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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추천 맛집, 익명 취재를 권고함

등록 2009-04-29 21:39수정 2009-04-30 17:17

방송 추천 맛집, 익명 취재를 권고함
방송 추천 맛집, 익명 취재를 권고함
[매거진 esc]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공중파 맛집 프로 출연 식당 믿을 만한가 … 청탁 의심 벗으려면 선별과정 더 치밀해야




⊙ 조사 대상 : 종로구 낙원동 원조마산아구

⊙ 조사 내용 : 방송에 맛집으로 소개됐다는 간판으로 거리는 차고 넘친다. 한번 소개되면 금세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의 맛집 소개에 대해 영향력이 큰 데 반해 믿기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일부러 방송에 소개되지 않은 집만 찾아다닌다는 식도락가가 있을 정도다. 방송 맛집 프로그램은 믿을 만한가? 요리사 제트와 함께 ‘출발 모닝와이드’(<에스비에스>)와 ‘리얼코리아’(<에스비에스>)에 방영됐던 원조마산아구를 찾아 음식 맛을 평가하고 방송 맛집 프로그램의 신뢰성에 대해 대화했다. 이 식당은 2007년 8월17일 ‘출발 모닝와이드’의 골목 대탐험 편에 낙원동 아귀찜 골목에 있는 식당의 하나로 소개됐다. 근처의 아귀찜 식당 두 곳도 함께 소개됐다. 당시 방송 내용은 휴가철 막바지, 매운맛을 통해 이열치열로 더위를 잡는다는 게 요지였다. 매운맛과 푸짐한 양을 강조했다. 이달 말 낮에 찾아 주인에게 “방송에 나왔다는 말을 듣고 멀리서 왔다. 가장 대표적인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해물찜을 추천했다. 3만5000원짜리 해물찜 소(小)자와 술 한 병을 주문했다.

고나무 기자(이하 고) : 오후 3시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군요. 약간 고리고리한 이 냄새는 뭘까요?

요리사 제트(이하 제트) : 식당 구석에 고추장과 다듬은 배추 등이 있네요. 저기서 나는 냄새인 것 같은데요, 음식 맛을 볼까요. (해물찜을 맛본 뒤) 평을 할 게 많지 않네요. 일단, 직장인들이 좋아할 맛이네요.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요. 양도 소자가 이 정도면 많네요.

고 : 무난한 것 같긴 한데, 방송에 나올 만한 맛은 아닌데요?

제트 : 방송에는 뭐라고 소개됐죠?

고 : 푸짐하고 맛있다고 나왔죠. 매운맛도 강조됐고요. 지금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있어요. 3사 모두 실제 연출은 외주 제작사에서 하고 있습니다.

잘못 추천했나, 맛이 변했나

제트 : 어떤 해물이 들어 있나 보죠. 산낙지는 먹을 만하네요. 곤이는 어떤 생선의 곤이인지 모르겠지만 싱싱하지는 않군요. 색이 탁하고 크기가 작네요. 관자(키조개의 몸통 부분)는 오래됐는지 너무 뻑뻑합니다. 문어도 있네요. 오래 삶았는지 좀 뻑뻑하군요.

고 : 낙지와 오징어가 제일 낫네요.

제트 : 먹을 만한 해물이 낙지 정도네요. 미더덕도 신선한 맛은 아닙니다. 입안에서 터뜨렸을 때 바다 향이 쫙 올라와야 하는데 …. 식재료비가 모두 얼마 들어갔는지 궁금하네요. 새우는 냉동 새우 같은 식감이 나고, 소라도 썩 신선하지는 않군요.

고 : 알도 신선하지 않네요. 오래돼서 그런지 색이 검어요. 해산물은 원산지 표시가 없는 거죠?

제트 :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안 하는 것 같은데요. 와, 근데 정말 맵긴 맵네요 …. 한식을 너무 맵게 하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조미료를 넣어도 마늘, 고춧가루로 맵게 하면 (조미료 맛을) 못 느껴요. 혀의 통각이 마비되니까요. 흔히 코 막고 양파 먹으면 사과 맛이 난다잖아요. 그만큼 풍미가 중요한 건데, 너무 맵게 하면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죠. 학생 때 한식집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근데 손님마다 “이 집은 조미료를 안 써서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사실 그 집 조미료 엄청 썼거든요. 슬쩍 봤더니 찌개 끓이는 요리사가 고춧가루를 왕창 넣더라고요. 너무 매우니까 맛을 못 느끼는 거죠.

