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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주성치? 여자 강호동?

등록 2008-08-20 18:44수정 2008-08-23 13:56

메가톤급 몸개그와 능청스러움 발산하는 김신영
메가톤급 몸개그와 능청스러움 발산하는 김신영
[매거진 esc] 웃음의 강자들
메가톤급 몸개그와 능청스러움 발산하는 김신영, 알고보니 못 말리는 소심녀
웃음에도 스타일이 있고, 트렌드가 있다. 흔히 말하는 ‘독한 유머’ 역시 최근의 트렌드 중의 하나다. 요새 티브이에 번쩍, 라디오에 번쩍, 공중파에 번쩍, 케이블에 번쩍, 활동하는 김신영(24)을 어떤 스타일이나 트렌드로 규정짓기는 힘들다. 동그란 얼굴과 작은 눈코입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때 나오는 수십 가지 재밌는 표정부터 통통한 몸매와 유연한 몸으로 ‘소 핫’ 댄스를 출 때의 놀라운 몸개그, ‘소 핫’ 댄스에 이어 개사곡 ‘소 콜드’(왜 자꾸 침을 뱉니 퉤 퉤 퉤/내가 그렇게 구리니 이이/아무리 그렇다고 그렇게 침뱉으면 내 얼굴 축축하잖니 이이)를 시침떼고 깜찍하게 부를 때의 능청스러움, 그리고 고기 먹다 필름 끊겼을 때의 추억을 상기하는 걸쭉한 입담까지 김신영의 개그는 하나의 스타일, 하나의 장기에 갇혀 있지 않다. 물이 오른 전성기를 구가하지만 그가 7살 때 좋아했다는 <유머 1번지>에 데려다 놔도 심형래의 영구나, 임하룡의 다이아몬드 스텝과 자연스럽게 섞여 지금과 똑같은 웃음을 줬을 것이다. 개그도 패션처럼 트렌드화된 지금 특별한 개그우먼 김신영을 만났다. 진지함 가운데 툭툭 나오는 변화무쌍한 표정과 배꼽 잡는 말투까지 전하지 못하는 게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요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활약이 눈부시다. 옛날에 방송에서 이야기하던 버라이어티 울렁증은 이제 완치된 건가

전혀. 여전히 떨리지만 티를 안 낼 뿐이다. 달라진 점은 예전 같으면 눈치 보고 망설이다가 안 할 이야기를 이제는 일단 부딪쳐 보자, 무조건 떠들어보자, 그러면 몇 개는 건지겠지, 이런 마음으로 밀어붙인다. 그렇게 들이대고 나서 방송 끝나고 선배들에게 죄송합니다, 말하면 아냐 그렇게 하는 거야 격려해주신다. 그럼 휴, 안도한다.

몰래카메라에 당한 뒤 후유증 4일이나 가


개그맨 김신영.
개그맨 김신영.
<무한도전>에서 ‘쏘 핫’ 댄스는 신기에 가까웠다. 중독성이 강해 한번 보면 잊을 수가 없다.

본래 콘셉트가 아줌마 저질 댄스였다. 그냥 따라하면 밋밋하니까 행사 같은 데서 본 아주머니들의 춤을 좀 웃기게 따라 한 건데, ‘엄마 미소’라고 ‘우아한’ 자막이 나와줬다. 리허설 때도 창피해서 대충대충 추니까 옆의 매니저 오빠가 좀 자신 있게 해라 말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컸다.

평상시 방송만 봐서는 소심하고 부끄러움 타는 성격이라는 걸 믿을 수 없는데 얼마 전 <무한걸스>에서 몰래카메라에 당해 대성통곡하는 걸 보면서는 소심한 성격이 좀 보이더라.

방송하면서 최고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어른들을 무서워하는데, 처음 본 공형진씨한테 그렇게 야단을 맞았으니 진짜 정신 나갈 정도였다. 나중에 방송 보니까 너무 서럽게 울어서 창피하더라. 그 와중에 내 진짜 모습이 방송에서 처음 드러난 거 같기도 하고 그 충격으로 후유증이 4일은 간 것 같다.

어린 시절 전국노래자랑에서 인기상을 타기 위해 꼬마 김신영 남매에게 춤연습을 시켰던 아버지나, 남자친구 사귀려면 100억은 벌어놔야 한다고 충고했다는 어머니 등 집안에 개그맨의 피가 흘렀나.

