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정리가 창의력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 의견이 엇갈린다. 정리되어야 집중이 잘된다고도 한다. 반대로 어수선해야 좋다는 쪽도 있다. 뒤죽박죽인 속에서 엉뚱한 조합을 찾아낼 수 있단다. “익숙한 것의 새로운 조합”이 창조성의 비결이라지 않나.
나는 어지르는 쪽이다. 책상과 방바닥에서 책 나무, 문서 나무가 쑥쑥 자랐다. 그러다가 며칠 전 나는 책상을 싹 비우고 방을 뒤집어엎었다. 참으로 여러해 만의 대청소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걸까?
나는 창조적 영감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창의력을 책으로 배운다. 얼마 전에 트와일라 타프가 쓴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이라는 책을 읽었다. 잔소리가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마음에 쏙 드는 대목이 있었다. 종이 상자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상자에 새로 할 작품의 이름을 쓰고, 공책, 신문, 책과 사진 등 작품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집어넣는다.” 나는 솔깃했다. 종이 상자를 구해 마침 쓰던 책의 관련 자료를 쓸어 담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내 방이 어찌나 어수선한지 작은 종이 상자 하나를 얹어 둘 평평한 공간이 없다. 충격이었다. 이건 좀 심하다 싶어 나는 방 정리를 시작했다.
창의력을 책으로 배우는 사람이다. 나는 정리법도 책부터 읽었다. 고메다 마리나가 쓴 <정리 잘하는 사람은 이렇게 합니다>라는 책에 소개된 방법은 이렇다. 일단 책상 위와 책상 주변을 싹 비운다. 내 경우는 작업실 바닥에 전부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물건을 사용 빈도 순서로 아카이브한다.” 요컨대 오늘 쓴 물건은 ‘날마다 쓰는 물건’ 공간에 두고, 오늘 쓰지 않은 물건은 다른 공간에 밀어낸다. 이런 요령으로 자주 쓰는 물건과 가끔 쓰는 물건을 나눈다. 자주 쓰는 물건은 일간, 주간별로 가까운 서랍이나 선반에 두고, 자주 안 쓰는 물건은 월간, 연간 상자에 빽빽하게 포개 넣는다. 상자 속을 사진으로 찍으면 내용물을 애써 기억할 필요가 없다.
1년이 되도록 안 쓰는 물건은? 당장 버릴지 말지 고민하지 말고, 일단 망설임 상자에 넣어둔다. 분류할 때는 분류만 하고, 버릴지 말지는 따로 날을 잡아 판단한다는 것이다. 한번에 분류와 판단을 같이 하지 않아도 되니 머리 아프지 않다. 시스템을 갖추면 날마다 5분씩만 투자해도 작업실을 깔끔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해보니 어떠한가? 책상 위가 텅 비니 확실히 집중력은 좋아졌다. 창조성은 아직 모르겠다. 방 정리가 미처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하루에 30분 이상 정리하면 머리에 무리가 간다”는 감사한(!) 충고가 있다. 한편 “보통은 집 정리에 서른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말도 나온다. 내 작업실 정리가 끝나려면 한참이나 남았다는 뜻이다. 정리가 창조에 도움이 될지 아닐지? 이 오랜 난제는 그래서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았다. 아마 독자님마다 각자 마음에 정한 답이 있으실 테지만.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