고 : 콩나물도 풀이 너무 많이 죽어 있네요. 좀더 탱탱하면 좋을 텐데.

제트 : 콩나물 풀이 많이 죽었네요. 콩나물은 해물을 익히기 전에 따로 조리를 해 놓은 듯한 식감이네요.

고 : 아귀찜 잘하는 식당에 가면 콩나물도 탱탱하던데요. 아귀찜이 사실 콩나물 맛에 먹는 거잖아요.

제트 : 그러니까 그런 곳이 이른바 ‘잘하는 곳’이겠죠.

고 : 2007년 방송에 나올 때는 맛이 있었는데, 손님이 몰려서 맛이 변한 걸까요? 오늘 음식 중에는 술이 제일 맛있군요.

현재 <문화방송>의 ‘찾아라 맛있는 티브이’, <한국방송> ‘무한지대’ ‘브이제이(VJ) 특공대’, ‘출발 모닝와이드’가 대표적인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다. 세 프로그램 모두 책임 프로듀서(CP)가 총지휘하지만, 실제 연출은 외주 제작사에서 한다. 이 때문인지 맛집 선정·취재 과정을 물었을 때, <문화방송>과 <한국방송>은 처음에 책임 피디가 아닌 실제 연출하는 방송작가에게 답변을 받으라고 권했다. 뒤늦게 책임 피디가 답변을 했다. <에스비에스>는 처음부터 책임 피디가 상세하게 답했다.

시청자들이 방송 맛집 소개를 보며 흔히 ‘돈을 받고 소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각 방송사는 이런 ‘비난’에 민감했다. ‘출발 모닝와이드’ 허강일 차장은 “맛집 선정은 콘셉트별로 정해지므로 청탁은 있을 수 없다. 방송 콘셉트에 맞지 않으면 식당이 아무리 장사가 잘되고 맛있어도 선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무한지대’ 홈페이지에는 아예 ‘방송에 내보내 줄 테니 돈 내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희 방송국에서는 일체의 비용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알림 글이 떠 있다.

각 방송사는 식당을 선정하는 데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출발 모닝와이드’의 경우 콘셉트가 중요하다. 이 프로그램의 ‘아주 수상한 맛집’ 코너는 일반적인 맛집이 아니라 특별한 사연과 레시피를 소개한다. 다른 두 방송사도 피디와 작가들의 난상토론 끝에 맛집을 선정한다.

선정 과정에 인터넷이 영향을 끼친다. <문화방송> 유한기 부장은 “인터넷 정보와 이른바 ‘맛객’들의 의견을 주로 취합한다”고 밝혔다. <에스비에스>도 ‘수상한 맛집’ 선정은 인터넷에 맛객으로 알려진 블로거들의 제보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한국방송> 유경탁 부장도 시청자 제보, 맛집 동호회나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1차로 식당을 선정한 뒤 다시 제작진 내부 회의를 거쳐 방송 콘셉트에 맞는 곳을 선정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유명 레스토랑 안내서 <미슐랭 가이드>는 평가의 공정성이 ‘익명 취재’에 달려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 3사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 <문화방송> 유한기 부장은 방송 콘셉트에 따라 사전 답사·취재를 할 때도 있고, 미리 연락해 촬영할 때도 있다고 밝혔다. <에스비에스>는 사전 답사(익명 취재)가 원칙이지만, 방송 콘셉트에 따라 미리 밝히고 취재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허강일 차장은 “블로거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식당을 방문해 손님인 척 관찰할 때도 있지만, 같은 프로그램의 ‘천하일미 외고집’ 꼭지의 경우 주인장의 노력과 고집이 콘셉트이므로 미리 취재한 뒤 촬영한다. 결국, 요일마다 콘셉트에 따라 몰래 취재하기도 하고, 사전 답사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한국방송> 유경탁 부장도 “사전 전화 취재를 하며 필요한 경우 제작진이 암행 사전답사를 한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미슐랭 가이드의 ‘비법’을 배우자

방송사도 공정성 논란을 인식하고 있다. 허강일 차장은 “어떤 코너보다 무거운 책임감과 까다로운 취재가 요구되는 것이 음식 코너다. 우리 방송에 출연한 집은 맛으로 검증된 집이라고 시청자들에게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익명 취재를 하지 않을 때도 있으므로, 식당에서 취재진에게는 평소보다 더 좋은 음식을 내고 일반인들에게는 그보다 질 낮은 음식을 제공할 가능성이 실제로 존재하는 셈이다.

⊙ 송치 의견 : 모든 취재에서 최소 한 차례는 익명 취재하는 것이 어떨까?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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