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게 맡기지 못하는 일이 있다.
아이디어를 얻는 일부터 자료를 정리하는 일까지, 요즘 나는 어지간한 일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처리한다. 그런데 이 일만큼은 맡기지 않는다. 인간이 더 잘하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바로 ‘내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구름 잡는 말 같다. 익숙한 말로 풀어보자. 흔히 쓰는 말로 ‘자기 브랜드를 세우는 일’이 될 터이다. 앨 리스와 잭 트라우트가 쓴 <포지셔닝> 시리즈가 도움이 된다. ‘포지셔닝’은 머릿속에 몇 개의 낱말을 심는 일이라고 했다. 코카콜라는 ‘콜라의 고전’, 펩시콜라는 ‘젊은 세대의 콜라’ 같은 식이다. 나 자신은 어떤 낱말로 기억되고 싶은가?
집중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요즘 많이 보는 책 <스마트 브레비티>에선, 독자의 눈길을 잡아끌기 위해 두괄식으로 자기의 인생과 작업을 펼쳐내는 첫줄을 써보라고 한다. <원씽>에선 ‘인생 동안 집중할 목표’를 잡아보라고 한다. 앞으로 5년 동안 당장 집중할 목표나, 월 단위, 연 단위 목표를 각각 세워보라고 책은 권한다. 무엇을 내 일생의 큰 목표로 삼을까?
행복이라는 주제도 관계가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과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 책에 나오는 말로 풀면, 행복이란 ‘두고두고 몰입할 대상’이다. 이 대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주 집중력을 잃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내가 두고두고 몰입해도 질리지 않을 일은 무얼까?
이 일만큼은 기계에 맡길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도 맡길 수 없다. 나 자신이 책임지고 나 자신이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계속 다듬어야 한다.
나 자신을 그리는 일이 창의성과 무슨 관계일까? 자기 브랜드를 포지셔닝하는 일에 창의성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고 싶다면, 대체불가능한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더라도 말이다. 대체불가능한 독특한 브랜드를 만드는 일에는 당연히 창의성이 필요하다.
나아가 창의성을 위해 자기 브랜드가 필요하다. 창의력은 “낯선 것끼리의 조합”이다. 조합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그런데 그 가운데 좋은 조합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자기 브랜드다. 신선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내 평소 이미지와 맞지 않는 기획을 고를 수는 없다. 내가 나 자신을 알아야 세상에 나를 알아달라고 나설 수 있을 터이니.
글·그림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