부모님 영향이 진짜 크다. 어머니는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를 많이 구사하셨다. 목이 가는 아이를 보고 참새목 같다는 둥, 아버지도 노래도 잘하고 분위기 한번 타면 무지하게 재밌어진다. 아버지랑 어릴 때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아저씨들의 습성을 많이 배운 것 같다. ‘으어~’ 하는 아저씨들의 말투나 낚시에서 남이 잡은 물고기 가지고 괜히 자기가 허세 부리고 이런 게 너무 재미있었다. 할머니랑도 같이 산 적이 있는데 할머니들도 굉장히 재밌다. (손목 쓰다듬으며) 난 시계 필요없다. 몇 신지 그냥 해시계 보면 되지, 이런 말투들 많이 배워서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언제 처음 개그맨이 되고 싶었나?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건 7살 때부터였는데 <유머 1번지> ‘변방의 북소리’를 너무너무 좋아했고 맨날 시커먼스 따라 하고, 서세원씨와 김미화씨가 부부로 나와서 했던 “꿀물, 허니~”이런 걸 뜻도 잘 모르고 흉내내곤 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쯤 돼서 애들한테 웃긴 거 보여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다른 친구들한테도 소문이 났다. 그럼 뿌듯해서 내일은 뭘 또 해볼까? 선생님 흉내내볼까? 이렇게 웃길 궁리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노점상 퍼포먼스로 1200만원이나 번 사연


개그맨 김신영.
개그맨 김신영.
그래도 개그맨 된다고 할 때는 부모님들 반대가 컸다고 하던데?

고3때 티브이에서 양배추 선배가 개그 콘테스트에서 대상 타는 걸 보는데, 자막에 ‘예원예대 코미디연기학과 01학번’ 딱 뜨는 걸 보고 와, 저런 게 있구나, 나도 가고 싶다 했지. 잘하는 게 운동하고 남 웃기는 거밖에 없으니까. 부모님은 간호사 같은 안정된 직업을 원해서 간호학원도 가봤는데 그날로 도망나왔다. 그래서 어렵게 이야기를 했는데 너 하고 싶은 거 하려면 네가 벌어서 가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50만원만 주십시오, 이걸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벌어보겠습니다, 그랬는데 운좋게 2002 한-일 월드컵 때였다. 물 장사, 머리핀·아이스크림·우비 장사 안 해본 게 없다. 졸업식 때는 꽃을 팔았는데 친구들과 얼굴을 금색깔로 칠하고 막 춤추면서 손님을 끌어모아 대박이 났다. 꽃집에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다. 그렇게 1200만원을 모아서 대학에 갔다.

대학 1학년 때 에스비에스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탔으니 순항한 거다.

그전에 ‘K본부’ 콘테스트에 나갔다가 십몇 초 만에 탈락했다. 그때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 오빠가 내 뒷줄에 있어서 서로 뭐 준비했어요? 묻고 그랬는데 같이 떨어졌다. 그리고 여름에 에스비에스 나갔는데 이분들이 이번엔 내 앞줄에 서 있더라.(웃음) 그때도 떨어질 뻔했다. 심사위원 했던 분이 나중에 이야기했는데 빵점 줄려고 했다고 하더라. 거의 떨어지는 거였는데 개인기가 뭐냐고 하더라. 위기에 처하면 초능력도 생긴다는 게 맞는 말인지 순간적으로 눈물 연기 4가지 버전 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먹혔다.

어떤 거였나?

먼저 7살에서 13살까지의 10대 울음. 오빠한테 얻어터지고 흘리는 서러운 눈물(곧바로 ‘행님아’ 표정) 흘리는 데 심사위원들이 넘어갔다. 그리고 20대 여자의 눈물, 바로 욕 나오는 남자 없는 여자 버전과 눈 밑에 침 바르며 ‘그래요, 떠나가세요’ 하는 남자 있는 여자의 다소곳한 눈물. 40대 남자의 고독한 눈물, 눈물도 안 나오는 60대 노인의 ‘야 이노무 자식아’ 뒷목 잡는 눈물 연기. 3차 테스트 끝나고 8개월 동안 대학로에서 트레이닝할 때 무대에 처음 올렸던 코너도 이 눈물 개그였다.

팀을 이뤄 ‘행님아’ 를 탄생시킨 김태현과도 그 기간에 만난 건가?

