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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눈 호강’에 실용성까지…일상 속 예술, 공예품

등록 2021-12-09 08:59수정 2021-12-09 09:26

커버스토리 : 뜨거운 공예 바람
서울공예박물관 사람 몰리고, 공예트렌드페어 관람객 급증
코로나로 인한 집콕 증가에 미술품 수집 열풍이 인기 원인
개성·희소성 더해 가치상승…기존 회사들도 예술성으로 승부
일상 속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공예품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 종로구 효자동 솔루나리빙에서 개인전을 연 분청사기 작가 허상욱의 편병. 편병은 접시 두 개를 붙여서 만든 것으로 주로 휴대용 술병으로 쓰였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일상 속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공예품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 종로구 효자동 솔루나리빙에서 개인전을 연 분청사기 작가 허상욱의 편병. 편병은 접시 두 개를 붙여서 만든 것으로 주로 휴대용 술병으로 쓰였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한국방송>(KBS) 기상캐스터 오수진(35)씨는 최근 공예품에 푹 빠져 있다. 그가 특히 선호하는 제품은 요리를 담는 그릇. 그릇에 빠진 계기는 바로 ‘집밥’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음식을 먹는 것도 지쳐가던 중, 오씨는 직접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요리를 마지막에 완성하는 그릇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 것이다.

“혼자 먹는 음식이지만, 예쁜 그릇에 담으면 스스로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그릇 모으기가 엄마들의 취미라고만 생각했는데 에스엔에스(SNS)에 음식 사진을 올리는 게 일상이 된 요즘엔 젊은층 사이에서도 그릇 모으기가 유행이다”라고 오씨는 말했다. 그는 최근 아예 수집을 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라이프 리빙 플랫폼 ‘보키’(bokee)를 열기도 했다. 이른바 ‘덕업일치’(취미가 직업이 된 경우)가 된 셈이다.

오씨의 말대로 최근 그릇과 같은 일상 속 생활용품에 예술적 가치를 더한 ‘공예품’의 인기가 대단하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소량 생산이라는 희소성이 더해져 그 인기가 더욱 치솟고 있다.

지난달 18일 열린 2021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총감독을 맡은 정구호 패션디자이너(맨 오른쪽)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지난달 18일 열린 2021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총감독을 맡은 정구호 패션디자이너(맨 오른쪽)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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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페어 관람객 65% 늘어

공예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달 18일 열린 2021 공예트렌드페어는 역대 최다인 320개 회사가 참여해 호황을 이뤘다. 이번 행사에선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씨를 총감독으로 임명해 기존보다 3배 커진 71명의 공예 전문 작가를 초빙해 특별전시도 펼쳤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행사장에서 만난 정 총감독은 “한국 공예 작가들의 수준은 세계적이다. 이들을 다 초청하지 못한 점이 아쉬울 정도다”라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이 힘을 쏟았던 덕일까. 이번 페어에는 지난해보다 65%가 늘어난 5만5천여명이 3일 동안 행사장을 찾았다. 김태훈 공진원 원장은 “단순한 유통과 교류의 장을 넘어서 예술·문화적 가치를 선도하는 깊이 있는 박람회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작가들의 달라진 생각도 이 행사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화강석과 유리로 화병을 만들어 ‘제자리’라는 주제로 작품을 전시한 이은지(31) 작가는 “순수예술을 해왔지만 너무 예술에만 치우친 것이 싫어 사용성이 좋은 공예로 분야를 바꿨다”며 “화병은 꽃의 제자리를 지정해주는 역할이다. 전시 주제에 맞게 화병이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의 말처럼 공예품은 실제 꽃을 꽂는 등의 기능적인 역할도 하지만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품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은지 작가의 화병. 이정국 기자
이은지 작가의 화병. 이정국 기자

지난 7월 서울 안국동에 문을 연 서울공예박물관도 공예 인기의 한 단면이다. 옛 풍문여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개관한 공예박물관은 주말 관람 예약의 경우 ‘광클릭’을 하지 않으면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다. 지난달 방문한 박물관에서 만난 대학생 박유미(22)씨는 “일상적으로 쓰는 물건이지만 너무 예뻐서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골동품 같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더 현대적인 디자인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박씨 같은 엠제트(MZ)세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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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보다 접근 쉬워

왜 이렇게 인기일까. 공예의 사전적 의미는 “기능과 장식을 조화시킨 일상생활품”이다. 쉽게 말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예술품이라는 뜻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이지만 심미적 가치가 더해져 수집의 대상이기도 하다.

