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우현 공장장이 생산 라인에서 무작위로 한병을 골라 검사하고 있다.
[매거진Esc] 백우현 공장장과 맥주의 시대 ②
사람 손 필요로 하던 일제강점기 공장 풍경은 85년 생맥주통 주입까지 이어져
1983년에 입사해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영등포의 양조 공장에 배치 받았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오비맥주와 조선맥주(현재 하이트)가 양대 산맥이었습니다. 두 회사의 전신은 소화기린맥주 등 일본 맥주회사로 둘 다 30년대 서울 영등포에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한국 맥주의 역사는 해방 이후 출발하지만, 양조 공장은 일제강점기의 설비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영등포는 한국 맥주의 역사가 새겨진 장소입니다.
영등포 공원에 남은 양조 솥의 자취
90년대 후반 두 회사 모두 다른 지역에 공장을 추가로 지은 뒤 영등포 공장을 폐쇄했습니다. 지금은 공장 터가 영등포공원으로 변했습니다. 공원에 당시 맥주 양조에 쓰던 솥이 남아있습니다. 혹시 근처에 사시면 찾아가 보세요. 영등포 롯데백화점에서 노량진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공원이 나옵니다.
맥주 빚는 일을 공장 현장에서 기초부터 실습했습니다. 책이 아니라 일하면서 배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맥주 회사뿐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회사들이 따로 퇴근시간 없이 늦게까지 일했습니다. 저 역시 입사 당시 총각이어서 공장에서 밤새 맥주 공부를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당시 출근시간은 8시30반이었고 퇴근시간은 대중 없었습니다.
거의 매일 근무를 마치고 뒤풀이가 있었습니다. 뒤풀이가 없는 날도 맥주를 마시는 건 변함이 없었습니다. 당시 공장 식구들은 심심한 입을 달래려고 마른 멸치를 왕창 사다놨습니다. 오다가다 씹는 간식이었던 셈입니다. 낮에 일할 땐 멸치만 먹다 저녁때쯤 되면 슬슬 맥주 생각이 납니다. 전 당시 총각이어서 눈치 볼 사람도 없었죠. 한쪽에 멸치 머리를 쌓아놓고 공장에서 막 생산된 검병용 샘플 맥주를 가져다 홀짝였습니다. 요즘 직원들 문화와는 사뭇 다릅니다. 요새 젊은 직원들은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예전처럼 술을 많이 먹지 않습니다. 술 마시고 들어가면 부인들이 싫어하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 양조 부서 선임들은 죄다 말술이었지만 정말 과묵하고 말이 없었습니다. 부서 뒤풀이 때 술집에 가면 그저 조용히 술잔만 들었다 놨다 반복했습니다. 군대문화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참다 못해 막내인 제가 술에 취해 “돌아가며 3분 스피치라도 해보자!”고 제안할 정도였습니다.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밌는 제안이라며 당시 부장님이 흔쾌히 허락하시더군요. 물론 그래도 3분을 채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당시 공장장님은 일제강점기부터 양조공장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들이었습니다. 이 선배들이 가끔 일제강점기 공장 풍경을 말씀해주셨는데 그 이야기 듣는 맛이 쏠쏠했습니다. 30년대엔 맥주 양조 공정이 기계화되지 않아 인부들이 효모를 양동이에 담아 지게로 직접 발효통까지 날랐다고 합니다. 그러고서 맥아즙에 효모가 담긴 양동이를 들이붓는 것입니다. 공정이 과학화된 현재는 효모를 파이프를 통해 발효 탱크로 넣습니다. 자동이지요. 또 일제강점기엔 지금과 같은 맥주 박스가 없었습니다. 나무 상자에 맥주병을 담아 날랐다고 합니다. 현대적인 맥주박스는 칸칸이 구별돼 있어 맥주병끼리 닿아 깨질 염려가 없지만 나무 상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병 사이사이에 볏짚을 넣었다고 합니다. 품질도 열악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돈깨나 가진 사람이 아니면 마실 수 없는 고급술이었다죠. 입사 당시엔 경기도 이천과 영등포 두 군데만 공장이 있었습니다. 광주 공장은 87년에 완공됩니다. 일제강점기보단 나았지만, 80년대 후반에도 맥주 제조 공정 가운데 많은 과정이 일일이 사람 손으로 이뤄졌습니다. 가령 이천공장만 해도 수백명의 여직원들이 일일이 컨베이어 벨트 옆에 서서 육안으로 ‘검병’을 했습니다. 검병이란 완성된 병맥주 속에 이물질이 들어 있는지를 보는 검사과정입니다. 87년 6월 항쟁 뒤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국에서 벌어졌습니다. 