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2006)
[매거진 Esc]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보랏>(2006)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웃기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고상한 취향이라고 대꾸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시간 때울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로 알아듣는 사람도 꽤 많다. 또 한국 코미디 영화 시사회를 가면 무대 인사에서 “웃자고 만든 영화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즐기시라”는 배우들의 희한한 권유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코미디=1차원적 세계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이거나 무지다. 지적인 코미디의 대명사로 꼽히는 우디 앨런이나 역사적 비극을 페이소스 짙은 웃음으로 승화시킨 에밀 쿠스트리차를 내세우려는 건 아니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영화는 <보랏: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였다. <보랏>에 도대체 얼마나 심원한 철학과 주장이 담겨있길래? 라고 묻는다면 <보랏>은 코미디 영화계의 쓰레기 매립지 또는 화장실 정화조라고 표현할 수 있다. 영화를 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궁극의 화장실 유머와 음담패설을 총망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여동생을 ‘창녀’라고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미국 상류층 집을 방문에 자신의 똥을 들고 다니는 짓까지 보랏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질 떨어지는 대사와 행동으로 일관한다. 쉽게 말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농담의 퍼레이드인데 이 영화를 두고 전세계에서 줄 소송이 벌어졌고 러시아에서는 상영 금지가 됐으며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미국에 정식 항의를 하기도 했다. 왜? 웃는다는 건 그렇게 만만하고 단순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랏>에는 성 차별, 인종 차별, 종교에 대한 조롱, 이라크전에 대한 공격 등 민감한 소재들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담겼다. 신랄한 풍자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풍자’ ‘조롱’하면 떠오르는 지적 정교함 보다는 사정 없이 질러대면서 자폭하는 영화라는 표현이 맞다. 보랏이 만나는 미국의 지식인층도, 고매한 종교인도, 결연한 우파도, 그리고 페미니스트도, 성적 소수자도, 카자흐스탄도 형편없이 찌그러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영화가 질러대는 농담의 방향을 어디로 겨눌 것인가다. 그것은 보는 이의 몫이기 때문에 찬반이 격렬하게 오갔다. 너무 웃긴다고 누가 말하면 웃기는 것에도 타자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고 비판하며 이에 대해서 다른 이들은 관용의 원리를 꺼내며 다시 반박하고 나선다.
<보랏>에 대한 비평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영화의 대사들과는 격이 안맞는 지적인 단어들과 움베르토 에코같은 석학의 인용까지 등장한다. 그래서 이런 글들을 읽고 나면 한편의 작가주의 영화를 본 게 아닐까 하는 뿌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보랏>의 어법이 과격해서 그렇지 사실 이 영화가 웃음거리로 삼는 소재들은 수많은 영화나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 늘 변주되는 것들이다. 쉽게 생각해 많은 한국 코미디 영화 가운데 외모나 출신(사투리 등)을 가지고 하는 농담을 뺀다고 상상해보라. 그래서 결국 <보랏>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웃음이란 ‘그냥 생각없이 웃지요’가 아니라 선택이고 판단이며 정치적 실천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웃기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자신이 취향에-‘화장실 유머’광이라 할지라도-자부심을 가질 지어다. 눈치보지 말고 맘 편하게 웃자는 이야기다.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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