최근 공예품 인기가 급격하게 올라간 이유로 코로나19가 지목된다.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트 리빙 플랫폼 솔루나아트그룹의 이채림 큐레이터는 “지난 2년 동안 사람들이 집 안에 머물며, 음식을 만들어 먹는 시간이 늘어나자 식기나 소품에 관심이 늘었다. 이를 시작으로 전반적인 실내 장식에 대한 흥미가 생긴 것”이라며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이 더욱 공예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분청사기 작품으로 이름이 높은 허상욱(51) 작가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효자동 전시회장에서 <한겨레>와 만나 “집 안에 있는 시간도 늘어난데다 에스엔에스의 발달로 오브제 역할을 하는 소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최근 특히 화병의 인기가 올라가는데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선민 작가의 유리 주병과 잔. 솔루나아트그룹 제공
박선민 작가의 유리 주병과 잔. 솔루나아트그룹 제공

최근 엠제트세대 사이에서 열풍인 미술품 수집도 공예 시장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과 학습이 필요한 미술품과 달리 공예품은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큐레이터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손쉽게 구매가 가능한 테이블웨어, 특히 도자기 컵, 접시 등이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공예품 가운데 전통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달항아리다. 특히 외국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보인다. 크기가 큰 백자대호 형태의 달항아리는 가격이 수백만원으로 비싸지만, 최근엔 20~30㎝의 작은 달항아리가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간다. 이 밖에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주목받는 소반도 공예품 인기를 선도하고 있다. 소반에 차린 혼술상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리면 ‘좋아요’는 식은 죽 먹기다.

최근 두드러지는 현상은 작품의 통일성보다는 작가의 개성이 담긴 제품을 선호한다는 것. 테이블웨어의 경우도 세트로 대량 구매하지 않고, 식기 하나하나가 오브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낱개로 사는 경향이 크다. 이 큐레이터는 “2인 가족의 경우에도 각기 다른 모양의 접시를 믹스 매치해서 사용하고 같은 제품이라도 무늬를 다르게 선택한다. 개성이 곧 유행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식 작가의 나주 소반.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김준식 작가의 나주 소반.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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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제품도, 더 예술적으로!

작가들의 작품인 공예품이 그릇 등 일상용품 시장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기존 회사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명품으로 취급받는 회사들은 작가들의 공예품 못지않게 한정판 제품을 만들거나 작가들과 협업을 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명품 그릇 가운데 하나인 로얄코펜하겐의 경우 꾸준하게 한정판을 발표하며 수집가들을 겨냥하고 있다. 로얄코펜하겐은 최근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 듀오 ‘감프라테시’와 협업해 신규 컬렉션 ‘로얄 크리처스’를 새로 선보였다. 바다로의 탐험을 주제로 한 로얄 크리처스는 백조, 청어, 복어, 게 등 다양한 바다 생물의 모습을 장인의 섬세한 붓질로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로얄코펜하겐의 ‘로얄 크리처스’. 로얄코펜하겐 제공
로얄코펜하겐의 ‘로얄 크리처스’. 로얄코펜하겐 제공

이딸라의 ‘버드 바이 토이카’. 이딸라 제공
이딸라의 ‘버드 바이 토이카’. 이딸라 제공

유리공예로 유명한 핀란드 브랜드인 이딸라는 ‘버드 바이 토이카’ 컬렉션이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다. 핀란드의 유리공예가 오이바 토이카가 1972년 처음 작은 딱새 작품을 만든 이후로 지금까지 500여종의 버드가 완성되었는데, 공예 장인들이 하나하나 입으로 불어 만드는 ‘마우스 블론’ 기법으로 생산해 희소가치가 높은 아이템이다.

생활 소품이지만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시회가 열리는 경우도 있다. 내년 2월까지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는 ‘토일렛페이퍼: 더 스튜디오’ 전시회는 특유의 익살스러움으로 젊은층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토일렛페이퍼>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활동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피에르파올로 페라리가 만드는 독립잡지인데, 이 잡지에서 사용하는 이미지가 독특하고 강렬해 미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탈리아 리빙 브랜드 셀레티는 <토일렛페이퍼>와 협업해 제품을 판매 중이다. 우리가 흔하게 쓰는 테이블웨어부터 의자, 쿠션까지 다양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도경(33)씨는 “생활 소품이지만 마치 현대 미술품 같은 느낌을 준다. 매력 있다. 하나 사고 싶다”고 말했다.

실용성에 더해 예술적인 정취까지 느끼게 해주는 ‘일상 속 예술’ 공예품은 소비자들을 아주 강하게, 휘어잡고 있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토일렛페이퍼: 더 스튜디오’ 전시회. 이정국 기자
‘토일렛페이퍼: 더 스튜디오’ 전시회. 이정국 기자

공예품은 저마다 개성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오수진 제공
공예품은 저마다 개성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오수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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