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과의 중고 거래가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나는 한동안 ‘당근마켓’ 중독자였다. 가스레인지를 2만원에 팔고 성취감을 맛봤다. 일어나자마자 당근을 훑어보고 저녁 무렵 동네를 돌며 찜해놓은 물건들을 수거했다. 빨아 먹는 홍삼이나 귤 같은 것들이 종이봉투에 덤으로 들어 있었다. 실패도 했다. 목에 한바퀴도 둘리지 않는 목도리, 엉덩이가 들어가지 않는 바지가 쌓였다. ‘파충류 밥그릇 5천원? 이런 걸 누가 사지?’ 사람 사는 풍경을 구경하는 맛 때문에 끊을 수가 없다.
중고 거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6㎞ 이내 동네 거래만 허용하는 당근마켓은 월 이용자 수가 2018년 1월 50만명에서 2022년 1월 1700만명으로 34배 뛰었다. 번개장터도 월 이용 건수가 2020년 339만건에서 2021년 660만건으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일상이 된 중고 거래, 어떻게 하면 더욱 슬기롭게 할 수 있을까. 중고 거래 고수들의 비법을 살짝 들여다봤다.
물건 보내고 위로 얻어
김민정(58)씨는 2년 전 부산에서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 와 뇌경색을 앓는 어머니 병간호를 시작했다. 짐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관계를 채워야 했다. “어쩌면 당근마켓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의 ‘매너온도’는 90도다. 온도가 높을수록 신뢰도가 높다는 뜻이고 99도가 최고다. 여느 고수들처럼 물건 사진을 여러장 찍어 올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잘 팔린다. 워낙 싸다. 너무 싸서 의심을 살 때도 있다. 잘 깎아준다. 교환, 환불도 다 해준다. 덤도 준다. 단골도 10여명 생겼다. “처음엔 등산용품을 많이 내놨어요. 나이 드신 분들이 5천원짜리 사러 걸어오시는 거예요. 정말 고마워하시더라고요.”
그는 분홍색 벙거지 모자를 2천원에 산 한 할머니를 기억한다. “몸이 굉장히 안 좋아 모자를 사러 가기 힘드니 가져다줄 수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버스로 30분 거리였다. 그는 가는 길에 사과를 샀다. 홀로 사는 할머니는 암투병 중이었다. “모자 하나로 이렇게 큰 기쁨을 줄 수 있구나 했어요.”
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사람들이 속마음을 꺼내놓는다. “기도해드릴게요”란 말에 울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들 점퍼를 사러 온 한 중년 여자도 그랬다. 민정씨가 차를 대접했다. 여자는 처음 보는 그에게 “사업이 망했다”며 “죽고 싶다”고 했다. 민정씨도 죽을 만큼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 이후에도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사춘기 아들 반항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와도 한참 얘기했다. “제가 영어 강사를 오래 했어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겪는 아이들도 가르쳤고 부모님들과도 얘길 많이 했죠. 상담 노하우가 쌓인 거 같아요.”
진상은 어디에나 있다. 민정씨는 옷을 팔기 전에 세탁해 비닐로 덮어둔다. 여러개 중에 고르겠다면 다 들고 나간다. “입어보고 구겨서 바닥에 던지는 사람도 있어요. 제일 기분 나쁜 건 무시하는 말투죠.” 공감하는 사람도 어디에나 있다. “엄마가 아주 아프실 때는 제가 외출을 거의 못 했어요. 잠깐 당근 하고 오는 게 큰 행복이었어요. 좋은 사람이 많아요. 저랑 같은 처지인 분이 위로 많이 해주셨어요.”
비우고 나서 드는 해방감
‘이런 게 팔릴까?’ 추억이 모이니 짐이 됐다. 웹디자이너 김예진(31)씨 집엔 옷핀, 비즈가 쌓여 있었다. 팔찌 만들기 세트를 구성했다. “언젠가 누군가는 사 가더라고요.” 2000년 그가 초등학생 때 모은 우표 100장과 크리스마스실을 5천원에 올렸다. “1초도 안 돼서 채팅이 막 오더라고요. 어떤 분이 자기가 만원에 사겠다고 빨리 달래요.” 모아뒀던 영화 팸플릿도 팔았다. “여자분이 집 앞까지 오셔서 한장 사셨어요. 200원인데 500원 주시더라고요.”
