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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법치 무시한 해임 ‘예’ 하고 따를 순 없지않나”

등록 2009-02-05 19:14수정 2009-02-07 16:02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기관장으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압박을 받아오다 해임된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그는 해임 근거가 불분명한 몰아내기 행태에 경종을 울리겠다며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기관장으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압박을 받아오다 해임된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그는 해임 근거가 불분명한 몰아내기 행태에 경종을 울리겠다며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문화예술위원장 해임무효 소송’ 김정헌 교수
기관장 쫓아내려 아랫사람 회유·협박까지
‘구시대 발상’ 올드보이만 자리 차지해 걱정

“유인촌 장관도 언젠가는 복귀할 공간인데
문화예술계 자존심 짓밟는 행위 말았으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문화계에선 가장 많은 돈을 움직이는 중요한 기관이다. 문화예술을 진흥시킬 수 있는 각종 사업과 활동에 연간 800억원가량을 지원한다. 김정헌 공주대 교수는 이 문화예술위원회의 2대 위원장을 맡았다. 화가인 김 교수는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등 진보적인 미술 활동에 주력했고, 90년대 이후에는 문화연대 창립을 주도하면서 문화 시민운동에 앞장섰다. 2007년 9월 예술위 위원장 공모에서 당선된 그는 이후 15개월 동안 예술위를 이끌어오다 지난해 12월5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기금운용 관련 규정을 위반한 투자로 거액의 투자손실을 불렀다는 것 등이 해임 사유였다.

김 위원장의 해임은 사실 예정된 것이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거의 1년 내내 코드가 맞지 않는 기관장들을 친이명박 인사로 채우는 데 전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기가 남은 문화부 산하 단체·기관장 15명이 물갈이됐다. 이런 와중에 공모로 선출된 전문가로서 규정된 임기를 채우겠다며 끝까지 맞섰던 사람이 김 위원장이었다.

해임 직후 김 전 위원장은 해임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정부와 정면으로 싸움을 시작했다. 정권이 바뀐 뒤 물러난 기관장 가운데 해임 무효소송까지 내며 명예회복에 나선 이는 김 전 위원장과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뿐이다. 그는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싸움을 결심한 걸까? 문화예술 시민운동가로 돌아와 새 활동을 구상 중인 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법적으로 기관장 임기가 보장돼 있더라도 어차피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손발 맞는 사람들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물러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강경하게 맞서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저를 해임한 사유 중 제일 중요한 게 기금손실이었습니다. 지금 경기 한파로 문화관광부의 관광기금도 손실을 보고 있고, 정부 기금은 엄청나게 손해를 봤습니다. 그러면 유인촌 장관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하나요? 기금 손실은 해임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문화부에서 퇴진 압박을 많이 했습니까?

“먼저 국장이 와서 정리하라고 요구를 했어요. 그리고 지난 11월6일에는 김장실 차관이 10시에 김윤수 전 현대미술관장, 11시에 저를 문화부로 불러서 ‘장관이 내린 결단이니 이달 안으로 정리해 달라’더군요. 저는 그만둘 이유가 분명치 않은데 어떻게 법으로 정한 임기를 놔두고 그만두냐고 말했어요. 나중에 들으니 김윤수 관장에겐 ‘사퇴해주기만 하면 장관이 참석해 이임식을 성대하게 해주겠다’고까지 했다던데, 말을 안 들으니까 바로 그다음 날 김 관장을 해임시켰습니다. 그리고 11월 26일에는 문화부 감사관실에서 4명이 와서 자료를 찾았어요. 그때 문화부 직원이 ‘한 건이라도 나올 때까지 끝까지 뒤지겠다. 아마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12월5일 저를 해임한 거죠. 정식 감사도 아니고, 해명 기회조차 없었어요.”

-버티는 마음도 편치는 않았겠습니다.

“저야 예상도 했고 제 잘못이 아니라는 명분이 있으니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화부가 직원들을 보내 우리 직원들을 협박, 회유하면서 위원장 잘못이라고 말하라고 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는 정말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습니다. 너무 졸렬한 방법이에요. 기관장을 내몰아도 최소한의 법적 절차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공공기관에 대한 법률에 의해 들어온 사람을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내보내려는 것 자체가 법치를 무시하는 것이고, 이유도 안 되는 사유로 해임시키는 것은 이명박 정부 전체의 도덕성을 상징적으로 허무는 거예요.”

-개인이 정부와 맞붙는 소송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요.

“저는 제가 평생 변호사를 만날 일 없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못해왔던 작업이나 할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평생 문화운동과 시민운동을 한 사람이 잘못된 처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맞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잖습니까?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소송 자체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이 잘못된 처사란 것이 밝혀지는 것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문화예술위원장 해임무효 소송’ 김정헌 교수
‘문화예술위원장 해임무효 소송’ 김정헌 교수
-인간적인 번민이 많았겠습니다.

“저도 내심 올 2월쯤 되면 나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뜻을 문화부에 슬쩍 알리기도 했어요. 문화부가 예술위에 대해 진정성이 있으면 제가 떠나도 잘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는 것을 보면 그런 기대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지원정책은 제일 중요한 게 지원기관의 자율성과 존엄성이에요. 이게 무너져 일일이 통제를 받게 되면 문화부 산하의 국이나 과밖에 안 되는 거죠. 지원기관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망가뜨리고 있어요.”

