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물들 사이를 오가며 신중하게 마음을 저울질했다. 어떤 식물을 얼마나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무엇을 오랫동안 두고 돌보고 싶은지, 발코니나 창 앞에 두었을 때 가장 멋지게 햇볕을 받을 새 식물은 어떤 건지, 어느 외롭고 슬픈 날 무거워진 팔다리로 귀가했을 때 어떤 식물이 새잎을 쫑긋거리며 반겨줄지.
며칠 전, 그간 열심히 마감을 해온 나 자신에게 상을 주는 기분으로 일산의 화원에 갔다. 무엇보다 꽃을 피울 식물들을 들일 생각이었다. 꽃봉오리를 단단하게 모았다가 꽃잎을 하나하나 펼치며 환하게 꽃을 열어 보이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었다. 식물 집사가 관상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식물들이 펼치는 삶의 드라마에 기꺼이 참여한다는 것 아닐까. 우리는 결과의 확인이 아니라 과정의 조력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매일같이 ‘물시중’을 들고 해충이 생기면 불같이 화를 내며 잎이 지면 그 쇠락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화원에 도착해 입구에 놓인 식물들부터 하나하나 살피며 안으로 들어갔다. 봄 마당에 심기 좋은 모종들이 나와 있었다. 나 역시 하나 사려고 별렀던 튤립이 보였고 다양한 야생화들이 놓여 있었다.
화원에 가면 초반에는 바구니를 들지 않는다. 사람과 식물은 많고 길은 좁아서 찬찬히 살피려면 짐이 없는 게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장을 돌면서 집으로 데려갈 화분과 데려가고 싶지만 고민해봐야 하는 화분들의 목록을 짜기 시작한다. 그날은 프리지어 화분이 많이 나와 있었다. 진열대 근처만 가도 향이 진했고 존재감이 뚜렷했다. 나는 거실에 프리지어를 놓고 매일같이 그 달콤한 향을 맡는 상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맡는 프리지어 향은 어떤 나쁜 꿈도 지워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튤립을 사기로 했는데 꽃 화분을 또 들이는 게 맞을까. 차라리 꽃 화분을 더한다면 매대 아래 와글와글 모여 명랑한 분위기로 꽃을 피우고 있는 숙근이베리스가 낫지 않을까.
나는 식물들 사이를 오가며 신중하게 마음을 저울질했다. 어떤 식물을 얼마나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무엇을 오랫동안 두고 돌보고 싶은지, 발코니나 창 앞에 두었을 때 가장 멋지게 햇볕을 받을 새 식물은 어떤 건지, 어느 외롭고 슬픈 날 무거워진 팔다리로 귀가했을 때 어떤 식물이 새잎을 쫑긋거리며 반겨줄지. 그렇게 헤아려보는 시간은 나의 파트너나 동반자를 찾는 과정, 궁극적으로는 내 미래를 함께할 어떤 사랑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 식물은 우리 집에도 있지?”
가드닝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화원에는 즐겨 동행하는 남편이 한 식물을 가리켰다. 자줏빛 잎에 마치 수채화붓으로 그린 듯 분홍색과 진녹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는 칼라테아 스트로만테 멀티컬러(칼라데아 스트로만데 멀티컬러)였다. 우리 집 서재에도 같은 식물이 무성한 잎을 내며 자라고 있었다.
“맞아, 상수동에서 들인 애잖아.”
그러다 우리의 시선은 가격표에 꽂혔다. 몇장의 잎을 냈을 뿐인데도 가격이 2만원을 넘었다. 내가 칼라테아를 산 건 2년 전이었는데, 현대적 감수성이 물씬 나는 빈티지 토분까지 해서 5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들인 것으로 기억했다. 우리는 당장 계산을 했다. 서너장에 2만원이면 지금 집에 있는 식물은 대체 얼마란 말인가.
칼라테아 스트로만테 멀티컬러는 순하게 자라는 식물이었다. 잎을 돌돌 만 채로 올리다가 활짝 펼치는데 그 과정도 재밌고 물만 잘 주면 금방금방 잎을 냈다. 다만 건조에 약해서 나는 약간의 투자를 따로 해야 했는데, 노지에서 쓰는 작은 비닐온실을 사서 덮어주는 것이었다. 그것도 배송료까지 해서 칼라테아 잎 한장 반 정도면 되는 금액이었으니까 투자 대비 수익률이 높은 셈이었다. 이것이 바로 ‘식테크’라는 것인가 싶었다.
식테크는 말 그대로 식물로 하는 투자다. 요즘은 중고거래앱 등을 통해 일반인들도 식물을 많이 판매하는데, 그중 몬스테라나 필로덴드론 변이종들은 아주 고가로 팔린다. 색소 부족 등으로 잎이 희고 노란 변이를 띠게 되면 그것이 특별하고 희소하게 받아들여져 가격이 더 높아진다. 잎을 겨우 한장 낸 삽수나 유묘들이 수십만에서 수백만원에 이르고 아이보리색과 녹색이 한 잎에 섞여 있는 몬스테라 아단소니 바리에가타의 경우 천만원까지 값이 나간다.
그와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잎자루가 길고 잎도 갸르스름해서 어떨 때는 새의 아름다운 깃털처럼 느껴지는 칼라테아의 잎 한장 한장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다니. 나는 남편 앞에서 괜히 어깨가 좀 펴졌다.
물론 가족들에게 나누는 것 외에는 내 식물을 반출(?)해본 경험이 없는 내가 시장에 내놓고 팔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식물은 계속 자라고 언젠가는 화분이 비좁아질 정도의 ‘잉여’가 발생할 것이었다. 가지를 빨리 뻗어나가는 우리 집 베고니아들은 벌써 열개 가까운 삽수를 낳았다. 지금까지는 내가 다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둘 공간이 없어지고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선택이 거래로 이어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따져보면 처음에 역시 돈을 주고 들였으니까. 며칠 전 봄날의 화원에서 그랬듯 열심히 비교하고 가성비를 따져가며 과연 얼마나 원하는지 계산하느라 온 마음을 쓰지 않았던가. 그렇게 애쓰는 마음 또한 대상에 대한 호의와 사랑과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화원에서 돌아온 뒤에도 칼라테아를 대하는 내 태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흙이 마르면 물을 주었고 분무까지 해주면 잎이 훨씬 말끔하게 유지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까지 챙기게 되지는 않았다. 하던 대로 돌보고 무리하지 않는 선까지만 아꼈다. 물론 이따금 비닐온실을 들추고 잎을 세장씩 네장씩 묶어 머릿속으로 값을 계산해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괜한 흐뭇함에 해보는 장난일 뿐이었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 해도, 그다지 이상할 것 없는 순환이라 해도 아직은 ‘거래’로 식물들과의 인연을 끝낼 준비는 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그간 함께 만들어낸 이 숱한 날들의 사랑의 서사를 말이다.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