캐릭터 스티커는 아이들이 부모님이랑 같이 사러 오면 덤으로 몇개 더 준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선물해준 커다란 피카추 인형이 있었어요. 꼬마 애가 엄마랑 같이 와서 안고 갔어요. 추억이 깃든 인형이라 버릴 수 없었는데 입양 보내는 느낌이었어요.” 그는 입양 보낸 추억들은 사진으로 남겨둔다. “물건을 많이 모으는 맥시멀리스트였는데 비우고 나니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소소한 물건이라도 중고 거래의 대상이 된다. 김예진 제공
2015년 중고 거래를 시작해 이제까지 700여만원을 벌었다. 가장 비쌌던 물건은 이케아 침대였다. 대체로 5만원 이하짜리들을 팔았다. “사진이 중요해요. 특히 문제 있는 부분을 다양한 각도로 찍고 정보를 솔직하게 써야 해요. 실제 입고 있는 사진도 올리고요. 색깔이 다르게 보이지 않게 조명도 신경 써요. 재질, 브랜드 등 키워드를 자세하게 올려요.”
제일 팔기 어려운 건 옷이다. 사진만 보고 선뜻 사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사 갈 때 상자에 팔 옷들을 빼놓고 구경하시라 했어요. 수레에 싣고 가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는 여러 플랫폼을 활용했다. “당근마켓엔 생활용품 등 택배로 보내기엔 저렴한 걸 많이 올려요. 중고나라엔 특정 브랜드나 전자제품 등 가격대가 좀 더 높은 걸 내놓는 편이에요.”
직거래할 때 약속 장소는 지하철역 앞 등 사람 많이 다니는 곳으로 정한다. 택배로 보낼 때는 집 주소 대신 마트 주소를 적는다. 바짝 긴장할 때도 있다. “2천원짜리 남자 옷을 팔았는데 건달같이 보이는 남자가 오는 거예요. 무서워서 집에 갈까 했어요. 그 사람이 잔돈이 없다면서 바로 옆 편의점으로 들어오래요. 아이스크림 하나 고르라는 거예요. 싼 거 집었더니 비싼 거 사래요. 아이스크림이랑 2천원 받았어요.” 중고 거래 하다 보니 아는 얼굴이 늘었다. “선글라스를 팔았는데 제가 자주 가는 곱창집 주인아주머니가 오셨어요. 왜 그렇게 반갑던지. 아는 얼굴들이 생기니까 동네가 더 안전해진 느낌도 들었어요.”
박영숙씨가 중고 거래 물품을 포장하고 있다. 박영숙 제공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자매인 박영숙(72)씨와 진희(68)씨는 2인조 ‘당근 할머니’들이다. 동생 진희씨는 다섯달 전에 중고 거래를 시작해 150만원을 벌었다. 20여년간 모은 그릇이 효도했다. “제 손으로 제 유품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애들한테 이 물건들이 짐이 될 테니까. 중고 거래 하기에 딱 좋은 나이예요. 지하철 무료니까 가지러 가고 받아 오는 데도 돈도 안 들고요.” 비우려고 시작했는데 자꾸 눈에 들어오는 물건들이 있다. “3개 팔면 1개 사요.” 그가 ‘득템’ 했다며 자주색 누비 점퍼와 오리털 파카를 자랑했다.
언니 영숙씨는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산다. 진희씨 물건을 대신 팔아주기도 한다. “우리 집은 외졌는데 언니 동네가 아파트가 많아서 더 잘 팔리거든요.” 수시로 통화 중이다. 진상을 만난 날엔 전화통에 불난다. “나이키 운동화 새것을 내가 가져다줬어. 집에서 구운 마들렌도 넣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더라.”(동생) “나눔으로 내놨는데 약속을 다섯번 안 지키더라. 결국 내가 나눔 포기했잖아.”(언니)
언니 영숙씨 집 방 하나는 뽁뽁이, 상자들이 차지했다. 석달 전 식탁 하나를 나눔 한 게 시작이었다. “젊은이들이 사 갔는데 사진을 보내줬어요. 장식 콘솔로 잘 쓰고 있다고요. 흐뭇하더라고요.”
흐뭇도 하지만 수입이 쏠쏠했다. 200만원을 벌었다. 8만원짜리 코트가 최고가였다. “시세를 보고 올려요. 관심 있다는 사인인 ‘하트’가 많으면 가격을 조금만 내리고 적으면 많이 내려요. 동생이 좋은 물건이 많지. 그런 물건을 깔아둬야 잘 팔린다니까.”
그는 중고 거래 하며 “살아 있다”고 느낀다. “코로나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잠옷 바람일 때도 있는데 중고 거래가 약간의 긴장감을 줘요. 사람을 만나잖아요. 편의점 택배, 반값 택배도 할 줄 알게 돼서 자신감이 붙었어요.” 후유증도 있다. “단골도 생기니 가게를 연 거 같은 느낌이 든다니까. 손님이 둘러볼 물건이 있어야 하잖아요. 어떨 때는 제가 멀쩡하게 입고 다니는 옷도 막 내놔요.”
김소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