문화예술계는 정권은 바뀌어도 각종 이익대표단체를 주도하는 문화권력들은 바뀌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하기로 유명하다. 문화계 기득권층들은 김 위원장 등을 좌파 문화인으로 색깔몰이하면서 한편으로 예술위엔 예전 권위주의 시절 정부가 하듯이 자금을 지원하라고 요구해 왔다. 김 위원장에게 재직 시절 겪었던 문화계 이익집단들의 모습에 대해 물었다.

-문화계 기득권층들과 부딪칠 일은 없었습니까?

“옛 문예진흥원을 예술위로 만든 취지가 예술 지원을 민간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로 꾸려나가자는 것이었어요. 제가 예술위에 들어가서 보니까 사회와는 관계없는 예술가 집단들이 자기네들끼리 연결되어 지원을 받는 것이 너무 오래 고착화돼 있어요. 한국미협에서 매년 미술대전을 주최하는데, 번번이 심사 부정이 드러나서 회장이나 심사위원이 구속되고 수사받고 그랬잖아요? 이런 문제들을 진흥원 시절에 고쳐보려 했지만 잘 안 됐어요. 예술위가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단체에는 지원을 중단하거나 엄격하게 지원하는 식으로 고쳐나간 거예요. 이런 변화가 더 이어져야 하는데 정치세력과 결탁한 예술 기득권 단체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피해를 받았다며 만회를 하려고 하는 거죠. 엠비 정권 들어서면서 2기 위원회에서 이전에 균형있게 만들었던 지원정책을 다시 없애고 있는 겁니다.”

-실제 지원해 달라는 요구들 중에 좀 심한 경우도 있었습니까?

“왜 우리 사업에 지원 적게 하냐, 우리 회원 수가 얼마인지 아느냐고 따지러 오는 보수 단체들이 많아요. 한 문학단체가 지난해 봄에 근대문학 100주년 행사를 가을에 하겠다며 지원을 해달라고 찾아왔어요. 무슨 사업을 할 거냐고 물었더니 큰 체육관을 빌려 문학인들이 모인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건 문학인 대회이지 100주년 사업은 아니잖으냐, 심포지엄이나 학술 연구는 안 하냐’고 다시 물었어요. 그랬더니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초청할 계획이래요. 그래서 ‘1년도 안 남았는데 어떻게 섭외가 됩니까’ 또 물었어요. 대답은 ‘예술위 지원금을 받아서 초청하겠다’는 겁니다. 자기네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는 정확한 계획도 없는 거예요. 도대체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드물어요.”

-그동안 지원금을 너무 쉽게 받았나 봅니다.

“우리나라가 아마 세계에서 예술단체들이 가장 거대하고 가장 많을 것 같습니다. 예총이 30만 회원이라고 하는데, 각종 장르별 협회들도 회원이 수만명 단위예요. 예술가들이 이렇게 기득권을 가지고 다툼을 벌이는 것을 보면 순수하다는 것까지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는 누구인가 떳떳이 밝히고 운동 차원에서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철저하게 혼자 작업해 시장에서 팔든지. 문화 기득권 세력들도 이젠 단체활동보다 개인적인 활동에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향후 예술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제일 걱정되는 건 10년 동안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돌아와서 완전히 구시대적인 발상을 고집하는 문제예요. 문화부가 저하고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뽑은 2기 위원 중 한 분이 저보고 ‘왜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을 외국 사람으로 앉혔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 모든 비엔날레가 모두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아무 말을 못합니다. 요즘 미술이 어떻게 바뀌고 무엇이 추세인지 관심도 없어요. 완전 ‘올드 보이’의 귀환이죠.”

-아직도 법조계 등 다른 분야에서도 정권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압력에 밀려 쓴소리를 하며 물러나고 있습니다. 먼저 경험한 처지에서 어떻게 보십니까?

“대부분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으로 물러나고 마는데, 좀 아쉬워요. 전문가로서 자기 뜻이 있으면 분명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야 된다고 봐요.”

-문화예술인으로서 유인촌 장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자체장들을 만나 협의를 이끌어내는 등 아주 추진력이 있고 성과도 내고 있어요. 하지만 성격이 좀 급해요. 사진기자들과 벌어진 ‘찍지마 사건’도 그렇고…. 예술계 수장으로서는 맞지 않는다고 봐요. 문화예술이 정책 만들어 실행한다고 생산적 효과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에요. 깊이 없는 성과는 문화예술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행정가로선 급한 것부터 빨리 해결하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요?

“물론 장관 개인의 의지, 정책 의지가 중요하죠. 하지만 소통이 필요해요. 의지가 좋아도 성급하니까 예술인들과 대화하기보다 혼자 일방주의로 움직이는 거죠. 소통 안 하고 계속 가면 결국 문화예술계 자체를 비천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요. 본인도 언젠가 문화예술계로 복귀할 텐데 문화예술계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김 전 위원장이 구상하는 새 활동 분야는 ‘마을 살리기’다. 예술가 마을처럼 꾸며 요즘 유명해진 서울 문래동 철공소 동네에 조그만 사무실도 얻었다. 어떻게 마을을 살리겠다는 걸까?

“연구소 이름을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로 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최소 단위인 마을하고 관련된 모든 일과 사업, 활동에 문화예술을 접목시키는 사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아직도 수도권 외의 지역에 2천만명이 사는데 지역의 최소 단위인 마을이 먼저 살아야죠.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가진 가치를 자각하고, 거기에 따라 발전계획을 세우면 문화예술이 지원하고 네트워킹해주는 겁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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