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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문

등록 2008-08-20 19:08

제주도의 무혼굿. 사진가 김수남 작품. 열화당제공
제주도의 무혼굿. 사진가 김수남 작품. 열화당제공
[매거진 esc] 사진 읽어주는 여자
13년 전 강원도 원주에 사는 무당을 찍은 적이 있다. 실제 귀신과 대화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몸짓에서 거짓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묘한 이끌림으로 낮은 땅에서 벌어지는 굿판과 눈 쌓인 정상에서 치르는 내림굿까지 쫓아다니면서 셔터를 눌렀다. 무당의 비루한 살림집도, 그의 남편의 주름진 얼굴도 카메라에 담았다. 그것뿐이었다. 의미도 진실도 파헤치려 하지 않았다. 무당은 카메라를 든 이들의 좋은 소재였다.

소재 이상의 의미와 역사성을 담은 사진가가 김수남이다. 그는 한반도에 흩어진 굿판을 30년 넘게 찍었다. 어떤 훌륭한 역사학자의 말보다 많은 진실이 그의 사진에 담겼다.

사진(위)은 제주도의 무혼굿이다. 대나무를 쪼개어 만든 열 개의 문, 제상 위 시루떡 안의 한 개의 문, 굿당 천장의 한 개의 문, 이렇게 모두 열두 개의 문을 만들어 이승을 떠나는 영혼을 달랜다. 하얀 곡선이 주는 평화로움 안에 남자의 짙은 슬픔의 흔적이 문 안에 남아 있다. 영혼을 달래는 것이다.

2006년 선생은 작고했다. 그도 망자가 되었다. 이 사진은 20여 가지의 굿 사진 중 160여 컷의 흑백사진을 엄선해 굿의 제의 절차에 따라 만든 책 안에 수록된 것이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출처 <굿, 영혼을 부르는 소리>(열화당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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