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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보다 만들기 더 어렵다고?

등록 2008-05-22 13:57수정 2008-05-25 10:32

요즘은 과거와 달리 10m가 넘는 거대한 발효 탱크에서 맥주가 생산된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10m가 넘는 거대한 발효 탱크에서 맥주가 생산된다.
[매거진 Esc] 백우현 공장장과 맥주의 시대 ③
신제품 개발팀에서 근무하며 “맥주는 과학”이라는 말을 실감하던 시절

맥주회사들은 전세계의 맥주들을 정보 수집 차원에서 구해다 마셔 봅니다. 주문해서 살 때도 있고, 국외 출장을 간 직원이 귀국길에 들고 오기도 합니다. 제가 막 입사했던 1980년대 초반, 정말 신기하고 귀한 맥주를 구경했습니다. 북한의 ‘룡성맥주’였습니다. 일제시대에 이북에도 맥주공장이 있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서슬 퍼런 시절 이북의 맥주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북한과의 왕래가 허용됐던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 맛봐야 하지만 절대 취해선 안돼

당시 저를 포함한 양조팀 선후배들이 달랑 한 병밖에 없는 용성맥주 주위에 빙 둘러서서 한마디씩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선배들은 “북한 맥주는 기계화되지 않고, 일제강점기의 수작업 방식대로 만든다”며 “대신 맛이 아주 좋다”고 설명하더군요. 맛이 어땠냐고요? 죄송하지만 워낙 귀한 맥주라 막내인 저는 못 마셨습니다. 한 달쯤 있으니 덩그러니 빈병이 자료실에 놓여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병이 광주 맥주공장 자료실에 전시돼 있습니다.

회사 안에는 양조하는 과정에 따라 여러 부서가 있습니다. 양조 부서가 있고, 완성된 맥주를 병에 담는 공정을 책임지는 부서도 있으며, 맥주의 맛 분석만 전담하는 팀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맥주는 예술”이라고 합니다. 다른 이는 “맥주는 과학”이라고 하는가 하면, 또다른 이는 “맥주는 예술과 과학이 만난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말들이 엇갈리는 이유는 맥주는 오감으로 맛봐야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과학적 분석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처음에 양조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맥주 만들 때엔 미생물인 효모가 필요합니다. 당시 양조부서 선배들은 제게 항상 “효모도 살아 있는 놈이기 때문에 관심 없고 애정 없으면 사고 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했습니다. 막내 시절 저는 거의 매일 효모 탱크를 쳐다보는 게 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철저히 과학화된 시절이 아닌 터라, 맥주를 빚는 발효 탱크의 온도 등 탱크의 상태를 계속 지켜봐야 했습니다. 당시 맥주 빚는 일은 사람 손에 달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 뒤엔 맥주 맛을 분석하는 팀으로 옮겼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분석실로 향했습니다. 아침마다 분석실 테이블에는 맥주잔 20여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맥주 발효 탱크별로 한 잔씩 맥주를 떠 온 것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모든 탱크가 일괄적으로 컴퓨터로 움직이는 게 아니어서 탱크별로 맛이 다를 수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탱크별로 맥주 맛을 보고 ‘오케이’ 여부를 평가했습니다. 탱크별로 너무 맥주 맛이 다를 땐 블렌딩을 하기도 했지요.

일반인들은 맥주회사 연구자는 매일 술에 취해 사는 줄로 종종 오해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맛과 향을 제대로 체크하려면 외려 절대 취해서는 안 됩니다. 맥주의 원료인 맥아즙은 식혜처럼 달콤한 맛을 내는데, 맥아즙부터 각종 완제품과 반제품을 수시로 맛봅니다. 지식 없이 경험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 독일어로 된 맥주 관련 서적도 종종 읽어둬야 합니다. 자랑 같지만, 저희들끼린 “미사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맥주 만드는 것”이란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신제품 개발팀에서 근무할 때도 기술은 모자랐지만, 도전은 계속됐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이젠 비어’입니다. 독일어로 바이스(weiss)는 ‘흰’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네 막걸리처럼 흰색을 띱니다. 보통 맥주와 달리 뿌옇고 효모가 들어 있지요. 맥주보리뿐 아니라 밀이 첨가돼 밀맥주라고도 합니다. 요새 젊은이들이 종종 마시는 ‘호가든’이 바이젠 비어입니다. 맥주의 원료는 맥주보리에 싹을 틔운 맥아입니다. 밀맥주를 만들려면 밀에 싹을 틔울 수 있는 밀맥주용 제맥(맥아제조)시설이 따로 있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80년대 초반 당시 우리에겐 그런 기술이 없었습니다. 당시엔 인터넷도 없어서 자료를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막내인 제게 부사장님이 독일어책을 한 권 던져줬습니다. “밀맥주용 제맥시설 도면이 책에 있더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당시 저는 독일어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쟁이는 쟁이인지라, 도면만 봐도 대충 감이 오더군요. 결국 도면 하나만 보고, 4년 만에 제맥시설을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냈습니다. 밀 맥아는 만들어냈지만, 완벽한 고품질의 밀맥주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밀맥주에 대한 시장 수요도 당시엔 전무했습니다.

한해 한해 맥주에 대해 알아갈수록 공부 욕구가 생겼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 저는 식품공학을 전공했지만, 대학 시절엔 막걸리 담그는 법만 배웠습니다. 지금처럼 ‘산학 협동’이라는 개념이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대학에서 맥주를 배우긴 어려웠습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 한국전쟁 직후인 50년대엔 쇼테 박사라는 독일인이 맥주 기술을 전수해 줬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일본 맥주회사가 전신이었지만, 외려 일본에는 기술 이전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맥주 유학생으로 뽑혀 독일로 떠나다

사실상 과학과 지식보다 경험을 통해 수십년 동안 한국인들은 맥주를 만들어온 것입니다. 제 욕심에 못 미쳤습니다. 다행히 회사는 제가 입사하기 직전부터 연구자 가운데 한 명을 선발해 독일 브로이 마스터 코스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습니다. 여섯 번째 맥주 유학생으로 뽑힌 저는 94년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오비맥주 광주공장장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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