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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퇴근뒤 뽀드드-탁, 캔맥주…혼술과 불면의 뫼비우스여!

등록 2021-12-17 08:59수정 2022-02-07 15:55

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잠을 자려고 술을 마시면 알코올중독 위험이 커지는데, 그건 술을 마시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꾸 혼술을 하게 되는 게 문제다. 혼술이 뭐가 나쁘냐고? 혼술을 하면 스스로 술 마시는 속도나 양, 횟수를 조절하기 힘들고, 바로 여기서 알코올중독의 물꼬가 트인다.
잠 못 드는 밤, 술기운에 기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랬다. 맥주, 와인, 막걸리, 소맥. 주종 불문 많이도 마셨다. 맹세코 잠이 목적이었던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마실 핑계를 찾은 걸지도. 잠이 안 와서, 비가 와서, 반찬이 안주 같아서, 기뻐서, 슬퍼서, 그냥 ‘땡겨서’… 아, 술꾼의 비겁한 핑계여!

비록 주량은 약하지만, 나는 술꾼인 축이었다. 왜 흔히들 하는 말 있잖은가. 술을 좋아한다기보다 술자리를 좋아한다는 말. 어디서든 그 말을 들으면 내 입에서는 무릎반사 같은 멘트가 나가곤 했다. “저는요, 술자리보단 술을 좋아합니다!” 그 정도로 나는 술을, 그러니까 알코올 성분이 들어간 액체 자체를 좋아했다. 다양한 맛과 향도 매력적이지만, 술을 마시고 알딸딸해지면 세상 시름이 사라졌다.

이토록 술에 진심일진대, 그 좋은 걸 요즘은 ‘거의’ 끊었다. 불면을 탈출해보자는 비장한 각오가 있었다. 술을 마시면 잠이 빨리 들 뿐, 수면의 질은 오히려 걸레짝이 될 때가 많으니 어쩌겠는가. 끊어야지 뭐. 와중에 끊으면 끊었지 구차하게 ‘거의’를 갖다 붙인 이유는 뭐냐. 간단하다. 모임에서는 마셔서 그렇다(그마저 ‘코시국’이라 거의 없다). 다만 혼술과 홈술을 안 할 뿐이다(손님과는 예외라는 점 이해해주시라). 이쯤 되면 헛소리도 정도껏 하라고 일갈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른다. 혼술과 홈술 좀 안 하는 걸로 웬 호들갑이냐며.

섭섭한 말씀이다. 혼술과 홈술을 끊는다는 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퇴근 직후 뽀드드-탁, 캔맥주를 따는 순간이 주는 설렘을 버린다는 것. 배고파 쓰러질 것 같은 저녁, 막걸리 한사발로 만끽할 수 있는 눅진한 포만감을 포기한다는 것. 오매불망 내 입만 바라보는 냉장고 속 와인 네댓병을 피도 눈물도 없이 외면한다는 것. ‘집 밖’이나 ‘타인과 약속’이라는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제아무리 대방어회가 두툼하고 쫄깃할지언정 소주나 화이트와인을 따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어를 막걸리 없이, 치킨을 맥주 없이 먹는다는 뜻이다. 홍탁 아닌 홍어, 치맥 아닌 치킨. 가능하십니까? 홍탁과 치맥은 국룰입니다만.

당연히 이건 고행이다. 수도승의 묵언수행 못지않은 고행이건만, 보라, 나는 묵묵히 감내 중이다. 어떻게 내게 이런 금욕이 가능한가. 나야말로 범속함의 결정체로, 금욕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간인데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술을 먹지 않는 행위가 주는 이득이 고통보다 크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에는 그걸 지속하는 심리적 기제가 있기 마련이다. 유익한 행동이든 해로운 행동이든 그게 본인에게 모종의 기능을 하지 않으면 그 행동은 소멸한다. 나는 술을 줄이면서부터 불면이 상당히 호전되었고, 그러자 혼술과 홈술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음주는 물론 즐거운 일이지만, 그 즐거움이 잠과 맞바꿀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술과 잠의 관계라는 게 그렇다. 톰과 제리 비슷한. 떼려야 뗄 수 없으면서도 반목할 운명을 가진. 한때는 의사들이 불면증 환자에게 나이트캡(자기 전 마시는 술)을 처방하는 시기가 있었을 정도로 술은 인류 역사상 유구한 수면제지만, 동시에 가장 오·남용과 부작용이 심각한 수면제이기도 하다. 강한 의존성과 내성도 그렇지만, 불면을 해결하기는커녕 결국엔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술을 마시고 자면 화장실이니 갈증이니 자주 깰뿐더러 자는 동안 알코올을 분해하는 대사활동이 일어나 깊은 잠을 자기 힘들다. 그래서 과음한 이튿날은 그렇게 피곤해 죽겠는 거고. 실제로 만취 상태와 시장에서 퇴출당한 수면제(바르비투르산계)가 인체에서 작용하는 메커니즘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수면제 얘기는 지난 연재 ‘잠 못 드는 내가 ‘약’에 신중한 이유’와 ‘꿀잠이냐 중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에 썼으니 참고하시라.)

불면과 알코올중독의 악순환은 또 어떤가. 잠을 자려고 술을 마시면 알코올중독 위험이 높아지는데, 그건 술을 마시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꾸 혼술을 하게 되는 게 문제다. 혼술이 뭐가 나쁘냐고? 혼술을 하면 스스로 술 마시는 속도나 양, 횟수를 조절하기 힘들고, 바로 여기서 알코올중독의 물꼬가 트인다. 그렇게 알코올중독에 빠지면 또다시 만성 불면을 겪게 된다니 그 악순환의 굴레가 뫼비우스의 띠에 가깝다. 통계를 한번 보자. 알코올중독자의 10%는 잠을 자려고 술을 마시다 중독에 이르렀고, 알코올중독자의 50% 이상은 불면증이었다. 불면인과 애주가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독자 여러분, 조심합시다. 아, 물론 저부터 잘해야죠. 그러고말고요.

술을 도통 안 마셔서인지 나는 지금 반쯤 감긴 눈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마감을 마치고 나면 나에게 혼술상을 선물하면 어떨까 싶다. 두부김치에 소맥 한잔 말면 딱 좋을 텐데. 침이 고인다. 그래, 그동안 오래 쉬었으니 한번 꺾어봐? 부디 오늘만큼은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를 허락해주시오…. 아, 아니지. 정신줄을 이렇게 놓을 순 없지. 마감주 따위 필요 없다. 내게는 대리만족할 기똥찬 방법이 있으니까. 여러분에게도 <술꾼도시여자들>(티빙드라마)을 추천한다.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1. 술은 백해무익이라는 말도 있지만, 백약의 으뜸이라는 말도 있다. 딱 한잔만 할 자신이 있다면 나이트캡을 마시고 기분 좋게 잠드는 것도 좋다. ★★★★☆

2. 나이트캡을 할 경우 위스키나 보드카, 리큐어처럼 도수 높은 술로 딱 한잔만. ★★★★☆

3. 적어도 잠들기 한두시간 전에 저녁 식사 마치기. 야식은 불면증의 주범이다. ★★★☆☆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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