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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장면 보면서도 코믹한 생각”

등록 2008-07-09 21:55수정 2008-07-12 16:11

콩트 연기로 답변한 ‘달인’ 김병만, 이렇게 웃기는 인터뷰는 ‘16년만에 처음’이었다
콩트 연기로 답변한 ‘달인’ 김병만, 이렇게 웃기는 인터뷰는 ‘16년만에 처음’이었다
[매거진 esc] 웃음의 강자들
콩트 연기로 답변한 ‘달인’ 김병만, 이렇게 웃기는 인터뷰는 ‘16년만에 처음’이었다

벌써 8년째다. 2000년 12월6일, 한국방송 <개그콘서트> 64회 무대가 김병만(33)의 첫 무대였다. 그 뒤 뮤지컬을 했던 3개월 빼고는 한번도 쉰 적이 없다. <개콘>이 벌써 400회를 넘겼으니, 적어도 300회에 이르는 무대에서 우리는 매주 그의 개그를 본 셈이다. <개콘> 출연 횟수로는 1위인 그가 개그 코너로 ‘대박’을 친 건 <개콘> 무대에 선 지 7년이 지난 요즘이다. 그렇지만 <개콘>을 조금이라도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김병만만큼 성실하고 꾸준하게 자기만의 독특한 개그를 발전시켜 나간 개그맨은 없었으니까. <개콘> 리허설이 있는 월요일 오전 여의도 사무실에서 김병만을 만났다. 김병만은 천생 개그맨이었다. 그의 언어는 개그이자 연기다. 긴 설명 대신 콩트 연기를 보여주며 얘기했고, 어려운 단어 대신 몸짓으로 하고 싶은 말을 표현했다. 연필을 굴린 시간보다 웃는 시간이 더 많았던 인터뷰는 정말 16년(년도가 나오면 무조건 16년인 거다) 만에 처음이었다.

8년 동안 <개콘>을 지킨 건 자의에서인가? 아니면 상황 때문인가?

우선 생활을 하려면 꼭 <개콘>을 해야 했다.(웃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게 꿈이었으니까. 이걸 위해 달려왔으니까 어떻게든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배들이 어떻게 해서든 엑스트라라도 좋으니 <개콘>에 계속 출연을 해라, 그러면 기회가 올 거라고 충고를 해줬다. 나는 ‘무조건 한 주도 쉬지 않는다’ 그것만 생각했다. 어제 <개콘> 홈페이지를 보면서 세어 보니까 내가 지금까지 한 코너가 모두 40개더라.

‘대학로 실험’ 안 하고 자신만의 공식대로

〈개콘〉 8년 동안 뭘 얻었나?

나는 남들에 비해 끼가 부족한 편이다. 내성적이다. 개그맨 시험과 대학 입학 시험도 수없이 떨어졌다. 연습 때는 잘해도 막상 멍석을 깔고 보여줄 때가 되면 준비한 것에 3분의 1도 보여주지 못했다. <개콘> 전에 4년 동안 연극을 했다. 연극을 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고, 내성적인 성격을 많이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 현장에서 풀어놓으려니까 쉽게 되지 않았다. 그걸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개콘> 무대였다. <개콘>에서 보낸 8년은 나에게 성장의 기간이자 수련의 기간이었다. 많이 여유가 생겼지만, 아직도 긴장을 많이 한다. 섬세한 연기를 아직 생각하는 것만큼 잘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더 기교 있게 하고 싶다. ‘어떻게 연기를 저렇게 하냐’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하고 싶다.

초기에는 무술을 이용한 개그를 많이 보여줬다. 무술이라는 게 그 당시에는 개그 무대에서 중요한 무기였을 것 같다.

개그맨들은 해보고 싶은 걸 해야 개그가 좋아진다. 그래서 무술을 했다. 무술은 나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다른 코너를 준비했는데 무술과 연관된 코너를 해보라는 지적도 받았다. 그때는 무대 위에서 말을 하면 사람들이 잘 들어주지 않았다. 나에게 기대하는 게 무술이었으니까. 그러다가 긴장이 풀리는 순간,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수근·류담과 함께 ‘불청객’이라는 코너를 했다. 정종철과 했던 ‘불청객들’ 말고 2004년에 했던 ‘불청객’이 있다. ‘달인’처럼 두 개로 나눠서 짧게 가는 브릿지 코너였다. 그 다음에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어서 ‘주먹이 운다’ 김관장 같은 캐릭터를 넣었다. 그렇게 다양한 시도를 했다.

40개의 코너 중 대표작을 꼽으라면?

무술 개그에서는 ‘주먹이 운다’가 가장 좋았다. 연기 개그에서는 ‘불청객’이다. 그때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다. 노우진·류담이라는 최고의 멤버와 만나서 만든 최고의 코너는 역시 ‘달인’이다.

