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가 벌써 입춘이다. 계절은 아직 겨울 한가운데 있지만, 남도에서 들려오는 꽃 소식에 태어나서 처음 연애하는 사람처럼 안절부절 애가 탔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는 동백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봄의 전령이 아닐까. 반려견 겨울, 바다와 함께 동백숲을 걷고 싶었다. 거기다 이번엔 오랜만에 아빠랑 캠핑이다. 상상만 해도 설렜다.
우리나라에서 동백이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곳은 제주다. 남국이라지만 제주 칼바람은 생각보다 녹록지가 않아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쌓았다. 거기에 동백나무를 한번 더 에둘러 심었다고. 제주도 남원읍 동백숲은 이렇게 태어났다. 신흥2리부터 위미리 전역에 동백숲이 자리하고 있어 자분자분 이른 봄맞이 나들이 즐기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 제주동백마을, 제주동백수목원, 동백포레스트, 위미리 동백군락지까지 각기 다른 매력이 넘친다.
그중에서도 신흥 동백마을은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인 1706년 신흥2리에 터를 잡은 김명환씨가 심은 동백으로 숲을 이룬 곳이다. 낮은 집 담벼락을 따라 둘러 심은 동백이라 규모는 작지만, 마당에 심은 귤나무와 함께 동백꽃을 만날 수 있어 소박하고 서정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바닷가 마을 위미리에 자리한 동백나무 군락은 가난한 집에 시집온 어느 제주 할망의 인생을 담은 숲이다. 그가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아껴 모은 돈으로 산 황무지에 동백 씨앗을 뿌렸다. 수십년이 지나 어느덧 그 세월만큼 자란 나무가 밭을 품에 안고 마치 성벽처럼 바람을 막아주며 비로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되었단다. 할망은 이제 가고 없지만, 동백꽃은 그 자리에 남아 해마다 봄이 오면 그의 아름다운 결실을 만나기 위한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상남도 거제시의 섬 지심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거제도 인근에 자리해 동백이 숲을 이룬 작은 섬으로 동백꽃이 한창 절정인 2월 말에서 3월은 전국 각지에서 상춘객이 모여든다. 원시 상태로 잘 보존된 지심도의 동백숲은 거제 8경 중 하나로 섬 모양이 한자의 마음 심(心) 자를 닮아 지심도가 되었다.
올해는 동백섬, 지심도로 향했다. 동백꽃만 본다면 절정의 순간에 가는 게 좋을 테지만, 반려견과 한갓지게 즐기기엔 적당히 꽃을 피운 요즘이 딱 좋다. 지심도는 섬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는 데 얼추 2시간 정도로 비교적 난도가 높지 않아 걷기에 부담이 적다. 처음엔 여기에서 백패킹을 하고자 했으나, 지심도는 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므로 취사와 야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지심도 일주 코스는 약 4.2㎞. 해안 절벽을 따라서, 동백 터널을 지나기도 하면서, 찰박찰박 파도 소리 들으며 걸었다. 봄기운 품은 겨울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는 차가웠지만 확실히 더 맑아졌고, 가슴은 전에 없이 따뜻했다. 푸른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희미한 지심도의 동백숲 오솔길은 겨울과 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또 다른 계절이 되었다.
