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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벗는다, 불타버린 자연에서

등록 2008-08-20 19:03수정 2008-08-24 14:10

1977년, 인천 북평 공동묘지.
1977년, 인천 북평 공동묘지.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독특한 행동으로 유명한 최광호씨, 결혼식장에선 주례 보며 사진 찍어
고관대작들만 예식을 올린다는 강남의 한 예식장. 신랑이 입장한다. 그 순간 찰칵, 찰칵. 주례가 카메라를 든다. 사진을 계속 찍는다. 웅성웅성 “주례가 사진을 찍네.” 사람들이 귓속말을 한다. 뒤이어 주례가 ‘악’ 소리를 크게 외친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바른 소리 할 ‘악’입니다. 신랑은 ‘악’ 소리처럼 바르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세 번의 ‘악’ 사이 그는 사진을 계속 찍는다. 사진가 최광호(52·아래 사진)의 독특한 행동은 잊지 못할 결혼식을 만들었다.

동생을 지울 수 없어 시작된 ‘악’ 소리

‘악’은 그의 사진집 시리즈 이름이다. 죽은 동생을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슬픔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 살, 8월15일, 동생을 화장하고 청량리에 있던 그의 작업실에서 동생의 사망지인 청평까지 카메라 하나 들고 무작정 걸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다리가 저리고 발바닥이 부르텄지만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신체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매년 8월15일이면 그렇게 무작정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 일이 반복되었다. 벽제·성남·망우리 등. 사진 애호가들에게 조금씩 소문이 나면서 함께 걷는 이들도 늘어났다. <악> 시리즈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고성 〈땅의 숨소리〉.
고성 〈땅의 숨소리〉.
1974년, 인 소래.
1974년, 인 소래.
사진가 최광호는 한국 사진계에 드문 인사다. 공동묘지에서 벗은 자신의 몸을 셀프 카메라로 찍기도 했고, 가족들의 비난에도 할머니의 시신에 셔터를 눌렀다. 인화지 위에 자신의 맨몸을 눕혀 흑과 백만 선명한 포토그램 사진을 만들기도 했고, 불탄 고성 산등성이에서 제자들과 함께 벗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으로 자신만의 사진을 만들었다.

“사진만 하면 즐겁다. 살면서 정말 내가 살아 있구나 느낄 때는 바로 사진할 때”라고 말한다. 그의 삶은 사진 자체다. 사진은 그의 생활이고 욕망보다 더 질긴 습관이다.

그는 곧잘 ‘사진으로 생활하기’를 말한다. 20대 초반에 연 전시회도 <심상일기>다. “사는 방법이 정해지면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주제를 정하고 찾아가는 방법은 끝이 보인다. 사진가는 작품을 만드는 제조업자가 아니다. 사진에서 사진가 인생의 냄새가 나야 한다”고 말한다. 멋있게 살고 싶은 그의 욕심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그의 의지 때문이다.

이렇게 삶과 묶인 테마가 정해지면 그는 5~10년간 작업을 한다. 시간의 때를 묻혀 자기 것으로 승화하는 과정이다.


지난 시간 동안 그가 집착했던 주제는 죽음과 삶이었다. 21살에 목격한 할머니의 죽음이 시작이었다.

“강원도 고성 불난 자리에 잘린 나무들을 보고 화가 났다. 자연이 훼손되면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은 치유법이다.” 그의 목격담이다. 삭막한 자연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곳에 옷을 벗고 사진을 찍었다. 근원적인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단다.

1970~80년, 인천 〈포토그램-육체전〉.
1970~80년, 인천 〈포토그램-육체전〉.
〈한국의 발견〉 시리즈.
〈한국의 발견〉 시리즈.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창기로부터 영향

왜 그렇게 ‘벗는 것’에 집착하는지 물었다. (그는 누드사진이라고 하지 않는다. ‘벗음 사진’이라고 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용기도 필요하다. 나 스스로에게 해답을 요구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그의 ‘벗음 사진’은 잡지 <플레이보이>처럼 에로틱하지 않고 유명화가의 누드화처럼 아름답지도 않다. 그저 몸이 있을 뿐이다. 평생 질기게 우리가 끌고 다녀야 할 몸이 덩그러니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곤 실레의 그림처럼 부러질 듯 앙상해서 아프기도 하고 버려진 듯해 슬프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가 최광호(52)
사진가 최광호(52)
타고난 작가인 그가 한때 3년간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저 장가가기 위해서 취직을 했다”고 말하는 그의 일자리는 잡지 <뿌리깊은 나무>였다. 한창기 사장과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완성했고 한 사장에게서 사물의 본질을 보는 법,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애정을 배웠단다. 10년간 도쿄와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한국 땅에 대한 느낌을 잊지 않도록 도와준 것들이다. 그는 ‘최광호 타입 프린트’도 만들었다. 필름의 현상시간과 확대기 위에서 인화지의 노광시간, 인화지 현상시간을 24시간으로 늘려 타임머신처럼 시간을 단축시킨 사진을 만들었다. 몇 해 전에는 ‘콤스타’(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의 활동을 담은 사진집을 펴내기도 했고 ‘사진생명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의 삶이 어떤 쪽으로 튈지는 곧 그가 찍은 사진으로 알 수 있다. 어눌하고 촌스런 외모를 지닌 자유인의 사진이 한없이 궁금해진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작품사진 최광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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