태현 오빠가 내 눈물 연기가 너무 웃기다고 하면서 같이 수다 떨다가 ‘아빠와 나’란 코너를 만들었고, 이게 ‘행님아’로 발전하게 된 거다. 그때 생초짜라 오빠들 앞에서 기가 죽어서 변변하게 아이디어도 못 내고 있었는데 태현 오빠와 호흡을 맞추면서 개그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배우게 됐다. ‘행님아’도 처음에는 리마리오나, 택이 같은 코너에 비하면 미미했는데 6개월 넘어서야 뜨기 시작했다.

“신봉선과 라이벌” 비교에 스트레스

‘행님아’로 떴다가 버라이어티로 옮기면서 홍역을 앓았다.

버라이어티에 엄청 많이 불려나갔는데 모든 프로그램에서 두 번 다시 부르지 않았다.(웃음) 자꾸 들이대라고 하는데 어느 타이밍에 들어가야 할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소심증이 다시 도진 거다. 내가 하도 못하니까 진행자가 이야기하다가 “신영씨도 그랬나요?” 말 시켜주면 “네” 이게 끝이었다.(웃음) 작가 언니들은 스케치북에 말하라고 써서 흔들지, 중간에 감독님이 와서 “웃겨야지, 캐릭터가 아깝잖아?” 이러면 더 기가 죽어서 공황 상태가 되고 에휴~ 진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정선희 선배가 케이블에서 진행한 <써니 사이드>에 태현 오빠랑 출연하면서 언니가 워낙 잘 받아주니까 좀 자신감이 생겼고, 그 이후에 라디오 게스트를 많이 하면서 긴장감이 많이 풀렸다.


개그맨 김신영.
개그맨 김신영.
그렇게 소심하면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상처 많이 입지 않나?

인터넷에서 악플 한 개 보면 일주일 간다. (웃음)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게 당연한데, 누가 너 왜 이렇게 까부니 이런 식으로 말하면 (‘행님아’의 측은한 표정으로) ‘이거 내 성격 아닌데, 재미있게 해줄라구 그런 건데’ 속으로 이러면서 속상해진다. 전에 왜 그랬는지 인터뷰 기사가 내가 말한 의도랑 다르게 나온 적이 있는데 후유증이 두 달 갔다. (웃음)

요새 신진 개그우먼으로 신봉선과 자주 언급이 되는데 둘을 비교한다면?

봉선 언니는 여성스러운 점이 많고 나보다 나이도 경험도 많으니까 상황 대처 능력도 좋다. 그에 비하면 나는 몸으로 구사하는 표현 같은 걸 좀더 적극적으로 하고. 그런데 자꾸 라이벌이라고 하니까 좀 스트레스가 된다. <무한걸스> 처음 하면서 우리 같이 잘돼서 여자 유재석, 여자 강호동 되자고 이야기도 했는데 경쟁은 무슨 경쟁.

슈퍼주니어의 신동과 함께 진행하는 <심심타파>에서는 청취자들에게 직접 선물을 해줘 화제가 됐다.

그냥 하고 싶었다. 이게 내 이름을 건 첫 프로그램이라 나에게는 집 같고 너무나 특별하다. 청취자들도 식구 같고. 방송협찬이 많긴 하지만 때로는 청취자가 원하는 거랑 줄 수 있는 선물이 다르지 않나. 과자가 먹고 싶다는 사람한테 식도를 보내주면 쓸모도 없고 어떡하나. (웃음) 대단한 걸 선물하는 건 아니고, 또 받으면 고맙다고 연락해주고, 라디오는 정말 대화하는 것 같아서 좋다.


개그맨 김신영.
개그맨 김신영.
<당백호점추향>은 인생을 바꾼 영화

드라마 <레인보우 로망스>나 영화 <파랑주의보>에서 연기도 했는데 연기 욕심은 없나?

내 꿈이 여자 주성치가 되는 거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도학위룡>을 보고 주성치에게 완전히 반했다. 중1때 본 <당백호점추향>은 내 인생을 바꾼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개그맨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으니까. 그 이후로 주성치 영화는 빼놓지 않고 다 보면서 열광했다. 내 생각에 주성치 영화는 가장 이상적인 코미디 영화다. 이런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가장 해보고 싶은 건 역시….

주성치와 같이 영화를 찍고 싶다. 그리고 여자 주성치라는 말을 듣고 싶다. 주성치처럼 망가지고 웃기지만 사람이 우습지는 않은 그런 개그맨, 배우가 되고 싶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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