지심도를 나와 바다를 마주하며 캠핑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 빛이 맑고 모래가 곱다는 명사해변 캠핑장이다. 모래사장 뒤쪽으로 해송숲이 있어 캠핑하기엔 그만이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예전의 캠핑장은 폐쇄되고, 그 자리에는 해변 내 야영과 취사를 금지한다는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각, 캠핑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예약도 없이, 반려견까지 데리고 있는 우리에겐 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지심도는 반려견 동반이 허용된다. 홍유진 제공
황포해수욕장 야영장은 이런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주었다. 예약 없이 당일 방문이 가능했고, 반려견 동반도 가능한데다 공간이 드넓어 머물 자리 걱정조차 필요 없었다. 소나무숲 한쪽에 작은 집을 지었다. 아빠는 따뜻한 무시동히터가 잘 나오는 차 안에서 차박하기로 했다. 나와 함께 겨울, 바다가 몸을 누일 우리들의 2인용 텐트는 워낙에 작고 간단해서 설치하는 데 20분을 넘기지 않았다. 가벼운 저녁을 먹으며 도란도란 아빠와 담소를 나누었다. 우리는 황금빛과 오렌지를 섞어놓은 듯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기대했는데 날이 흐려 볼 수 없었음을 함께 아쉬워하기도 하고, 밤하늘에 빼곡히 박혀 있는 별만큼은 우리 편이라고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텐트 안으로 들어오니 겨울이, 커다랗고 푹신한 털 뭉치가 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른 한 손으론 바다의 부드러운 귓불을 만지작거리면서.
거제 황포해수욕장은 캠핑이 가능하다. 홍유진 제공
캠핑이란 카테고리로 야외 생활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계절의 변화에 예민해졌다. 누군가는 가을을 탄다지. 나는 사계절을 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달뜬 마음으로 주말을 기다리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색감은 봄에 다 모여 있었네. 여름 해가 참 길구나. 은행잎 샛노라니 우리나라 가을이 이렇게 예뻤나. 눈 내린 하얀 겨울 숲을 기다리며 매일 일기예보를 들여다본다. 장담하건대, 인생이 무료하게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캠핑을 시작해보시길.
캠핑에 관심은 있지만 주변에 함께 시작할 사람이 없다면, 혹은 처음부터 나 홀로 캠핑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라면 백패킹을 추천한다. 나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캠핑은 텐트를 치고 난 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기 마련이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지는 시간을 견디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백패킹은 등짐 여행을 말하는 것으로 1박 이상의 야영 생활에 필요한 장비를 구성해 떠난다. 주로 등산과 하이킹, 트레킹 등의 레저 활동과 캠핑을 결합한 형태로 시간과 장소의 선정이 자유로운 게 장점이다. 한두시간 정도 산책하듯 하이킹을 즐긴 후 소꿉놀이하듯 야영과 식사를 끝내고 나면 심심할 틈 없이 하루가 금세 지나가게 될 것이다.
커플이나 가족, 2~3인 정도의 소규모 인원이 함께 즐기기엔 오토캠핑이 제격이다. 오토캠핑은 자동차로 이동하며 야외에서 숙박하는 것으로 백패킹보다 장비를 여유롭게 갖추고 즐기는 아웃도어 활동이다. 낮 시간은 여행을 즐기고 늦은 오후부터 캠핑 사이트를 구성해 아빠와 내가 그랬듯 오손도손 함께한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밤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랄까. 무엇보다 사이트나 시설을 잘 갖춘 캠핑장을 이용하면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캠핑을 즐길 수 있어 처음 캠핑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홍유진 여행작가
△알아두면 좋아요
* 황포해수욕장 야영장: 바다 전망, 솔숲 야영, 벚꽃 캠핑 모두 가능한 곳. 당일 피크닉은 1만5천원, 1박 2만원, 2박 3만원으로 이용료가 저렴한 게 장점이다. 주말 혹은 공휴일의 경우, 봄부터 가을까지는 이용객이 많아지므로 오전 중에 도착해 미리 자리를 선점해두는 게 좋다.
* 지심도 반려견 동반: 원칙적으로 국립공원 내 반려견 동반이 금지되어 있으나 도내 주민들이 키우는 반려견이 거주하고 있으므로 지심도 내 반려견 동반은 허용하고 있다. 다만, 지심도까지는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므로 배에 탑승할 때에는 반드시 가방 혹은 케이지를 이용해 반려견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한 뒤 승선해야 한다.
* 클린 캠핑: 본인이 배출한 쓰레기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정해진 곳에 버리고, 재활용품은 반드시 분리배출할 것. 쓰레기봉투는 농협하나로클럽 혹은 인근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