코너를 만들면 뜨겠다, 안 뜨겠다에 대한 감이 오나?

그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쯤에서 사람들이 웃겠다’는 감은 온다. 보통 신인들은 무작정 웃겨보자는 식으로 코너를 만들어 대학로 무대에서 코너를 시험해보고 가져와서 무대에 올린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만의 공식대로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하면 웃길 수 있다는 공식을 생각하면서 코너를 짠다.

“내가 염소 잡기의 달인이라니까…”


콩트 연기로 답변한 ‘달인’ 김병만, 이렇게 웃기는 인터뷰는 ‘16년만에 처음’이었다
콩트 연기로 답변한 ‘달인’ 김병만, 이렇게 웃기는 인터뷰는 ‘16년만에 처음’이었다
김병만이 갖고 있는 웃음의 공식은 뭔가?

가장 쉬운 공식은 관념을 깨는 반전이다. 슬픈 장면을 보면서도 코믹한 생각을 한다. 티브이 큰 화면에서는 비극적인 드라마가 진행되지만 화면 한쪽 구석에서는 그 장면을 코믹하게 만든 개그가 보인다. 일상생활에서도 웃음거리를 찾는다. (옆에 있는 고양이를 가리키며) 고양이로 뭘 웃길 수 있을까? 갑자기 고양이가 백 덤블링을 하면 웃기지 않을까? 주변에서 많이 찾아내려고 한다. 호기심이 많고 엉뚱한 상상도 많이 한다. 머릿속에서 생각한 말도 안 되는 만화 같은 상황을 직접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보통 상상한 것의 70% 정도는 표현이 가능하다. 진지함을 깨는 것도 좋아한다. ‘장군’에서도 그랬다. (‘장군’의 한 장면을 재연하며) “적의 동태를 살피러 갔던 장군이 돌아왔소. 장군, 잘 다녀왔소?” “다들 모이시오.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으시오. 안 갔소.” 마치 갔다온 것처럼 숨을 헐떡이지만 사실 무서워서 못 간 거다. “이 자식들, 성적이 이게 뭐야? 나 어릴 적에는 학교가 30리나 떨어져 있었어. 그런데도 매일 오가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거야!” “그래서요?” “안 갔지.” 분위기를 끌어놓고 한 번에 무너뜨리는 거, 그게 진지함을 깨는 거다.

원래 그렇게 상상하는 건 직접 해봐야 하는 성격인가?

<톰 소여의 모험>에서 물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을 읽고 직접 따라 해보기도 했고, 횃불을 들고 동굴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서는 진짜 횃불을 들고 동굴에 들어가봤다. 4층에서 떨어져 두개골에 금이 간 적이 있었는데, 엄마가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고 “얘가 드디어 사단이 났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다. 고등학교 때는 염소를 잡은 적도 있다. (‘달인’의 톤으로) 염소를 쫓아다니면서 잡았다고 하면 믿겠어요? 그것도 한 번에 다섯 마리를? 직접 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세요. 그걸 본 친구들이 11명인데 사진으로 증명이 안 되니까 아무도 안 믿는다. 요즘에 ‘달인’을 하면서는 사람들이 더 안 믿는다. 그런데 진짜다. 염소의 습성을 아니까 잡을 수 있었다. 한 마리는 지칠 때까지 쫓아가서 결국 염소가 먼저 주저앉기도 했다. 그때는 염소 한 마리를 잡으면 4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달인’의 톤으로) 지금은 절대 안 하죠.(웃음)

‘명인’, ‘역사 스페셜’, ‘친절한 아저씨’, ‘예술의 전당’, ‘달인’까지 쭉 보면 하나의 캐릭터가 계속 발전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자기 색깔과 본성은 버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코너를 통해 보여준 모습이 나만의 기본 캐릭터다. 이 캐릭터를 응용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계속 갈 거다. 내가 바꾼다고 해도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내성적 귀신’ 연기에 다 뒤집어진 스태프들

평소 김병만의 캐릭터는 개그 속 캐릭터와 비슷한가?

더 과격하다. 무대 뒤에서 동료 개그맨들을 웃기는 걸 좋아한다. 개그맨들을 웃기려면 ‘따귀맨’ 같은 독한 개그를 해야 한다. 평소에 개그맨들과 하는 건 차마 방송에서 보여줄 수가 없다. 그래도 다른 방법으로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고, 간직하고 싶기도 해서 조금씩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밤길에 한 남자가 퍽치기로 앞에 가는 행인을 때린다. 그런데 그 사람이 돌대가리인 거다. 퍽치기로 계속 때리는데도 이 사람은 자기 길을 간다. 퍽치기 남자는 지쳐간다. 신발 끈을 묶다가 우연히 뒤돌아서서 자기를 때리는 남자를 보고, 행인은 무기를 빼앗아서 그 남자를 때리는데 그 퍽치기 남자가 완전히 쓰러지는 거다. 요즘 나오는 개그를 재미없어하는 사람들이 보면 웃는다. 조금은 폭력적인데, 그게 악의가 아니라 웃음의 상황에서 나오는 거다. 미국에는 그런 류의 코미디가 많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이 웃음에 대해 진지하고 보수적인 면이 있다. 언젠가는 이런 개그를 좋아하는 때가 올 거다.

