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미래’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축구 국가대표 이청용(왼쪽)과 기성용. 기존 한국 축구의 선수 육성 방식과는 다른 과정을 거친 ‘새로운 아이들’이자 “즐겁지 않으면 축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당찬 신세대들이다. 구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쌍용불패’ 이청용 & 기성용
기성용
A매치 네번에 벌써 2골이나…탁월한 공배급 별명도 ‘택배’
영어까지 되는 ‘준비된 국제스타’…“나는 백패스가 싫어요~” 이청용
집에서 십자수 뜨는 ‘토끼표’…운동장서 공 다룰 땐 ‘범표’
중학때 학업포기 운동 올인…“재미없으면 축구가 아니죠” 축구는 춤이다. 사위가 현란할수록 상대는 속는다. 그래서 ‘삼바축구’니 ‘탱고리듬’이니 하는 수식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한국 축구에 두 ‘춤꾼’이 나타났다. 감각적 공 터치로 대중을 사로잡는 기성용(19)과 이청용(20)이다. FC서울의 ‘쌍용’은 국가대표팀이라는 구름을 만났다. 타고난 재질에 성실한 노력까지 곁들여지면서 펄펄 날고 있다. 한국 축구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물건’을 만났다.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차세대 대표주자로 꼽히는 두 사람의 특징은 새로운 포맷에 의해 만들어진 ‘뉴키즈’(새로운 아이들)라는 점이다. 기성용은 중학교 1학년부터 고교 2학년까지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학했다. 연 2만달러가 들어가는 값비싼 사립학교에서 기숙했고 김판근 축구교실에서 다듬어졌다. 아버지가 목표한 대로 영어로 완벽한 의사소통을 하는 국제인이다. 이청용은 어떤가. 서울 창동초교 6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고, 이력서엔 도봉중학교 중퇴가 최종 학력이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사람대접 받기 어려운 이 사회에서 그는 이단아다. 그런데 행복하단다. 군대까지 면제다. 이청용은 “중학교도 졸업 못하면 큰일나는 것 아닌가” 하며 걱정을 많이 했다. 자영업을 하는 아버지 이장근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FC서울이 육성계획을 설명하고, 영어·교양·인터뷰 등 교육프로그램을 제시하자 결단을 내렸다. 이청용은 “어차피 축구선수로 성장하려면 체계적인 훈련이 가능한 프로팀 입단이 필요했다. 만약 고등학교에 갔더라면 지금처럼 컸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21일 경기 구리의 지에스(GS)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둘의 미소가 화사했다. 이들은 강압과 위계의 전통적인 틀에 길들여진 선수가 아니다. 학력이나 연고 등에 의해 평가받는 것도 거부한다. 새로운 길 위에 서 있기에 의사표현도, ‘축구 철학’도 이전의 유형과 완전히 다르다. ‘축구를 왜 하느냐’라는 질문에 똑같이 “즐거워서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마음에 꺼리는 것도 없다. 기성용은 “한 게임 졌다고 풀죽고 연연해하지 않는다. 어차피 1년 내내 많은 게임을 해야 한다. 경기마다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스트레스조차 즐기면서 한다”고 말한다. 이청용은 “만약 어떤 코치가 나에게 축구공은 만지지 못하게 하고 운동장만 뛰라고 요구한다면, 아마 미칠 것”이라고 했다. ‘감독님 말씀이 하느님 말씀이고, 이기는 것이 전부’라는 말은 옛날 버전이다. 수줍음 많고(기성용), 집에서는 섬세한 십자수도 뜨는(이청용) 둘의 얼굴은 그지없이 착해 보인다. 그러나 그라운드에만 들어가면 절대로 중원을 내주지 않는 사자(기성용)와 순발력 넘치는 치타(이청용)로 변한다. 매우 공격적이고 승부욕이 넘친다.
