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 타니 & 비나모르
[매거진 esc]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 타니 & 비나모르
서울 강남과 홍대 앞 와인바의 현장을 비교하며 가격의 거품을 추적하다
고 : 와인리스트는 다양하네요. 6만~7만원짜리부터 있지만 대부분 10만원대가 많군요. 100만원 넘는 것도 보이고. 요리사님도 레스토랑을 운영하시잖아요. 어떤 와인을 갖다 놓는지에 대해서 철학이 있나요? Z : 무조건 음식하고 맞춥니다. 가격은 비합리적으로 비싼 건 안 갖다놓죠. 가령 80만원짜리 와인은 없습니다. 비싼 게 20만원 정도입니다. 와인바에서 가격 따진다고 “돈 없으면 청담동 오지말라”고 하면 저도 할 말 없죠. 그런데 비싸도 마리아주(음식과 와인의 궁합)가 맞으면 괜찮은데 보통 잘 안 맞으니까. 200만원짜리, 진짜 주문하면 없을 걸 고 : 와인은 풀바디(와인의 묵직한 맛을 가리키는 용어)군요. Z : 이곳 타니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보통 와인바나 레스토랑에 와인리스트가 많다는 건 라벨마다 한두 병씩만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라벨마다 수십 병씩 갖다 놓지는 못해요. 그렇게 했다간 많은 돈이 그냥 와인으로 묶여있는 꼴이니까요. 가령 200만원짜리 와인을 주문하면 없을 가능성도 있는 거죠. 고 : 처음 듣는 말이군요. 흥미롭네요. 그럼 경영자들이 잘 나가지 않는 고가 와인을 리스트에 올리는 이유는 뭐죠? Z : ‘가오’는 나와야 하니까요. 고 : 와인 애호가라면 청담동에 대한 기대치가 있잖아요.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겠지만, “청담동 와인바 수준은 대체로 기대를 만족하는 편이냐”고 묻는다면? Z : 하하. 일반화시키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는 말할 수 있겠죠, “청담동 와인바의 수준이 다른 나라의 레스토랑 수준과 비교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런데도 가격은 비싸다”라고요. 또 청담동 와인바가 우리나라 와인문화의 기준이 되기도 어렵겠죠. 와인바라는 문화 자체가 특이한 것이니까. 와인바는 사실상 우리나라밖에 없죠. 일본에서는 이미 80년대에 유행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와인바 찾기가 쉽지 않고 대신 와인숍이 아주 많아요.
고 : 결국 질에 비해 가격 거품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왜 장사는 잘 되죠? 가격이 비합리적인데….
Z : 어차피 ‘프레스티지 마켓’(명품 소비 시장)이니까요.
고 : 결국 청담동과 홍대의 와인 가격 차이는 땅값·인테리어·인건비 등이 종합적으로 낳은 결과인가요?
Z :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소매마진이 ‘이만큼이 적정하다’고 누가 처음부터 판단했겠어요? 청담동의 경우 1호 와인바가 있었어요. 그 와인바의 가격이 기준이 됐죠.
고 : 이상하네요. 그게 비합리적이면 다른 업주들이 안 따라가면 되잖아요? ‘좀 더 합리적인 가격에 대신 박리다매하겠다’ 뭐 이런 식으로요.
똑같은 와인이라도 납품가는 같을까
Z : 박리다매라는 게 쉽지 않아요. 오히려 청담동에서는 싸면 무시당하는게 있죠.
고 : 그건 와인 소비자들 의식의 거품 아닌가요? 한때 인기였던 보졸레 누보 열풍도 그렇고.
Z : 보졸레 누보 열풍 지금은 끝난 것 같은데요. 그래도 한 10년 해먹었죠?
한 시간 뒤 자리를 홍대 앞 비나모르로 자리를 옮겼다. 거의 똑같은 1865 레제르바 까베르네 소비뇽이지만 가격이 타니 보다 1만8천원 싸다. 부가가치세를 포함하면 거의 3만원 차이다. 로버트 몬다비, 펜폴즈 빈 등 똑같은 와인이 대략 3만~4만원 정도 차이 난다.
고 : 서로 다른 와인바라도 같은 업체에서 받으니까 납품가는 같지 않나요?
Z : 아뇨.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다릅니다. 똑같은 라벨이라도 우리나라 업체가 독점 계약을 한 게 아닌 이상 서로 다른 업체가 수입하는 것이니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1865의 경우 한 업체가 독점 수입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레스토랑이 업체로부터 몇 병이나 구입하느냐에 따라서도 납품가가 다르죠.
⊙ 송치의견 : 요리사 제트는 식당 경영자의 입장에서 음식을 우선시할 경우 비합리적으로 비싼 와인을 갖다놓기 어렵다고 말한다. 와인바에서 무조건 비싼 걸 마시기보다, 음식과의 궁합에 맞춰 합리적 가격의 와인부터 맛보는 게 어떨까.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
고 : 와인리스트는 다양하네요. 6만~7만원짜리부터 있지만 대부분 10만원대가 많군요. 100만원 넘는 것도 보이고. 요리사님도 레스토랑을 운영하시잖아요. 어떤 와인을 갖다 놓는지에 대해서 철학이 있나요? Z : 무조건 음식하고 맞춥니다. 가격은 비합리적으로 비싼 건 안 갖다놓죠. 가령 80만원짜리 와인은 없습니다. 비싼 게 20만원 정도입니다. 와인바에서 가격 따진다고 “돈 없으면 청담동 오지말라”고 하면 저도 할 말 없죠. 그런데 비싸도 마리아주(음식과 와인의 궁합)가 맞으면 괜찮은데 보통 잘 안 맞으니까. 200만원짜리, 진짜 주문하면 없을 걸 고 : 와인은 풀바디(와인의 묵직한 맛을 가리키는 용어)군요. Z : 이곳 타니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보통 와인바나 레스토랑에 와인리스트가 많다는 건 라벨마다 한두 병씩만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라벨마다 수십 병씩 갖다 놓지는 못해요. 그렇게 했다간 많은 돈이 그냥 와인으로 묶여있는 꼴이니까요. 가령 200만원짜리 와인을 주문하면 없을 가능성도 있는 거죠. 고 : 처음 듣는 말이군요. 흥미롭네요. 그럼 경영자들이 잘 나가지 않는 고가 와인을 리스트에 올리는 이유는 뭐죠? Z : ‘가오’는 나와야 하니까요. 고 : 와인 애호가라면 청담동에 대한 기대치가 있잖아요.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겠지만, “청담동 와인바 수준은 대체로 기대를 만족하는 편이냐”고 묻는다면? Z : 하하. 일반화시키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는 말할 수 있겠죠, “청담동 와인바의 수준이 다른 나라의 레스토랑 수준과 비교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런데도 가격은 비싸다”라고요. 또 청담동 와인바가 우리나라 와인문화의 기준이 되기도 어렵겠죠. 와인바라는 문화 자체가 특이한 것이니까. 와인바는 사실상 우리나라밖에 없죠. 일본에서는 이미 80년대에 유행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와인바 찾기가 쉽지 않고 대신 와인숍이 아주 많아요.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 타니 & 비나모르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