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오대미마을의 두루미는 참새처럼 흔하다. 낮에는 먹이활동을 하러 남쪽으로 왔다가 밤에는 잠을 자러 비무장지대로 돌아간다.
[매거진 esc] 한국관광공사와 함께하는 대한민국 끌리는 여행 ⑨ - 농촌테마마을편
바이칼호수에서 날아온 철새를 만나는 강원도 민통선 오대미마을
바이칼호수에서 날아온 철새를 만나는 강원도 민통선 오대미마을
오대미마을 여행은 이야기의 여행이다. 마을 사람에게 마을의 내력과 미래의 희망을 듣지 않으면, 분단의 철책선과 ‘두룩두룩’거리는 두루미의 소음밖에 남는 게 없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마을 주변으로 옛 도시의 흔적이 펼쳐지고, 비무장지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마을 사람들은 평화의 미래를 기다린다. 오대미마을에서 나고 자란, 농사꾼이자 가이드인 한종문(39)씨의 이야기를 따라 오대미마을과 철원평야를 여행했다.
두루미가 민통선으로 출근할 때 사람은 퇴근
“두루미들은 낮에 오대미마을 근처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밤에는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가죠. 비무장지대에선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평화롭게 쉴 수 있으니까요.”
오대미마을 사람들은 두루미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낮에는 민통선 안으로 농사지으러 들어가고, 해가 지면 민통선 밖으로 나온다. 두루미가 남으로 내려올 때 사람들은 북으로 올라가고, 두루미가 북으로 올라갈 때 사람들은 남으로 내려온다.
한겨울 오대미마을의 인기 체험활동은 두루미와 독수리 관찰이다. 이즈음 오대미마을이 자리 잡은 철원평야에서 세계적 ‘희귀조’ 두루미는 참새처럼 흔하다. 몸 색깔이 잿빛이면 재두루미이고, 검은색이면 흑두루미, 하얀색이면 그냥 두루미다. 모두 천연기념물.
두루미들은 10월부터 시베리아 바이칼호수에서 철원평야로 내려와 겨울을 난다. 차갑고 서늘한 날씨를 좋아하는 두루미도 시베리아의 겨울 추위를 버티지 못한다. 전세계 5천여 마리로 추정되는 재두루미 중 2천 마리 이상이 철원에서 겨울을 나거나 철원을 거쳐 일본 이즈미로 이동한다. 두루미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철원평야의 낟알을 먹고 산다는 얘기다.
“자세히 보세요. 두루미 무리는 많아야 네 마리죠? 단체로 먹이활동을 할 때를 빼곤 가족 단위로 이동하기 때문이에요.”
두루미 가족은 어미와 아비 그리고 새끼 두 마리다. 자동차가 다가가면 움직이지 않지만, 사람이 다가가면 금세 날아오른다. 자동차 소음은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가장 앞에서 경계를 서는 건 아비다. 그리고 어미를 따라 새끼 두 마리가 쫓아간다. 머리 부분이 노란색인 개체가 새끼다. 마을 위로는 시도 때도 없이 두루미들이 휘적휘적 날아다닌다. 두루미가 이곳을 드나든 지는 한참이지만, 사람이 마을에 산 지는 얼마 안 됐다. 오대미마을이 세워진 건 불과 41년 전. 그러니까 오대미마을은 대북심리전 마을이었다. 마을 표지석에 따르면 “내무·국방부 영도 아래 국방력 강화와 대공심리전, 식량 증진을 목적으로 입주”했다는 마을은 아버지들이 개간했다. “철원과 연천에서 지원한 장정 150명이 민통선 안으로 들어와 땅을 갈았죠. 군인처럼 군용 막사를 짓고 밤에 보초를 서고 주말엔 외박을 나갔어요.” 그렇게 마을을 만드는 데 일 년이 걸렸고, 한 줄에 다섯 채씩 서른 줄로 이어진 최신식 슬레이트 주택 150채가 들어서고야 가족들이 들어왔다. 그때 입주한 신현숙 부녀회장은 “초가집이 대부분이던 시절, 10.5평에 이르는 괜찮은 집이었다”고 회상했다. 정부는 경운기 15대를 지원했고 잘사는 농촌마을로 성장했다. 하지만 2세대인 한종문씨는 “선거날 투표하지 않는 젊은이는 혼쭐이 날 정도로 ‘국가관’이 투철한 마을”이었다며 웃었다.