그런 날이 언제 올까?

(‘달인’ 톤으로) 안 올 수도 있다.

8년 동안 <개콘>을 하면서 웃음에 대한 사람들의 변화도 느꼈을 것 같다. 8년 전과 지금, 사람들이 웃는 지점이 다른가?

지금은 ‘리얼’이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서도 리얼함을 보여주듯이 개그에서도 리얼함을 보여주는 게 반응이 좋다. 웃음점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거다. 사극이 배경이다. 산속을 가는데 귀신 소리 비슷한 ‘으흐흐 으흐흐’ 소리가 난다. 갑자기 한 명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면서 “아, 이거 내 전화야. 어제 샀어”라고 한다. 이렇게 가면 8년 전 개그다. 지금 개그에서는 ‘으흐흐 으흐흐’ 소리가 나면 한 명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가 왔나 보고 바로 닫는다. 그걸 잡아낸 사람만 웃는 거다. 웃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라는 게 지금 개그 추세다. 웃을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 빠르게 넘어간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개그를 이해한다. 허무 개그를 해도 허무의 허무 개그를 해야 한다. ‘금도끼 은도끼’ 얘기에서 예전에는 나무꾼과 산신령의 원래 얘기에서 웃음을 끌어냈다. 요즘에는 나무꾼이 도끼를 빠뜨렸는데 유난히 운동신경이 좋은 산신령이 계속 도끼를 던져주든지, 아니면 도끼를 빠뜨리고 화가 나 있는 나무꾼에게 산신령이 말을 시키니까 나무꾼이 “말 시키지 마!” 하면서 짜증을 낸다든지 한다. ‘콩쥐 팥쥐’에서도 두꺼비가 콩쥐에게 “제가 이 독을 막아드리겠습니다” 하면 콩쥐가 “어머, 징그러워!” 하면서 두꺼비를 발로 밟는 게 요즘 개그다.

얘기하는 걸 들으니까 콩트 속 캐릭터들이 다 감정선이 살아 있다. 캐릭터가 상황에 이끌려가기보다 캐릭터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상황이 간다.

나는 후배들에게 오래 꾸준히 개그를 하고 싶으면 대학로에 가서 다른 개그를 보지 말고 연극 배우들이 하는 연기를 보라고 말한다. 진지한 연기를 보고 그 속에서 캐릭터를 잡아내 연기력으로 표현해보라고. 대사가 아니라 시선 하나로도 웃길 수 있고,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웃길 수 있다. 귀신도 성격이 다 다르다. 내성적인 귀신은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천천히 시선을 피하며 눈을 깐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벽을 긁는다. 벽 뒤로 숨었다가 다시 살짝 나오고, 나중에는 손만 나와서 왕따처럼 벽을 긁고 있다. 내성적인 귀신을 예전에 민속촌에 촬영 갔다가 직접 해봤다. 스태프들이 다 뒤집어졌다.

‘달인’ 다음 코너에 대한 불안감을 넘는 법


콩트 연기로 답변한 ‘달인’ 김병만, 이렇게 웃기는 인터뷰는 ‘16년만에 처음’이었다
콩트 연기로 답변한 ‘달인’ 김병만, 이렇게 웃기는 인터뷰는 ‘16년만에 처음’이었다
희극배우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인터뷰에서 했다.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 시트콤에도 출연하고 있다. 그런데 개그 무대에서는 개그맨이 주인공이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희극배우는 조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게 희극배우의 한계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감초 연기를 하는 조연이 있으니까 주연이 빛나는 거고, 그 신에서는 조연도 주인공이다. 성동일씨나 이문식씨가 주인공이어서 뜬 건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연기로 주인공까지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금은 주인공이나 주연을 맡고 싶다기보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희극배우가 되고 싶다. 개그맨이라는 이미지가 희극배우가 되기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를 부를 때는 개그 무대 위에서의 나를 보고 부르는 거다. 개그 무대가 있기 때문에 내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개그는 탯줄이다. 이게 끊어지면 죽는다.

‘달인’ 다음 코너에 대한 불안감도 있나?

있다. 그렇지만 ‘달인’보다 더 나은 코너를 짜자는 생각을 하면 힘들 것 같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재미있는 코너를 찾으려고 한다. 앞으로도 늘 해 오던 식으로 버텨나갈 거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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