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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진달래꽃’ 뿌리는 사람들

등록 2022-05-20 16:19수정 2022-05-20 16:41

김태권의 영감이 온다

그림 김태권
그림 김태권

스토리텔링에 대한 두번째 칼럼. 이야기가 시작하고 첫번째로 만나는 주요인물은 “인생에 큰 변화가 몰아닥친다”고 말해줄 사람이다. 이전 칼럼에서 이 사람을 ‘흰토끼’라고 불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그 토끼다. 앨리스는 심심했다. 변화를 원했다. 그때 말을 하는 흰토끼가 나타났고 앨리스는 그를 쫓다가 이상한 나라에 들어간다.

두번째로 만날 사람을 나는 ‘진달래꽃’ 또는 진달래꽃 뿌리는 사람이라 부르고 싶다. 흰토끼는 주인공더러 “변하라”고 하고 이 사람은 진달래꽃을 뿌리며 “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다. 말은 “갈 테면 가라”지만 메시지는 “가지 마세요”다. 흰토끼에 정신 팔려 이상한 나라로 떠나려던 주인공은 진달래꽃 뿌리는 이를 만나 망설인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얼개란? 한줄로 줄이면 이렇다. “누가 어떤 일이 너무 하고 싶은데(또는 하기 싫은데) 그 꿈을 이루는 것은 죽도록 힘들다.” 나는 이 인상 깊은 한줄을 심산 선생에게 들었는데, 여기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본 적이 별로 없다. 흰토끼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또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인물이다. 진달래꽃은 그 꿈을 이루기가 얼마나 힘든가 일깨우며 발목을 잡는 인물이다.

진달래꽃은 사람이어도 좋고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주인공 스스로 옛날에 했던 “나는 변하지 않겠어”라는 약속일 수도 있고, 주인공 발아래 뿌려진 진달래 꽃잎일 수도 있다. 주인공의 과거가 담긴 사물을 객관적 상관물 삼아 예술적인 단편을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 서사 장르라면 사람이 그 역할을 맡는 쪽이 쓰기도 보기도 편할 터이다. 그러지 않으면 주인공 혼자 떠드는 장면이 늘어날 테니까.

진달래꽃은 여럿이어도 좋고 한 사람이어도 좋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에서 진달래꽃은 두 그룹이다. 한쪽은 프랑스 사람들이다. 주인공 헨리 5세가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대다. 또 한쪽은 폴 스태프 패거리다. 주인공의 옛날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사고 치고 함께 놀던 헨리 왕자가 어느 날 갑자기 좋은 임금이 되겠다며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 사람보다 적어도 좋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같은 인물을 이야기 첫머리에서 흰토끼로도 진달래꽃으로도 돌려 쓸 수 있다는 의미다.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주인공 샹치를 찾아오는 자객들은 두가지 역할을 한다. “펜던트를 되찾고 싶으면 우리를 쫓아오라”는 흰 토끼면서, 동시에 “우리를 쫓아오는 여행은 죽도록 힘들 것”을 알리는 진달래꽃이기도 하다. 아이러니가 있으면 좋다. 늘 말하듯 창의성이란 ‘서로 다른 요소의 새로운 결합’이니 말이다. 이런저런 실습이 가능한 페이지를 만들어보았으니 정보무늬(큐아르코드)로 접속해보시길.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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