어쨌든 오대미마을은 1980년대 민통선이 북상하고 1990년대 옛 소련이 몰락하고 2000년대 남북화해 시대가 열리면서 점점 평범한 마을이 되어 갔다. 그리고 대남 선전방송 대신 남북을 오가던 두루미들의 ‘두룩두룩’ 울음소리가 마을 사람들에게 들리기 시작했다. 2004년 농촌테마마을로 지정된 오대미마을은 마을의 역사와 두루미를 일반인들과 나누었고, 마을은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오대미마을에서 지척인 옛 철원읍에 들어갔다. 옛 노동당사를 출발해 신분증을 맡기고 민통선 안에 들어가면, 군청사 터, 도립의료원 터, 제사공장 터 등 기둥만 남은 도시 유적이 나타난다. 폐허가 보여주는 마지막 흔적은 인민군이 철원을 점령한 한국전쟁 때까지다. 옛 노동당사 지하에서는 국군들이 희생됐으며, 인민군이 점령한 철원의 도시 기반은 연합군 폭격으로 사라졌다. 인민군이 철원 농산물검사소에 써놓은 빨간 선전구호는 “우리 인민들의 자유스럽고 행복…”까지 이어지다가 포탄을 맞고 끊겼다.
낙엽지는 세렝게티를 나는 철새들
철원은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번화한 도시였다. 쌀이 풍족하게 나고,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지나가는 철원은 곡물창고이자 교통의 중심지였다.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는 철원을 들러 금강산까지 갔고, ‘철원의 일본 사람들은 점심때 원산에 가서 회를 먹고 돌아온다’는 말이 있었다. 보선사무소, 소방서까지 갖춘 철원역은 지금 녹슨 철마만 남았다. 한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마을 어른들은 망가진 철로와 열차 고철덩이를 걷어 고물장수에게 팔았어요.”
물론 지뢰인 줄도 모르고 머리에 이고 다녔던 어머니의 씁쓸한 기억도 남았지만.
길은 옛 월정리역사를 지나 지난해 10월 문을 연 철원평화전망대로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철원평야, 북쪽으로는 비무장지대 너머 북한이다. 3천원짜리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면 보이는 비무장지대는 초원처럼 펼쳐져 있다. 봄에는 흡사 세렝게티의 초원 같다고 한다. 철원평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두루미 떼는 낙엽 지는 세렝게티의 초원으로 날아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민통선 밖으로 빠져나갔다.
철원=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철원평야에서 비상하는 재두루미.
두루미 가족은 어미와 아비 그리고 새끼 두 마리다. 자동차가 다가가면 움직이지 않지만, 사람이 다가가면 금세 날아오른다. 자동차 소음은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가장 앞에서 경계를 서는 건 아비다. 그리고 어미를 따라 새끼 두 마리가 쫓아간다. 머리 부분이 노란색인 개체가 새끼다. 마을 위로는 시도 때도 없이 두루미들이 휘적휘적 날아다닌다. 두루미가 이곳을 드나든 지는 한참이지만, 사람이 마을에 산 지는 얼마 안 됐다. 오대미마을이 세워진 건 불과 41년 전. 그러니까 오대미마을은 대북심리전 마을이었다. 마을 표지석에 따르면 “내무·국방부 영도 아래 국방력 강화와 대공심리전, 식량 증진을 목적으로 입주”했다는 마을은 아버지들이 개간했다. “철원과 연천에서 지원한 장정 150명이 민통선 안으로 들어와 땅을 갈았죠. 군인처럼 군용 막사를 짓고 밤에 보초를 서고 주말엔 외박을 나갔어요.” 그렇게 마을을 만드는 데 일 년이 걸렸고, 한 줄에 다섯 채씩 서른 줄로 이어진 최신식 슬레이트 주택 150채가 들어서고야 가족들이 들어왔다. 그때 입주한 신현숙 부녀회장은 “초가집이 대부분이던 시절, 10.5평에 이르는 괜찮은 집이었다”고 회상했다. 정부는 경운기 15대를 지원했고 잘사는 농촌마을로 성장했다. 하지만 2세대인 한종문씨는 “선거날 투표하지 않는 젊은이는 혼쭐이 날 정도로 ‘국가관’이 투철한 마을”이었다며 웃었다.
피안에 이르는 절, 도피안사. 오대미마을에서 잠깐 다녀오기 좋은 고즈넉한 절이다.
옛 철원읍 대부분의 건물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과 달리 노동당사는 1947년 지어진 건물이다. 등록문화재 22호.
금강산전철이 지나가던 월정리역사. 여기서 반나절이면 금강산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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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군인들도 오대미마을 주변을 이루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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