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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집이 제 꼴을 찾아갈수록 통장은 ‘텅장’이 됐다

등록 2021-12-10 11:59수정 2021-12-10 12:11

너도 한번 지어봐
예상 못한 비용 계속 발생
제때 지급 못해 심리적 위축
부동산 대출도 힘들어 이중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집을 지으면서 건축주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웃들의 민원, 더딘 작업 속도,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지만 그중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다. 살고 있던 아파트 전세보증금과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모든 예금은 물론이고 아내가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주식계좌와 한도 끝까지 끌어온 대출을 모두 동원했고, 몇번이고 계산기를 꾹꾹 눌러가며 예산 계획을 짜고 또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늘어나는 금액은 허용할 수 있는 한계점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딱 우리집 얘기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많이 들었던 얘기가 공사 비용이 계획했던 것보다 많이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적게는 1.2배에서 많으면 두배 가까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으니 넉넉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충고였다. 특히 대수선공사는 신축공사보다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적인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했는데 그게 딱 우리 집 얘기였다.

2층 옥상 슬래브가 없다는 것을 철거 과정에서 발견하고 설계와 구조를 변경하면서 철거와 구조 공사 비용은 두배가 되었다. 공사가 길어지니 입주 계획도 틀어져 두번의 이사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이삿짐을 보관하는 창고 비용에 가족들이 지낼 숙소 비용,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어 들어가는 식사비…. 도미노 쓰러지듯 연달아 생겨나는 모든 일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지출로 수렴된다.

지하 창고에서 3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실. 임호림 제공
지하 창고에서 3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실. 임호림 제공

시공회사에서는 자재값 상승에 따른 추가 비용도 요구했다. 집 짓는 데 들어가는 자재들은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것들이 많다. 코로나 시국에 국제 해운 비용이 올라가고 국내 건축 물량이 늘어나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오른 것이라고는 했지만 계약했던 금액에서 추가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건축 쪽에서 일하는 지인들과 소개받은 건축 자재 유통회사에 문의한 결과 올해 초반보다 값이 많이 오른 것을 확인했다. 결국 미리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시공회사의 책임을 물어 계약금액과 추가금액의 중간 선에서 합의했다.

설계를 한 건축사 소장과 상의해 구조 공사에 쓰는 것은 조금 낮은 등급의 자재를 사용하더라도 안전과 성능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바꾸기도 했는데 눈에 보이는 창호와 인테리어 마감재만은 양보하기 어려웠다. 책과 인터넷에서 훌륭한 디자인을 구경하면서 올라가버린 눈높이가 내려가기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설계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쓰고 싶은 욕심이 앞서다 보니 결국 빼는 것보다 더하는 것이 많아져 부담해야 할 금액이 늘어나게 되었다.

포기와 선택의 연속

돈이 부족하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이사를 더 늦출 수는 없어 우리 가족이 살 공간을 먼저 만들고 1층 상가(근린생활시설)에 차리려고 했던 소시지 작업장과 매장의 마무리는 조금 미루기로 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라며 자위하지만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다.

시공회사와의 계약에 포함하지 않았던 ‘건축주 직접 발주’ 항목이라는 것도 있다. 구조안전진단비, 산재고용보험비, 안전지도기술 의뢰비, 도시가스 인입관 폐쇄 및 재설치비, 상수도 계량기 추가 설치비, 고압전기 지중화 선로 인입비, 진입도로 아스콘 포장비 같은 것들이다. 견적에 포함해 이윤을 붙일 수 없는 것들은 시공회사가 알려주는 일정에 맞춰 건축주가 직접 계약하라는 것인데, 각각 견적을 받아 더해보니 생각보다 꽤 큰 금액이라 당황스러웠다. 직접 계약하는 것이라 비용도 바로 지급해야만 한다.

무거운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계단. 임호림 제공
무거운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계단. 임호림 제공

큰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지 않도록 시공회사에는 공사 진행도에 맞춰 여러차례 나누어 지급하기로 했다. 윗돌 빼 아랫돌 괴는 식으로 자금 흐름이 빠듯해 지급 기일을 못 맞춘 적도 두어번 있었다. 예산이 많이 초과한 것과 내 형편을 알고 있기에 심하게 독촉을 하지는 않았지만 약속을 어기게 되어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다 보면 별것 아닌 일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일 잘하고 있는 애꿎은 작업자들에게 괜히 쓴소리를 하기도 하고 공사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해하는 가족들에게 직접 가서 보라며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설계사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져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대수선이 아니라 신축공사를 하는 게 나았을 거라고, 아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 공사를 시작하지 말 걸 그랬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차라리 신축이…

예산 확보를 위한 팁 하나. 대출 규제가 심해져 1주택 보유자라 해도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리모델링(대수선)을 하려는데 공사비가 부족하다면 신축을 고려해보길 권한다. 공사 범위에 따라 다르지만 오래된 집일수록 대수선과 신축의 비용 차이가 크지 않고 때로는 대수선공사가 돈이 더 많이 들어갈 수도 있다. 신축하려면 먼저 대지 위에 존재하는 모든 건축물을 철거해 ‘멸실 등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 토지(대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건축자금 대출’을 신청하면 일반 부동산 담보 대출보다 수월하다. 제2금융권의 인정비율이 높다. 이자율은 제1금융권에 비해 높지만 목돈 필요한 건축주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농협(중앙회)은행, 수협은행, 새마을금고에서는 공사 비용의 70~80% 정도까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역별로 해당 토지의 규모, 감정평가액, 부동산 용도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니 가까운 지점에 문의해보길 바란다.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 아내가 지나가며 곁눈질로 훑어보더니 “연재 제목을 <너도 한번 당해봐>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란다. 짠 내 풀풀 나는 얘기는 여기까지만.

임호림(어쩌다 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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