맥주회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 근무하다 이천공장으로 발령받았던 89년 이천공장에서도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이천공장 직원이 500명이 넘던 시절입니다. 공정의 기계화와 파업의 함수관계 맥주 공정의 기계화 과정이 시작된 건 파업이 끝난 시기와 대략 일치합니다. 80년대 후반부터 기계화가 시작됩니다. 우리 경제 전체의 산업화 과정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생맥주통 아시죠? 85년 무렵까지는 맥주공장 직원들이 길게 늘어선 생맥주통을 한 통씩 부여잡고 거대한 주사기처럼 생긴 주입기를 들은 채 맥주를 담았습니다. 그러나 89년 무렵엔 자동 주입기계가 자동으로 착착 맥주를 통에 담습니다. 백우현 오비맥주 광주공장장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거의 매일 근무를 마치고 뒤풀이가 있었습니다. 뒤풀이가 없는 날도 맥주를 마시는 건 변함이 없었습니다. 당시 공장 식구들은 심심한 입을 달래려고 마른 멸치를 왕창 사다놨습니다. 오다가다 씹는 간식이었던 셈입니다. 낮에 일할 땐 멸치만 먹다 저녁때쯤 되면 슬슬 맥주 생각이 납니다. 전 당시 총각이어서 눈치 볼 사람도 없었죠. 한쪽에 멸치 머리를 쌓아놓고 공장에서 막 생산된 검병용 샘플 맥주를 가져다 홀짝였습니다. 요즘 직원들 문화와는 사뭇 다릅니다. 요새 젊은 직원들은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예전처럼 술을 많이 먹지 않습니다. 술 마시고 들어가면 부인들이 싫어하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 양조 부서 선임들은 죄다 말술이었지만 정말 과묵하고 말이 없었습니다. 부서 뒤풀이 때 술집에 가면 그저 조용히 술잔만 들었다 놨다 반복했습니다. 군대문화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참다 못해 막내인 제가 술에 취해 “돌아가며 3분 스피치라도 해보자!”고 제안할 정도였습니다.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밌는 제안이라며 당시 부장님이 흔쾌히 허락하시더군요. 물론 그래도 3분을 채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당시 공장장님은 일제강점기부터 양조공장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들이었습니다. 이 선배들이 가끔 일제강점기 공장 풍경을 말씀해주셨는데 그 이야기 듣는 맛이 쏠쏠했습니다. 30년대엔 맥주 양조 공정이 기계화되지 않아 인부들이 효모를 양동이에 담아 지게로 직접 발효통까지 날랐다고 합니다. 그러고서 맥아즙에 효모가 담긴 양동이를 들이붓는 것입니다. 공정이 과학화된 현재는 효모를 파이프를 통해 발효 탱크로 넣습니다. 자동이지요. 또 일제강점기엔 지금과 같은 맥주 박스가 없었습니다. 나무 상자에 맥주병을 담아 날랐다고 합니다. 현대적인 맥주박스는 칸칸이 구별돼 있어 맥주병끼리 닿아 깨질 염려가 없지만 나무 상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병 사이사이에 볏짚을 넣었다고 합니다. 품질도 열악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돈깨나 가진 사람이 아니면 마실 수 없는 고급술이었다죠. 입사 당시엔 경기도 이천과 영등포 두 군데만 공장이 있었습니다. 광주 공장은 87년에 완공됩니다. 일제강점기보단 나았지만, 80년대 후반에도 맥주 제조 공정 가운데 많은 과정이 일일이 사람 손으로 이뤄졌습니다. 가령 이천공장만 해도 수백명의 여직원들이 일일이 컨베이어 벨트 옆에 서서 육안으로 ‘검병’을 했습니다. 검병이란 완성된 병맥주 속에 이물질이 들어 있는지를 보는 검사과정입니다. 87년 6월 항쟁 뒤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국에서 벌어졌습니다. 맥주회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 근무하다 이천공장으로 발령받았던 89년 이천공장에서도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이천공장 직원이 500명이 넘던 시절입니다. 공정의 기계화와 파업의 함수관계 맥주 공정의 기계화 과정이 시작된 건 파업이 끝난 시기와 대략 일치합니다. 80년대 후반부터 기계화가 시작됩니다. 우리 경제 전체의 산업화 과정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생맥주통 아시죠? 85년 무렵까지는 맥주공장 직원들이 길게 늘어선 생맥주통을 한 통씩 부여잡고 거대한 주사기처럼 생긴 주입기를 들은 채 맥주를 담았습니다. 그러나 89년 무렵엔 자동 주입기계가 자동으로 착착 맥주를 통에 담습니다. 백우현 오비맥주 광주공장장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