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불법투약을 제안한다면? 단번에 뿌리칠 수 있을지 장담 못 할 일이다. 잠을 오죽 못 자면 이런 생각마저 하겠느냐만, 그와 별개로 내가 완벽히 도덕적이거나 옳다고 믿는 것만큼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건 없다.
배우 하정우를 좋아했다. 요즘은 영 시큰둥하다. 따지고 보면 내 불면증 때문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내막이 있다. 들어보시라.
얼마 전 수술을 했다. 귀 수술이었다. 피어싱을 했을 뿐이지만, 그게 문제였다. 귓바퀴에 혹이 생기기 전까지 내가 ‘켈로이드’ 체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켈로이드가 뭐냐면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섬유조직이 과도하게 증식하는 증상이다. 증상이 나타난 피부는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다 검붉은 혹으로 변한다. 내 귀가 딱 그랬다. 처음엔 ‘살튀’(살이 튀어나오는 현상) 정도였는데, 갈수록 혹이 점점 커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신, 피어싱 왜 했소? 본인이 켈로이드인 것도 모르고 말이야!”
의사가 다짜고짜 불호령을 내렸다. 혹부리 영감처럼 ‘살튀’ 두 덩어리를 매달고 그에게 처음 갔을 때였다. 모락모락 억울함이 치밀었다. 거참, 저라고 뭐 모르고 싶어 몰랐게요. 여기 제 무릎에 징그럽게 툭 튀어나온 흉터요, 이걸 보면서도 그냥 심하게 자빠진 탓이려니 넘긴 위인이 저라고요! 물론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등짝 스매싱 당할 판이었다. 그는 유능하지만 괴팍하기로 소문난 60대 의사로, 짙은 눈썹에 반말 섞인 사투리를 툭툭 뱉는 인물이었다. 나는 비록 그 아우라(?)에 찌부러졌으나, 이 말만큼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 수술할 때 수면마취 하고 싶은데요.”
그래, 이 글이 실리는 코너 이름이 ‘자는 것도 일이야’라는 걸 아는 독자라면 내가 얼마나 양질의 수면을 갈구하는지 짐작하시리라. 살면서 몇차례 수면마취를 해봤다. 좋더라. 뭐가 그리 좋았냐. 정신없이 자는 게 좋았다. 쾌감을 극대화하려고 프로포폴이 혈관을 타고 들어올 때면 괜한 저항을 해보기도 했다. 굴복하지 않겠다, 잠들지 않겠다, 굳세게 다짐하지만 어라, 나는 맥없이 의식을 잃었다. 바로 그런 순간이, 의지와 상관없이 꼴깍 넘어가는 순간이 주는 이상야릇한 달콤함이 있었다.(왜 프로포폴이 마약류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 건강검진 단골 질문은 내게 우문일 수밖에.
“위내시경 수면으로 하시겠어요, 그냥 하시겠어요?”
물어 뭐해, 대답은 뻔하지. 어쨌거나 이게 내가 하정우에게 시큰둥해진 결정적인 이유다. 그는 나무랄 데 없는 배우였다. 연기 잘해, 유머러스해, 매력적인 용모에 먹방도 최고였다. 완벽했다. 프로포폴 불법투약한 것 빼고는. 프로포폴을 또 누가 했던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 같은 재벌들, 그리고 수많은 연예인들. 대부분 저명한 부유층이다. 불면의 고통을 아는 1인으로서, 얼마나 영혼이 황폐하면 저럴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혀를 끌끌 찬다. 범법 행위가 실망스럽다는 식의 단순한 감정은 아니다. 분노와 질시, 동경이 뒤섞여 있다. 굳이 말하면 얄밉다고나 할까.
자, 그들이 특권을 이용해 프로포폴을 수십, 수백번씩 맞는 동안 한낱 소시민인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들어보라. 나는 그 할아버지 의사로부터 수면마취를 단칼에 거절당했다. “안 돼, 필요 없어!” 그렇게 나는 국소마취만 한 채 수술대에 눕게 되었고, 1시간50분 내내 하느님께 빌어야 했다. 제발 좀 빨리 끝나게 해주세요! 감각은 없었다. 통증도 없었다. 의식이 또렷할 뿐이었다. 메스로 귓바퀴 연골을 서걱서걱 자르는 소리, 혹 덩어리를 수십번에 걸쳐 긁어내는 소리, 그 잔해를 내가 뒤집어쓴 녹색 천에 휘휘 바르는 소리, 피를 닦고 꿰매는 느낌까지. 아, 망할. 인간으로 환생한 표본실 청개구리가 있다면 그게 바로 나였다.
수술이 끝난 뒤에는 한동안 또 잠을 자지 못했다. 봉합 부위를 감싼 거즈가 베개에 닿지 않게 하려니 자꾸만 뒤척이게 되었다. 옛날 헤드셋을 연상시키는 두툼한 거즈였다. 그렇게 헤드셋을 24시간 매달고 사는 동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여전히 미완이라는 것이다. 사춘기 때부터 나 자신을 탐구해오며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켈로이드 체질인 줄도 모르고 피어싱을 해댄 것처럼, 헛발질을 해대는 게 비단 육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내 마음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겠지. 내 마음은 복잡미묘하고, 파악하기 힘들며,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불면의 가장 큰 원인일지 모른다.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자. 하 배우를 비롯한 그들이 얄밉게 느껴지는 건 그들처럼 치료를 명분 삼아 프로포폴을 해보려는 욕구가 좌절됐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불법투약을 제안한다면? 단번에 뿌리칠 수 있을지 장담 못 할 일이다. 잠을 오죽 못 자면 이런 생각마저 하겠느냐만, 그와 별개로 내가 완벽히 도덕적이거나 옳다고 믿는 것만큼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건 없다. 나는 이제 사람을 두고 섣불리 확신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고정불변한 자아는 없고, 마음은 겹겹이다. 사람이 잘 안 변한다는 말도 거짓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은 변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단지 좋은 쪽으로 변하리라는 기대. 그걸 희망이라 부르며 우리는 또 그렇게 예측불허의 삶을 사는 거니까. 내가 숙면하는 존재가 되리라 믿는 것처럼.
나는 오늘도 흉터완화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며 생각한다. 사람은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이니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의심하자고.
그런데도 못내 가시지 않는 억울함이 있다. 재벌이나 연예인들은 고작 여드름 치료 따위에 수십번씩 수면마취를 하는데, 나는 왜 혹을 떼는 수술을 하면서 맨정신이어야 했단 말인가? 허구한 날 ‘치료 목적’으로 프로포폴 했다는 느그들 말이야, 나보다 중한 치료 받았어? 어?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1. 침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 급격히 추워졌으니 포근한 느낌의 플란넬 극세사나 보온성 뛰어난 거위털 이불 덮어보기 ★★★★☆
2. 칼집 낸 양파 머리맡에 두기. 양파 향이 비타민 B1 흡수를 도와 신경을 안정시켜줌 ★★★☆☆
3. 티타임에는 졸음을 유발하는 캐모마일이나 라벤더를. 다만, 자기 전 많이 마시면 밤중에 화장실 가느라 깰 수 있으니 주의하기 ★★★☆☆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