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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뼈대 있는 집, 나무가 한몫하네

등록 2021-10-29 04:59수정 2021-10-29 09:32

너도 한번 지어봐: 골조 공사
강철빔으로 기둥 세우고
그 위에 목재 골조 올려
단열·안전성·기간 등 유리
뼈대 사이에 배관, 전기, 송풍 설비 등을 넣고 규격화된 단열재를 시공하기 쉽다는 것도 경량목구조의 장점이다. 임호림 제공
뼈대 사이에 배관, 전기, 송풍 설비 등을 넣고 규격화된 단열재를 시공하기 쉽다는 것도 경량목구조의 장점이다. 임호림 제공

건축물의 구조는 사람의 몸과 비슷한 점이 많다. 바닥 기초는 사람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이다. 골조는 몸을 지탱하는 척추와 같은 큰 뼈에 해당하고, 상하수도 배관은 소화 및 배설 기관에 비유할 만하다. 전기 배선은 신경계, 창호와 환기 배관은 호흡기, 냉난방 설비는 혈관과 비슷하다. 요즘은 집에도 보안을 위한 폐회로 카메라와 인공지능 시스템까지 갖추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으니 사방을 둘러보는 눈과 스스로 생각하는 뇌까지 탑재해 실제 인간과 점점 비슷해지는 것 같다.

골다공증 걸린 집 치료

대수선공사에서 골조 보강은 골다공증에 걸려 약해진 어르신의 뼈를 다시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보강재로 많이 사용하는 것은 흔히 에이치빔(H beam)이라고 부르는 강철기둥인데, 규격에 따라 지탱할 수 있는 무게의 차이가 있으니 적절한 크기의 자재를 사용하기 위해 구조안전설계팀의 계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집에는 에이치빔 대신 단면이 네모난 강철빔을 사용했다. 엄청난 무게가 나가는 자재이기 때문에 미리 공장에서 강철빔을 절단해서 가져오기는 하지만, 낡은 건물을 고치는 골조 보강 현장에서는 무엇 하나 딱 맞아떨어지는 일이 흔치 않아 빔을 자르고 갈아내는 작업이 뒤따른다. 불꽃이 튀고 날카로운 마찰음, 절단기와 용접기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가 골목을 메운다. 무거운 강철빔을 옮기는 일은 과학의 힘을 빌린다. 천장 슬래브에 ‘앙카’(앵커)라고 부르는 두꺼운 나사를 깊게 박아 도르래를 달아매고 쇠사슬을 당기면 무거운 기둥이 천천히 움직이는데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웠던 에너지 전달의 원리를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도르래를 연결하기 어려운 공간은 결국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서너명이 달라붙어 강철빔을 한번 들어 옮기고 나면 작업자들은 안전모 사이로 장맛비 같은 땀을 쏟아낸다.

혹시 사고라도 생길까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건축주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흐른다. 다음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 윗부분에 보를 끼워 넣고 나사로 조이고 용접을 해 마무리하는데 보강 공정에서 가장 큰 소음은 이때 발생한다. 좁은 틈 사이에 강철빔을 쇠망치로 때려 조금씩 밀어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땅땅땅” 고막을 울리는 금속성 타격음이 온 동네에 퍼져 나간다. 이웃 몇분이 찾아와 고통을 호소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에 들어와 낮에 쉬어야 하는 처지인데 시끄러워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한다. 보강 작업이 끝나면 다음 공정이 기다리고 있기에 작업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현장 소장에게 맡겨두고 어디론가 숨어버릴 수도 없다. 집이 다 지어지면 아침저녁으로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하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납작 엎드려 사과드리고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끝내겠다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콘크리트를 레미콘과 펌프카로 쏟아붓고 있다. 임호림 제공
콘크리트를 레미콘과 펌프카로 쏟아붓고 있다. 임호림 제공

나무의 힘

1층 골조 보강이 완성될 즈음 철거가 끝난 2층 슬래브 바닥을 두껍게 보강했다. 테두리에 거푸집을 덧대고 철근을 바둑판 모양으로 얹어 반생이(가는 철사)로 묶어준다.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며칠 동안 마르기를 기다리면 2층 바닥이 완성된다. 철근을 넣는 이유는 바스러지기 쉬운 석회질의 시멘트 혼합물인 콘크리트를 잡아주는 뼈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점토로 조형물을 만들 때 철사에 털실을 감아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찰흙을 덧붙였던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철근-콘크리트 공법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한다. 모든 물질은 온도와 습도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데 두가지 이상의 재료를 함께 사용하다 보면 수축률이 서로 다른 물성에 의해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연한 발견이었는지 의도된 발명이었는지는 모르나 철근과 콘크리트는 자연 상태에서 수축률이 놀랍도록 동일하다. 르코르뷔지에 이후 근대 건축가들이 철근-콘크리트 공법을 사랑하게 된 이유다.

일주일 정도 지나 2층 바닥 슬래브가 잘 마른 것을 확인했다. 그 위에 두개 층의 뼈대를 새로 만들어 올릴 시간이다. 2, 3층의 골조는 경량목구조를 쓰기로 했다. 나무를 뼈대로 쓰는 목구조는 크게 중목구조, 경량목구조, 통나무구조로 나뉘는데 경량목구조는 북미대륙에서 가장 보편화한 주택 건축 공법으로 그 역사가 200년이 넘어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캐나다 경량목구조 생산조합의 인증마크를 획득한 자재는 내구성이 50년 이상이라고도 한다. 목재는 단위 중량당 수평 인장강도와 수직 압축강도가 철근-콘크리트 구조보다 뛰어나다. 진동을 버티는 힘과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좋다는 얘기다. 실제로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에서 경량목구조 주택이 다른 골조로 지은 집들보다 피해가 작았다고 한다.

목재는 자체 단열 및 보온 성능도 콘크리트보다 4배, 벽돌보다 6배, 석재보다 15배 정도 뛰어나며 구조재 사이에 단열 시공이 쉬워 에너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규격화된 부재가 사용되어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요가 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철근-콘크리트 공법보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역사가 짧아 전문 시공기술인력을 보유한 업체가 많지 않다. 또 국가에서 관리하는 인증제도가 갖춰지지 않아 괜한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온돌 난방, 습식 화장실은 태평양 건너 사는 사람들과 다른 생활양식이기에 한 단계 더 높은 방수처리와 보강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우리 현장에서 일하는 시공회사의 작업자들은 한국에 경량목구조 주택이 소개된 초창기부터 오랫동안 경험을 쌓고 손발을 맞춰온 목수팀이라고 했다. 2주 정도 걸려 기둥과 보를 세우고 외벽과 내부 공간을 분리하는 내벽에 합판을 붙이기 시작하니 3D(입체) 모델링으로 봤던 집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임호림(어쩌다 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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