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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또 하나의 피사체

등록 2008-05-22 15:14수정 2008-05-25 10:33

‘긴 오후의 미행’ 연작(1988)
‘긴 오후의 미행’ 연작(1988)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사진의 형식을 파괴하며 ‘시간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사냥꾼, 구본창

구·본·창. 이름 세 글자를 인터넷의 바다에 띄었다. 주르룩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긴 역사처럼 뜬다. ‘구본창 개인전 성황리에’, ‘구본창 백자사진 박물관에’, ‘구본창 대구비엔날렌 기획자로 나서’.

사진을 좋아하는 블로거들은 너도나도 그의 사진을 자신의 웹 사이트에 퍼 담았다. 각종 언론매체의 기사들도 줄을 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구본창은 우리 시대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 사진가이자,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시에, 한국 사진사에서 중요한 전시를 수없이 기획했고, 한때 밥벌이를 위해 톱모델을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세웠던 사람이다.

젊을 적 패션사진 찍으면서도 내면 촬영

사진가 구본창(55)이 20대 후반 안정적인 대기업 샐러리맨 생활을 버리고 뒤늦은 나이에 독일에서 사진 공부를 시작했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드로잉도 많이 했으며, 결국 예술에 대한 타고난 천성이 사진가의 인생으로 이끌었다는 이야기다.

그가 1985년 독일 함부르크 국립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한국에 들어와 처음 카메라를 들이댄 것은 ‘자신’이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 풍경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당시 한국 사회는 억눌려 있었고, 유학파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 사진계에서 그는 외로웠다. 밥벌이를 해야 하는 고단한 현실도 ‘안’으로의 침잠에 한몫을 했다.

푸른 열정을 가진 젊은 사진가는 스스로 ‘갇히고’ ‘소외되었’다고 느낀 자아를 사진을 통해 섬세하고 미묘하게 표현했다. 추상적이고 복잡한 개인의 감성과 경험조차 피사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풍경1980’ 시리즈 중 하나. 곧 발표 예정. 촬영지는 여의도.
‘풍경1980’ 시리즈 중 하나. 곧 발표 예정. 촬영지는 여의도.
“귀국해서 서울을 스냅 사진 찍듯이 찍으며 다녔다. 신호등 하나에도 ‘나’를 담았다. 두 대의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하나에는 컬러필름을, 또다른 하나에는 흑백필름을 넣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사진 시리즈 ‘긴 오후의 미행’(1988)이었다. 도시 속에 분자 알갱이처럼 잘려 덩그렇게 떠다니는 우리 모습이 흑백의 점선 안에 아프게 그려져 있다.

검은 세상에 떠다니는 손, 흔들거리는 음영들. 90년 서미갤러리에서 발표한 ‘생각의 바다’는 작가의 고통의 바다에 휩쓸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생각의 바다’를 비롯해서 2, 3년에 한 번씩 열렸던 ‘굿바이 파라다이스’(1993), ‘인 더 비기닝’(1995), ‘숨’(1995) 등의 전시가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90년대 스타 사진가로 자리 잡는다.


‘인더비기닝’
‘인더비기닝’
“‘생각의 바다’는 사진이라기보다 콜라주에 가깝다. 선택의 기로에 선 내 자신의 절박한 느낌을 찍었고 ‘인 더 비기닝’ 시리즈는 무용가들을 찍었지만 그들이 나였다. 인체에 갇혀버린 자아를 표현했고 자유롭고 싶은 내가 그 안에 있다.” ‘인 더 비기닝’은 작은 인화지를 실로 꿰매 만든 95x135cm의 큰 인화지에 한 장의 필름을 인화한 작품이었다. 사진의 형식을 파괴한 그 작업은 사진가들에게 놀라운 충격을 안겨주었다.


‘열 두번의 한숨 05’ 연작.
‘열 두번의 한숨 05’ 연작.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의 사진은 변한다. 마치 동양화 같은 벽과 틈새들, 우리네 문화재 백자, 탈의 세계가 카메라에 담겼다. “나이가 들기 시작했다. 삶의 무게나 피사체 안에 녹아 있는 시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집착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지금도 대상만 변할 뿐 여전히 그는 ‘시간의 흔적’들을 사냥한다. 백자에서 찾은 긁힘과 균열, 물이 묻으면 사라지는 비누 등. 아버지의 죽음은 변화의 또다른 계기였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피상적인 ‘죽음’이 자신의 안에 실체적으로 스며드는 일이다.


‘시간의 그림’
‘시간의 그림’
젊은 날 그가 선택한 밥벌이는 패션사진이었다. 88년 구두회사 에스콰이어가 의류브랜드를 만들면서 패션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이후 10년간 논노등 한국의 유명브랜드의 옷과 톱모델을 카메라에 세웠다. “패션사진도 재미있었다. 아버님이 섬유업체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옷과는 가까웠고, 그 일도 최선을 다해 했다.” 패션모델과 촬영하는 현장에서도 그는 두 대의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지난날처럼 자신의 작업을 위해 다른 피사체를 놓치지 않았다.

제2회 대구사진비엔날레 총감독으로

그에겐 이처럼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 그중 하나는 사진기획자이다. 95년 한국사진사에서 중요한 작가 정해창을 낡은 먼지 속에서 끄집어내 복원했고 2000년에는 해외전시 ‘컴템포러리 코리언 포토그라퍼즈’를 기획해서 한국의 사진가들을 세계에 알렸다. 그밖에 ‘새 시좌’(1988),‘아! 대한민국’(1992) 등 괄목할 만한 전시를 기획했다. 90년대 중반에는 ‘워크샵 9’라는 이름의 사진전문 숍을 만들어 사진의 대중화에 힘썼다.

그는 요즘 두 가지를 준비 중이다. 오는 10월28일부터 3주간 열리는 제2회 대구사진비엔날렌 총감독이 그 하나고, 85년부터 5년간 작업한 초창기 연작사진을 한권의 책으로 묶는 작업이 다른 하나다. 과거 자신의 ‘시간의 흔적’을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사진가 구본창
사진가 구본창
구불구불한 그의 작업실을 나서면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작가·기획자·상업사진가 등 각각 다른 부문의 사진 작업을 모두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이유는?” 전쟁터를 뛰어다니는 종군사진가가 화려한 색감의 베르사체 옷을 잘 찍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안에 다양한 감성의 레이어가 여러 개 있다. 레이어는 언제나 30~40%가 충전되어 있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면 된다. 마치 주파수를 돌리면 클래식과 가요가 튀어나오는 라디오처럼 일한다.” 그는 말끝에 웃었다. 쉰을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미소년 같은 얼굴이 그를 만난 ‘시간의 흔적’으로 남는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작품 사진: 구본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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