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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인기몰이 형형색색 베이글…원래는 ‘율법의 빵’이었다

등록 2023-07-14 07:00수정 2023-07-14 23:37

[ESC] 박미향의 요즘 뭐 먹어 _ 베이글

폴란드 정착한 유대인의 주식
떡처럼 쫄깃, 누룽지처럼 바삭
유명 업장 ‘포토스폿’ SNS 입소문
사진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니커버커베이글’, ‘뉴욕라츠오베이글스’, ‘코끼리베이글’의 일반 베이글과 구멍이 없는 베이글, ‘런던베이글뮤지엄’과 ‘아이엠베이글’의 샌드위치. 박미향 기자
사진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니커버커베이글’, ‘뉴욕라츠오베이글스’, ‘코끼리베이글’의 일반 베이글과 구멍이 없는 베이글, ‘런던베이글뮤지엄’과 ‘아이엠베이글’의 샌드위치. 박미향 기자

“지금 한국 베이커리 전문점에서 파는 베이글이 베이글의 본질을 잘 담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각종 토핑이 화려하게 올라가거나 단 것도 많아요. 베이글은 본래 거친 식감에 달지 않은 소박한 음식이죠.”

레스토랑 가이드북 <블루리본>의 김은조 편집장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베이글 열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판적인 시각의 반대편엔 음식의 전통보다는 현지화를 통한 변주가 식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의견도 있다. 30년 이상의 제과제빵 경험이 있는 홍상기 사계베이킹아카데미 원장은 “전통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변형도 괜찮다고 본다”고 말한다. 베이글 열풍을 둘러싼 의견이 팽팽하다.

베이글은 17세기 초 폴란드에 정착한 유대인이 주식으로 먹던 빵이다. 이들이 19세기 북미 대륙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주로 정착한 곳이 미국 뉴욕과 캐나다 몬트리올 등이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베이글이 세계로 퍼져나갔고 이제 뉴욕은 ‘베이글의 도시’로 불리게 됐다.

베이글에는 본래 유대인의 음식 율법 코셔에 따라 버터와 우유가 들어가지 않는다.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만으로 만드는 게 전통 방식이다. 다른 빵들과 뚜렷하게 다른 점은 반죽을 끓는 물에 데친다는 것. 특유의 딱딱하고 질긴 듯하면서 쫄깃한 식감이 이 과정을 통해 생긴다. 가운데 구멍 난 모양인 베이글은 반을 갈라 갖가지 크림치즈를 발라 먹거나 연어, 햄, 토마토, 각종 채소 등을 넣어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2시간 기다려 가게 들어가니…

지난 4일 오후 2시30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베이글 전문점인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앞에는 아이돌 공연장처럼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20~30대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가게 종업원은 최소 1시간30분 기다려야 한다고, 그것도 ‘포장’만 가능하다고 했다. ‘포장’ 손님으로 74번. 오후 3시30분께 ‘대기’도 마감 종을 쳤다.

2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간 가게 안에는 온갖 볼거리가 가득했다. 이국적인 실내 장식과 곳곳에 배치해 둔 작은 소품들, 천장에 달린 나무 장식까지 그야말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요소들이 차고 넘쳤다. 베이글 열풍의 진원지가 런던베이글뮤지엄이란 데엔 베이커리·외식업계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다. 이곳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5만2000명에 이를 정도로, 이 업장 자체가 ‘셀레브리티’(유명인)이자 경험 콘텐츠의 장인 것이다.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에서 베이글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박미향 기자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에서 베이글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박미향 기자