축구전문 월간지 <베스트일레븐>이 최근 축구팬 1572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한국 축구를 이끌 차세대 주자’ 1위에 오른 기성용. 그는 패스된 공을 좀처럼 세우지 않고 속도를 더 붙여 전진시키거나 분배해주는 ‘살아 움직이는’ 선수다. 같은 조사에서 2위를 한 이청용은 “한 명을 제치면 기회가 온다. 공격수는 조금만 가능성이 있어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선수들의 잦은 백패스는 왜 나올까? 이청용은 “전진했다가 빼앗기면 감독 선생님한테 잔소리 많이 듣잖아요. 그래서 소극적으로 하는 것 아닐까요”라며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프로팀과 대표팀에서 모두 막내인 둘은 둘도 없는 친구이며 동기다. 6개월 터울의 생일 차이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쉬는 날엔 서로 연락해 둘만 연습훈련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팀에서도 둘의 파워는 강한 출력을 낸다. 기성용은 10대인데도 대표팀간 경기(A매치) 4회 출장에 벌써 2골로 50%의 득점률을 자랑한다. 이청용은 2004년 FC서울에 입단한 뒤 19살 때인 2007년 컵대회 도움왕을 차지했다. 올해는 대표팀에 처음 발탁돼 오른쪽 주전 공격수 자리를 꿰찼다.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 첫골은 오른쪽에서 띄워준 이청용과 이를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한 기성용의 합작품이었다.
통상 프로에 입단하면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한다. 관중도 없는 텅 빈 관중석을 바라보며 공을 찬다. 그런 혹독한 과정을 거쳐 둘은 진짜 프로로 태어났다. “재미가 없으면 축구가 아니다”라는 두 선수의 말은 신세대답다. 2006년 1군 무대에 데뷔한 이청용은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을 보는 순간 전기가 찌릿 왔다. 관중을 위해서 재미있는 경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셰놀 귀네슈 FC서울 감독도 ‘관중은 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K리그 감독과 선수들이 이들처럼 축구한다면 프리미어리그를 보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축구팬들이 당장 주말에 축구장으로 몰려가지 않을까?
한국의 지네딘 지단을 꿈꾸는 기성용은 정밀 유도탄처럼 미드필드 좌우에서 올리는 장거리 패스가 일품이다. 별명이 정확하게 배달한다는 의미로 ‘기택배’다. 포지션 경쟁자인 김남일(고베) 조원희(수원) 김두현(웨스트 브로미치)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축구인 아버지 기영옥씨의 영향이 컸다. 기영옥씨는 1983~2002년 금호고와 광양제철고 축구감독을 지낸 명지도자다. 기술축구 하면 떠오르는 윤정환(은퇴) 고종수(대전) 남기일(성남) 등이 문하생이다. 기영옥씨는 “머리로 하는 축구는 두발만 뛰어도 되지만, 힘으로 하는 축구는 네발을 뛰어야 한다.” “축구선수는 8개의 눈이 필요하다” “기술축구의 생명이 힘의 축구보다 길다”라고 아들에게 가르쳤다.
파워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이청용은 국내 제일의 드리블러를 꿈꾼다. 중3 때 그를 테스트해 프로팀에 입단시킨 조광래 현 경남FC 감독은 “드리블이 참 특이했다. 폭도 크지 않고 수비수 옆으로 살짝살짝 빠져나갔다. 그래서 서둘러 부모님을 불러서 입단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회고했다. 드리블 기술이 뛰어난 선수로는 지금까지 이영표(도르트문트)와 최성국(성남)이 꼽힌다. 그러나 이청용 우세로 판도가 기울고 있다.
‘멀티’(다기능)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현대축구다. 둘 다 오른발잡이지만 왼발도 쓴다. 청소년대표를 거치면서 최전방 공격수부터 중앙 수비수까지 안 해본 자리가 없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그 바탕이 오늘의 두 선수를 만들었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이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게 프로의 세계다. 아직 새끼호랑이인 두 선수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행여 옆길로 새는 일이 없을까? 두 선수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정작 선수들은 어떨까? 고등학교 선배인 고종수와도 가끔 만난다는 기성용은 “프로란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관리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며 “오직 실력만이 나를 평가해줄 것”이라고 했다. 이청용은 “오로지 축구로만 얘기하겠다”며 부모님의 걱정이 기우라고 했다.
두 청년은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직행해 먹고 자는 게 낙이라고 한다. 음악, 비디오, 영화 감상은 기분을 가라앉히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충전제가 된다. 기성용은 광양에 있는 어머니가 해준 된장찌개를 그리워하고, 맏아들인 이청용은 집에서는 여전히 순둥이 어린아이다.
인터뷰를 마치고도 남는 궁금증 하나. 도대체 수양버들처럼 낭창대는 가느다란 종아리에서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슈팅이 가능할까? 비법을 물어보니 “힘이 아니라 임팩트”라고 하는데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기성용이 거든다. “감각으로 차죠. 그게 안 되면 하체의 힘을 길러야죠. 그런데 누구나 다 그렇게 하면 저희는 어떻게 하죠?” 두 청년의 장난기 섞인 표정이 해맑다.
구리/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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