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사망원인 1위가 암이지만 서양에서는 심혈관질환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지 오래다. 비만·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을 높이는 생활습관병이 점차 늘고 있는 우리나라도 조만간 심장질환이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에선 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이른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협심증) 막혀서(심근경색) 생기는 심혈관질환이 크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관상동맥이 좁아져 가슴에 급격한 통증이나 불편감, 호흡곤란 등이 나타나는 협심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지난 2021년 한해 처음으로 70만명을 넘어섰다. 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심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우리 몸 곳곳에 혈액을 보내지 못하게 된다.
특히 뇌 등 중요 조직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최근 심혈관질환 발생 추이를 보면, 나이가 들수록 발병 위험이 커지며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았다. 협심증 등을 예방하고 심혈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운동과 적정한 몸무게 관리, 금연, 스트레스 관리 등이 필수다. 특히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를 가졌다면 더욱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협심증 환자는 2017년 한해 64만5천명에서 2021년 70만4천명으로 5년 사이 25% 늘었다. 2020년 한해 환자 수가 다소 줄었는데, 이는 코로나19 유행 탓으로 병원 방문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성별로 보면 2021년 기준 남성 환자가 60%를 차지했다. 연령별로 보면 협심증 환자 10명 중 9명 이상이 남녀 모두 50대 이상이었다. 남성의 경우 협심증 환자 점유율이 50대에 18.4%를 기록하다가 60대가 가장 많아 34.1%로 집계됐다. 70대도 27.8%로 50대보다 많았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늦은 나이의 환자들이 많았다. 50대 환자 점유율은 11.6%에 머물렀지만, 60대와 70대는 각각 28.6%, 32.8%를 기록했다. 70대에선 남성보다 여성 환자가 더 많았다.
여성이 남성보다 협심증 발병이 늦은 이유로는 여성호르몬의 구실이 꼽힌다. 폐경 전에 많이 분비되는 여성호르몬이 심혈관질환의 발병 위험을 줄인다는 것이다. 여성의 심혈관질환 점유율은 40~50대에서 15% 정도이지만 60대 이상은 82%를 차지한다. 여성호르몬이 40대까지는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을 줄이지만, 폐경으로 분비량이 크게 줄면서 그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여성의 경우 폐경 전후에 협심증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 관리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관상동맥이 좁아진 협심증이나 아예 막힌 심근경색이 나타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관상동맥에 동맥경화가 나타난 경우다. 오랫동안 고혈압·당뇨 등 동맥이 좁아질 수 있는 여러 위험 요인으로 만성적으로 혈관이 좁아진 경우인데, 이렇게 나타나는 협심증을 ‘안정형’이라고 부른다. 원인과 대책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는 하지만, 동맥경화로 생긴 협심증에선 관상동맥뿐만 아니라 다른 혈관도 위험할 수 있다. 둘째, 혈전(피떡)이 생겨 관상동맥의 일부를 급작스럽게 막는 ‘불안정형’ 협심증이다. 셋째, 혈관의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혈류 장애가 생겨 나타나는데 이는 ‘변이성’ 협심증이라 한다.
어떤 원인이든 관상동맥의 혈액 흐름이 방해를 받으면서 당장 심장근육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가슴 통증이 생길 수 있다. 통증은 왼쪽 어깨나 팔 쪽으로 퍼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운동 등 몸을 움직이면 심장근육에 혈액이 더 많이 필요하므로 증상이 더 자주 나타날 수 있다.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슴 통증은 일반적인 통증과 달리 ‘쥐어짜는 듯이 아프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가슴에 싸한 느낌이 든다’, ‘소화가 되지 않는다’, ‘명치나 턱 끝이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는 ‘쥐어짜듯 아픈’ 전형적인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하는 편이며, 여성은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하며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령층이거나 당뇨가 있는 경우에도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등 가슴 통증보다는 다른 증상을 호소하거나 아예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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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심증에서의 가슴 통증은 5분 안에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동 등을 하다가 심장근육에 공급되는 혈액량이 부족해서 가슴 통증이 생기면 운동을 멈추게 되고, 운동할 때 심장근육에 필요했던 혈액량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면서 통증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협심증으로 인한 통증은 보통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협심증의 치료는 발병 위험을 높이는 여러 생활습관병의 치료와 함께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거나 혈관을 넓혀주는 약물치료가 있다. 또 좁아진 혈관을 넓혀주는 ‘스텐트’를 넣어주는 시술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심근경색은 다르다. 이때는 관상동맥이 아예 막혀 심장근육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므로 가슴 통증이 계속된다. 만약 평소 협심증을 앓고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30분 이상 가슴 통증이 계속되면 심근경색이 생겼을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심근경색의 경우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치료를 6시간 안에 받아야 한다. 이 시간을 넘기면 심장근육은 물론 뇌 등 다른 조직이 손상돼 사망하거나 혼수상태에 빠지며, 깨어난다 해도 심한 후유증이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장질환 위험인자로는 우선 고령을 꼽을 수 있으며, 가족 중에 심장질환 발병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 본인도 발병 가능성이 커진다. 좋지 않은 습관으로는 흡연과 운동 부족이 대표적이며, 고혈압이나 당뇨도 발병 위험을 높인다. 비만도 마찬가지다. 심장질환 예방을 위해 운동은 일주일에 3회 이상, 한번에 30분 이상 규칙적으로 해야 하며, 몸무게 관리를 위해 고열량과 짠 음식을 줄여야 한다. 생선과 신선한 과일 섭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권장된다. 한두잔의 술이 심장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지만 최근 들어 그 효과를 두고 논란이 크다. 적은 양의 술도 다른 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이므로 절제해야 한다.
김양중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경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했다. 한겨레 의료전문기자로 재직하면서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위한 기사를 썼고,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업무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