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 산을 통해 많은 것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등산의 즐거움부터 산에서 그림 그리는 법, 자연을 지키는 ‘클린하이킹’ 등. 내가 얻은 영감들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애썼다. 그러나 올해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졌다. 내 안에 새로운 영감을 채워야 또 무언가를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오랜 세월 ‘언젠가는’으로 미뤄온 학교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바로 ‘등산 학교’다. 6주간 주말 모두 반납해야 하는 교육과정이니 주말에 일하는 프리랜서인 내게는 통 큰 결심이었다.
등산 학교는 정확히 말하면 ‘등반’ 학교에 가깝다. ‘등산’(登山)은 주로 낮은 산을 가볍게 오를 때 사용하는 반면 ‘등반’(登攀)은 험한 산이나 높은 곳의 ‘정상’에 이르는 것으로 암벽 등반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보다는 학생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이 났다.
그런데 아뿔싸! 학교가 도봉산 ‘속’에 있다. 그야말로 등교가 등산인 것이다. 아침부터 도봉산을 오르느라 뜨거운 땀이 주르륵 흘렀지만 싱그러운 봄꽃들과 형광 연둣빛 신록으로 무장한 등굣길은 힐링 코스다. 30분 정도 부지런히 올라 도봉대피소에 도착했다. 산장 카페에서 할머니가 내려주는 커피 한잔의 향을 맡고, 세월감이 느껴지는 대피소 침대와 교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1947년 최초로 설립된 등산 학교의 살아 있는 역사 속으로 들어온 듯했다.
흔히 학생이라 생각하기엔 무척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다. 20대부터 60대까지, 모두 96기 동기생들이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다. 수업은 기초 등산 이론부터 야외활동 지침인 산악 안전, 장비와 등반 기술, 그리고 등반사까지 총체적인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따사로운 주말의 정오, 한창 나들이 가야 할 시기에 학교에서는 수업이 한창이다. 뜨거운 열기에 교실 안은 여름인 듯하다. 등산은 혼자 할 수 있지만, 등반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나의 안전을 줄 하나로 나의 앞사람 혹은 뒷사람이 담보하고 내가 안전해야만 또 나의 파트너의 생명을 확보할 수 있다. 로프는 그야말로 생명줄. 작은 줄 하나로 서로의 목숨을 지탱하는 사이, 이런 끈끈함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네번째 수업이 되자 ‘진짜’ 벽에 매달릴 차례가 되었다. 학교를 벗어나 실습 바위로 향했다. 평소에 다니는 일반 등산로와는 다른 길이다. 묵직한 장비를 메고, 풀숲을 헤쳐 나가니 고대 동물의 피부처럼 골이 깊고 거친 커다란 직벽이 나타났다. 코끼리 바위라 불리는 바위다.
선생님의 시범을 마치고 차례가 돌아오자 심장이 쫄깃해졌다. 사진만 찍고 지나치던 바위라는 존재를 직접 만져본다. 차갑고 까칠하다.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아 한참을 더듬어보지만, 조그만 돌기나 틈 하나를 잡고 딛고 올라서야 한단다. 나를 지지해주는 장비와 내 다리의 힘을 믿고 올라서야만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추락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오히려 몇차례 미끄러진 뒤 줄이 나의 사지를 지탱해주는 경험을 하니 점차 침착해졌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바위틈을 딛고 서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오후의 빛을 받은 도봉산 선인봉의 웅장한 모습이 시야를 장악했다. 도봉산에 이런 화각이 있었나? 10년도 넘게 수십 번을 다닌 도봉산이지만 전혀 다른 산처럼 느껴졌다. 아찔하고도 짜릿했다.
얼마간 나와 바위와의 사투 끝에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해냈다! 해냈어! 잘했다!” 선생님과 동기생들의 격려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쳤다. 생존에 대한 간절함과 동시에 이곳에 살아 존재함에 대한 감사함이 격동적으로 차올랐다. 산은 늘 새로운 방식으로 삶에 대해 느끼게 해주고 알려준다. 다음엔 암벽에 매달린 채 산 풍경을 그려보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꿔본다.
김강은 벽화가·하이킹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