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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이 서울을 달린다. 매화가 지지 않았는데 라일락이 핀다. 이쪽은 활짝 진달래, 저쪽은 철쭉 꽃망울. 2023년, 혼란한 봄이다. 깜짝 꽃 잔치에 즐겁되 불안하다. 환경은 이대로 괜찮은가, 한번에 꽃이 지면 꿀벌은 어떡하나. 생각이 많은 봄 산책. 스마트폰을 들고 뒷산을 걸으며 인공지능(AI)에게 이 일 저 일을 시켜본다.
내 직업은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이다. 글을 생성하는 챗지피티(GPT)를 써보았다. 내 소감은 “재밌다”는 수준. 그런데 미드저니, 달리(DALL-E) 등 인공지능이 생성한 그림을 접하고, 나는 흥분하되 긴장한다. 이런 시대를 산다는 일이 그림쟁이로서 행운이며 불운이라고 생각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아이디어를 짜내는 일에 도움이 된다. 속도가 빨라서다. 글도 그림도 바로바로 뽑아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며 토니 부잔의 마인드맵이며, 글과 그림이 함께할 때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다만 그림을 구하고 예쁘게 노트를 꾸미는 일에 시간이 많이 들어 문제라고, 나는 이 칼럼에 쓴 적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이용해 그림을 생성하면 어떨까. 휴대전화를 통해 그림 한편을 주문하고 받아보는 데 30초 정도 걸리는 것 같다. 글을 쓸 때도 생활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인공지능으로 그림을 뽑아보니 도움이 된다.
그림 그릴 때도 물론 유용하다. 그림에는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꽃길을 걷는 얼룩말’을 어떻게 그리면 좋을까. 옛날 같으면 구도니 조명이니 꽃이 핀 모양이니 얼룩말의 몸짓이니 의상이니 하나하나 습작해보고 정해야 했다. 이번에는 인공지능에 부탁해 여남은 점의 밑그림을 받아보았다. 근사하다. 얼룩말과 어울리는 줄무늬 양복은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영감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그림쟁이로서 행운이려나.
그런데 그림 그리기가 쉬워졌다는 일은 나한테 불운일 수 있다. 원하는 그림을 손쉽게 뽑아내는 시대가 와서, 나 같은 그림쟁이가 일감을 떼이면 어떡하나. 더 큰 걱정이 있다. 저작권 문제다. 저작권 침해라기보다 ‘저작권 우회’라고 말하고 싶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그림 속 얼룩말 머리는 어디서 가져온 사진일까? 보는 사람도 모르고, 창작자인 나도 모른다. 저 얼룩말을 직접 찍은 사람은 알아보려나? 이미지의 진위 여부도 문제다. 얼룩말 대신 유명인이 우리 집 뒷산을 걷는 사진이라면? 교황이 패딩 차림으로 걸어가는 ‘사진’이 온라인에서 지금 화제다. 인공지능이 만든 이미지다. 심각한 가짜 뉴스일까, 재미로 보는 밈일까. 아니면 새로운 기준이 필요할까.
혼란한 봄이다. 새로운 예술이 꽃필 시대에, 나 같은 옛날 사람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글·그림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