손님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한 20대 청년에게 이곳을 찾은 이유를 물었더니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서”라고 답했다. 첫 방문이라는 대학생 박지민(23)씨도 “가끔 베이글 먹는데, 여기가 제일 유명하다”고 했다. 타이 거주 한국인으로 모국 여행 왔다가 이곳에 온 40대 이아무개씨는 “블로그 같은 데서 유명하다고 해서 왔다”고 했다. 전날 이곳에서 만난 스무살 동갑내기 대학생 김정인씨와 오호진씨도 “평소 빵을 좋아하지 않는데, 유행이라고 하니 경험하러 왔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뉴욕라츠오베이글스’을 방문한 직장인 최은수(32)씨는 “‘힙한 음식’이라고 좋아하는 듯하다”고 짚었다. 그는 런던베이글뮤지엄 도곡점의 대기표만 받고 입장에 실패해 이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긴 시간 투자해서 사면 성취감이 들죠. 챌린지하는 느낌인 거죠. 요즘 우리 세대가 좋아하는 맛집은 맛만 있어서는 안 되거든요. 인테리어가 이국적이든, 특별한 포토 스폿이 있든, 그런 게 필요한 거죠.” 유기헌 청강문화산업대 푸드스쿨 교수는 “에스엔에스 마케팅의 승리”라며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베이글이 한국인의 입맛에는 어떨까. 홍상기 원장은 “우리는 국물과 떡 문화다. 국물에서 연상되는 부드러운 맛, 떡의 쫄깃한 식감과 누룽지의 바삭한 식감을 갖추면 인기다. 베이글이 그런 편”이라고 말한다. “가정에서도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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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은 반으로 갈라 크림치즈를 발라 먹거나 연어, 햄, 토마토, 각종 채소를 넣어 먹기도 한다. ‘뉴욕라츠오베이글스’의 베이글. 박미향 기자
베이글은 반으로 갈라 크림치즈를 발라 먹거나 연어, 햄, 토마토, 각종 채소를 넣어 먹기도 한다. ‘뉴욕라츠오베이글스’의 베이글. 박미향 기자

“미국 유학생·여행객 증가도 한몫”

베이글은 한국에서 1996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경향신문> “유태인 건강식 베이글빵 인기” 1996년 12월25일치) 이듬해 외환위기 한파가 불어닥치면서 잊혔지만 2000년대 ‘베이글의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한 ‘미드’가 인기를 끌면서 스타벅스, 던킨도너츠 등의 매장에서 베이글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기헌 교수는 “미국 유학생이나 여행객이 늘면서 ‘뉴욕 베이글’ 추억이 있는 이가 늘어난 점도 (현재 베이글 인기의) 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베이글 열풍은 출판계로도 이어져 지난 5월22일 출간한 <에브리데이 베이글>(비앤씨월드)은 출간 2주 만에 2쇄를 찍었다. 레시피 책으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대형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뜨는 지난해 9월 말 빠르게 직영점에서 베이글 판매를 시작했다. 올해 2월부터는 가맹점 판매도 시작했고, 신상품 ‘두번쫄깃 베이글’도 출시했다. 출시 한달 만에 200만개 이상 판매됐다고 한다.

‘니커버커베이글’ 실내. 박미향 기자
‘니커버커베이글’ 실내. 박미향 기자

사람이 몰리는 베이글 맛집은 서울 시내 곳곳에 있다. 지난 4일 오후 4시30분께 찾아간 서울 영등포구 ‘코끼리베이글’에는 베이글 5개가 남아있었다. 가게 직원은 “오늘 폭우가 쏟아져 그나마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문을 연 이곳은 가스·전기 오븐이 아닌 참나무 화덕에서 베이글을 굽는다. 나무 특유의 향이 가미된 이 집 베이글은 쫄깃하면서 적당히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한다. 한남동에 이어 최근엔 성수동에 3호점을 열었다. 압구정동 ‘뉴욕라츠오베이글스’는 유기농 밀가루와 사탕수수 원당, 프리미엄 소금을 쓰는 ‘유대인 전통 베이글’을 추구한다고 한다. ‘통밀 에브리띵’ 등 9가지 베이글과 할라페뇨 등 10가지 넘는 크림치즈가 있다.

영등포구에 있는 ‘코끼리베이글’ 판매대. 박미향 기자
영등포구에 있는 ‘코끼리베이글’ 판매대. 박미향 기자

‘아이엠베이글’의 베이글. 박미향 기자
‘아이엠베이글’의 베이글. 박미향 기자

송파구에 있는 ‘니커버커베이글’은 미국에 본사가 있는 전문점이다. 주인 이은혜(40)씨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밀가루를 쓰고, 반죽도 본사에서 파견 온 이가 한다”며 “뉴욕 베이글 맛을 추구하는 게 장점”이라고 말한다. 17년간 회사생활을 접고 베이글 전문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그는 “소화가 잘되고, 씹을수록 맛있다”고 말한다.

영등포구 ‘아이엠베이글’은 마흔한살 동갑내기 건축가 부부 박균씨와 이루다씨가 뉴욕 여행을 갔다가 베이글을 접하고 반해 2012년에 개업한 집이다. 박씨는 “베이글에 크림치즈 바르고 커피 한잔하는 베이글 문화를 소개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블루베리 등 7가지 베이글과 망고코코넛 등 8가지 크림치즈를 판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도움 주신 분 : 박소라 베이커리 콘텐츠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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