에는 정권이 방문진 이사회를 통해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있다. 방문진 이사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걱정이 현실이 될 수도, 기우가 될 수도 있다. 엠비시가 굉장히 문제가 많은 조직이라며, 내가 가서 엠비시를 바로 세워야겠다는 사명의식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엠비시엔 고쳐야 할 점이 있다. 그러나 엠비시를 뜯어고치겠다는 십자군 같은 생각으로 온다면 상당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바깥에서 보는 것과 엠비시는 많이 다르다. 개혁은 엠비시 자율에 맡길 것도, 방문진 이사회가 견인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인원이 많고 고임금이라고 엠비시를 비난하기도 하는데 86년 아시아게임과 88년 올림픽 때 국가시책에 부응해서 한해에 두 세번씩 뽑은 인력들이 50대 이상이 돼 과다 인력군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3년 연속 적자가 나지 않으면 일방적 해고를 못하게 법에 되어 있다. 엠비시는 아직 적자 난 적 없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대로 가기 힘들다는 걸 잘 아니까 상여금 400%를 깎고 안식년과 임금피크제도 도입했다. 기본적으로 엠비시의 자율 책임경영을 보장하면서 관리감독권을 행사해야 한다.”
-지난해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엠비시가 정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당시 이 발언은 엠비시의 민영화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요즘 들어서는 엠비시가 공영방송을 주장한다면, 미디어렙법 제정 때 공영방송으로서 광고수주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은 민영화를 압박하는 것으로 들리는데?
“엠비시는 소유구조상으로는 공영이지만 광고로 운영되니 상업적이고 주식회사니 민영 형태다. 세계 유례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당히 독특한 위상이다. 때문에 정체성 혼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선 시청료를 안 내면서 공영방송의 가치와 위상을 가진 방송을 갖는 일로 손해날 것은 없다. 케이블 가입률이 80%가 넘어 지상파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공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영벨트를 케이비에스 혼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상업방송인 에스비에스가 비교적 괜찮은 건 엠비시, 케이비에스가 공영 방송으로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라는 학자들의 견해도 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방송법 개정을 밀어붙이려 한다. 그 핵심은 종합편성 채널이나 지상파에 재벌이나 신문이 진출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여론 다양성이 민주주의 사회에선 굉장히 중요하다. 현재의 미디어법 논의에선 그 부분이 미흡하다. 미디어 집중도를 조사할 방안도 제대로 안 돼 있고, 사후 규제를 한다면서도 방안은 없다. 사후 규제는 쉽지도 않다. 사전 규제가 맞다. 또 미디어법 개정은 언론의 지형을 바꾸는 큰 사건이다. 외국에선 몇 년씩 걸려 토론하며 충분히 숙성시켜야 하는데, 너무 쉽게 처리하려 한다.
다른 부분은 경쟁이 심해지면 소비자가 이득을 봐도, 방송은 다르다. 한정된 시장에 경쟁이 심화되면 선정성 등 상업적 경쟁에 매몰돼 자칫 공멸할 수 있다.”
정리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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